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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K리그에서 '서울 더비' 보고 싶은 이유

 

지난달 28일 수원과 서울의 'K리그 슈퍼매치'는 빅버드 사상 최다 관중인 4만 2,377명이 운집했습니다. 두 팀은 K리그의 대표적인 라이벌로써 그동안 수없는 대립각을 세우며 많은 축구팬들을 어필할 수 있는 컨텐츠를 확보했고, 여론의 뜨거운 관심과 시선을 받으며 K리그 최고의 히트상품을 창출했습니다. 또한 수원과 서울은 K리그의 대표적인 인기구단이자 강팀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며, 끊임없는 스타 플레이어 배출 및 영입을 통해 K리그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이 강합니다. 그래서 두 팀의 경기를 '한국판 엘 클레시코 더비'라고 치켜세우는 팬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원과 서울의 경기는 K리그 입장에서 또 하나의 과제를 던져줍니다. 두 팀처럼 K리그를 뜨겁게 달굴 라이벌전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포항과 울산의 '동해안 더비'가 오랫동안 지역 라이벌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두 개의 라이벌전을 제외하면 K리그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기는 없습니다. 수원과 성남의 '마계대전'(성남의 적은 관중수가 옥의 티), 전북과 전남의 '호남 더비', 대구와 포항의 'TK 더비', 서울과 인천의 '경인 더비' 같은 여러가지 라이벌전이 있지만 고정팬 부족 또는 언론의 관심 부족 때문에 흥행에서 취약하거나 대립 의식이 꾸준히 쌓이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유럽 축구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결정적 키워드는 라이벌전에 있었습니다. 클럽들끼리 오랜 시간 동안 라이벌전을 형성하면서 격렬한 대립의식을 키웠고 그 과정에서 많은 스토리를 쏟아내면서 리그 발전의 토대를 이루었죠. 그 중심은 지역에 있었습니다. 유럽은 지역 연고제가 확고하게 뿌리잡혔기 때문에 지역끼리의 맞대결이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라이벌전이 탄생했습니다. K리그는 유럽에 비해 지역 연고제 개념이 약한데다 리그 역사가 길지 않은 특징이 있지만, 유럽처럼 흥행하려면 그들의 좋은 점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유럽 축구는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팀이 라이벌전을 치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더비-머지사이드 더비(리버풀)-북런던 더비, 스페인의 마드리드 더비-카탈루냐 더비, 이탈리아의 밀라노 더비-로마 더비 등이 대표적 예 입니다. 일본 J리그 같은 경우에도 도쿄 더비, 사이타마 더비, 오사카 더비 같은 도시 라이벌전이 흥행의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도시끼리의 대항전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원조 더비이자 가장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경기는 강릉제일고(전 강릉상고)와 강릉농공고의 대결입니다. 두 학교는 1960년대 부터 라이벌 의식이 쌓이면서 축구부 뿐만 아니라 학생 및 동문, 심지어 강릉시민까지 치열한 대립전을 펼쳤습니다. 고교축구임에도 라이벌 대결이 유명하기로 소문난 이유는 같은 도시를 연고로 했던 태생적 특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로야구에서도 20년 넘게 잠실 구장에서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지냈던 LG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서울 라이벌 대결은 90년대를 넘어 2000년대에도 야구 흥행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K리그는 하나의 도시에서 두 개 이상의 팀이 존재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도시 라이벌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내셔널리그까지 포함하면 수원 블루윙즈-수원 시청, 부산 아이파크-부산 교통공사, 대전 시티즌-대전 한국수력원자력 등과 같은 여러가지 도시 대항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FA컵에서 볼 수 있는 현실입니다.(지난 7월 21일 FA컵 16강에서 수원 더비 성사) K리그와 네서널리그끼리의 승강제가 없기 때문에 도시 라이벌전을 쉽게 볼 수 없는 어려운 현실이죠. K리그 흥행에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K리그가 물적 양적으로 팽창하려면 도시 라이벌전의 등장으로 수원vs서울에 이은 또 하나의 K리그 슈퍼 매치를 탄생 시켜야 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유도되려면 훌륭한 시장성을 지닌 곳에서 팀이 창단 되어야겠죠.(연고지 이전이 아닌) 인구 천만을 보유한 서울이 가장 매력적인 도시로 꼽히고 있습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은 FC서울 뿐이지만 인구 천만의 특징을 놓고보면 K리그 팀 숫자가 더 늘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 시나리오는 어려운 일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서울 K리그팀을 창단하기 위한 운동을 펼쳤으나 성사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FC서울이 2004년에 연고지 이전하면서 K리그에 서울 팀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K리그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으면서 아시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거듭나려면 또 하나의 서울팀이 필요하며 FC서울과의 '서울 더비'가 자연스럽게 탄생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은 K리그 흥행을 주도할 수 있는 더비 매치가 성사되기 쉬운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FC서울이 강북을 기반으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면 신생팀은 강남에 있는 잠실 주 경기장을 쓰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잠실 주 경기장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습니다. 더욱이 서울의 강북과 강남은 한강을 사이로 뚜렷한 지역 구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팬들끼리의 지역적인 대립의식을 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서초-강남-송파구 축구팬들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K리그 경기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을 접하게 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잠실 주 경기장이 시야 문제 때문에 관중 유치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같은 축구 전용구장이 아닌 육상 트랙이 있는 종합 경기장인데, 일반 종합 경기장과 달리 트랙의 폭이 넓기 때문에 선수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부산 아시아드와 대구 스타디움이 그런 문제 때문에 관중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잠실 주 경기장도 되풀이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부산 아시아드처럼 가변석을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지만 신생팀 입장에서 수억원의 설치 및 유지 비용을 들여야하는 단점이 있죠.

잠실 주 경기장의 문제점을 놓고 보면 서울 월드컵 경기장 공동 사용에 눈길이 모아집니다. 밀라노 더비를 형성하는 AC밀란과 인터 밀란이 산 시로(인터 밀란 팬들은 주세페 메아차라고 부름)를 공동 홈 구장으로 활용하는 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도쿄 더비 같은 경우에도 FC도쿄와 도쿄 베르디가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을 공동으로 홈구장 활용합니다. 하지만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대표팀 및 그 외 친선 경기를 겸하기 때문에 또 다른 K리그 팀이 연고지로 삼기에는 무리수가 있습니다. 또한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FC서울 홈 구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다른 팀의 입성이 FC서울 입장에서 반갑지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목동 종합 운동장은 수용능력이 2만 2천명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규모 면에서 서울 월드컵 경기장-잠실 주 경기장에 밀립니다. 하지만 그 특징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K리그 평균 관중은 대략 1만 2천명이며 연고지가 서울임을 상기하면, 관중석 대부분이 거의 꽉찬상태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습니다. 다만, 서울을 새로 연고로 하게 될 팀이 목동의 규모를 만족할지는 의문이며 최근에 인조잔디가 깔렸다는 점이 K리그 경기 유치의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서울의 축구장인 효창 운동장은 오래전부터 아마추어 경기들이 활성화되었고 목동 종합 운동장과 더불어 인조잔디 구장입니다.

어쨌든, K리그의 '서울 더비' 탄생은 갑작스럽게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홈 구장 문제 이전에 서울 창단을 희망하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래에 기업의 프로스포츠팀 창단이 과거와 달리 거의 전무한데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합니다. 2년 전 현대 야구단(현 넥센 히어로즈) 같은 경우에는 기업 인수가 결국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의 후원 계약을 통한 '팀 스폰서' 방식으로 넥센 히어로즈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현 시점에서는 서울의 시민구단인 K3리그 서울 유나이티드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이 절실합니다. 서울 유나이티드는 오랫동안 서울 시민구단 창단을 추진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7년 부터 K3리그에 참가했습니다. 한국에는 승강제가 없기 때문에 내셔널리그-K리그 승격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서울 유나이티드는 지금도 K리그 진출을 목표로 설정하며 구단의 번영을 바라고 있습니다. '서울 창단팀'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서울팬들을 확보할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이 있으며 지난해까지 잠실 주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활용했던 경험이 있습니다.(현재 효창 운동장이 홈 구장) 과연 서울 유나이티드가 K리그에 입성하여 FC서울과 역사적인 '서울 더비'를 펼치는 날이 다가올지 그날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