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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리버풀, 제라드-토레스 꼭 지켜야 한다

 

로이 호지슨 감독이 이끄는 리버풀의 여름 이적시장은 다른 강팀들에 비해 주력 선수의 영입 및 출혈이 잦았습니다. '자유계악 선수' 요바노비치-조 콜을 이적료 없이 영입한 것은 그야말로 알짜였고 폴센-메이렐리스 같은 중원 옵션들을 보강하며 팀 전력의 불안 요소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마스체라노-베나윤-아퀼라니(임대)와 작별했고, 인수아의 이적이 유력해진데다, 카위트의 인터 밀란 이적설이 잠재워지지 않을 만큼 올 시즌 힘든 행보를 예감케 했습니다.

특히 마스체라노의 FC 바르셀로나 이적은 리버풀에게 뚜렷한 득과 실을 안겼습니다. 마스체라노는 스페인 진출 이전까지 경기 출전 거부 및 호지슨 감독과 연락이 두절되는 과정에서 리버풀에 대한 충성심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찌보면 마스체라노의 이적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고 깜짝 놀랄 소식도 아니었습니다. 리버풀이 마스체라노를 계속 붙잡기에는 선수의 태업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조속한 이적 조치가 필요했고 결국 바르셀로나로 보냈습니다. 그 댓가로 약 2000만 파운드(약 371억원, 추정)의 이적료를 받아 재정난을 조금이나마 해결한 것은 리버풀에게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마스체라노의 이적은 리버풀의 상징으로 꼽히는 '제토라인' 제라드-토레스가 언젠가 빅 클럽으로 이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리버풀이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베나윤-마스체라노 같은 주력 선수들을 팔으며 자금을 확보한데다, 현재 2억 3700만 파운드(약 4394억원)의 막대한 빚을 안고 있기 때문에 '유능한'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 법정 관리에 들어가는 최악의 상황에 몰립니다. 그래서 승점 9점이 삭감되는 것을 비롯 채권단에 의해 주력 선수들이 다른 클럽으로 떠나는 댓가로 이적료를 챙기며 자금을 확충하게 됩니다. 리버풀 선수들 중에서 많은 이적료를 기록할 수 있는 대표적 존재가 제라드-토레스 입니다.

일부 여론에서는 리버풀이 재정 회복을 위해 제라드-토레스 같은 거금의 몸값을 지닌 선수들을 빅 클럽에 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스런 시선을 보냈습니다. 만약 리버풀이 재정 위기를 넘기는데 급급하는 '가벼운 팀' 이었다면 지금쯤 제라드-토레스는 안필드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리버풀은 여름 이적시장에서 여러 클럽의 영입 공세 속에서도 두 선수를 지키는데 성공했고 어쩌면 여름 이적시장 '최대의 성과' 였을지 모릅니다.

물론 리버풀이 '공동 구단주' 힉스-질레트를 대체할 '귀인'을 만나 재정난에 벗어날지 아니면 몰락의 길을 걷게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라드-토레스의 앞날은 여전히 미궁속입니다. 두 선수는 리버풀에 대한 충성심이 깊기 때문에 안필드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지만, 팀의 재정적 어려움이 계속되면 그동안 정들었던 팀과 작별할지 모를 갈림길에 처했습니다. 'AC밀란에 오래 남고 싶다', 'AC밀란 주장이 되고 싶다'는 애정을 과시했던 카카 조차도 팀의 재정난 때문에 결국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로 떠났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제라드-토레스 앞날의 도돌이표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특히 제라드는 5~6년 동안 조세 무리뉴 레알 감독의 질긴 영입 공세를 받았습니다. 무리뉴 감독은 첼시-인터 밀란-레알 감독을 역임하면서 제라드의 이적을 원했던 지도자입니다. 제라드 같은 노련하고 우직한 중앙 미드필더를 앞세워 수비 밸런스를 견고하게 키우면서 그의 강력한 중거리슛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뉴 감독의 심리입니다. 그런 무리뉴 감독은 지난 25일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 메일>을 통해 "제라드는 현재 자신의 수준과 맞지 않는 팀(리버풀)에서 뛰고 있다. 리버풀은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제라드는 우승컵을 따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심리전을 펼치며 제라드의 레알 이적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제라드는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미드필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그 우승 경험이 없습니다. 2000/01시즌 UEFA컵을 비롯한 미니 트레블, 2004/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리버풀에서 많은 우승컵을 거머쥐지 못했습니다. 만약 제라드가 우승에 집착하는 사나이였다면 레알 이적에 대한 관심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레알은 자신의 진가를 인정하는 무리뉴 감독이 속한데다 많은 우승을 경험할 수 있는 팀 입니다. 어쩌면 제라드의 레알 이적 최적기는 올해 여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라드는 올해 여름 리버풀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단 한 번도 피력하지 않았습니다. 우승에 대한 부와 명예보다는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했던 리버풀에 대한 의리를 고집했습니다. 비록 리버풀은 지난 시즌 리그 7위로 추락하면서 챔피언스리그 출전 기회를 잃었지만 팀의 재건을 위해 꿋꿋이 안필드를 지켰습니다. 우승 커리어가 화려한 선수만이 역사에 남는 훌륭한 선수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요지죠. A팀에 데뷔했던 1998년(당시 18세) 부터 12년 동안 리버풀에서 '원 클럽맨'으로 활약하면서 리버풀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이 깊기 때문에 뚝심있게 한 곳에서 머물기를 바랬습니다. 적어도 제라드의 마음 속에서는 리버풀을 최고의 팀으로 여길지 모릅니다.
 
반면 토레스는 3년 전 리버풀 이적 당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제라드 같은 원 클럽맨이 아닌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리버풀에서 뛰게 된 것이죠. 하지만 토레스는 지난 시즌 팀의 성적 부진으로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가 아닌 유로파리그를 치러야 하며 다음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을지 불투명합니다.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하기에는 리버풀 성적에 발목 잡혀 화려한 비상을 알리는데 어려움을 겪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라드보다는 토레스의 이적 가능성이 더 높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토레스도 결국에는 리버풀에 잔류했습니다. 그동안 첼시-맨체스터 시티의 영입 공세를 받았지만 그것을 일축하며 리버풀에 남기를 원했고, 팀의 부활을 이끌어야 하는 에이스의 숙명을 일깨웠죠. 물론 챔피언스리그 출전에 따른 동기부여는 어느 선수든 큰 힘이 될 수 밖에 업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의 부활을 주도하며 팀을 정상으로 도약시키는 희열은 다른 세계적인 선수도 느끼기 힘든 경험입니다. 더욱이 토레스는 리버풀 이적 이후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팀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남아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리버풀은 앞으로 어떻게든 제라드-토레스를 꼭 지켜야 합니다. '원 클럽맨' 제라드가 팀의 자존심을 상징하면 '골잡이' 토레스는 팀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짊어지는 존재입니다. 만약 두 선수를 다른 팀에 팔으면 재정 확보에 도움이 되겠지만 팀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리버풀이 제라드-토레스에 대한 전력적 의존도가 높은 만큼, 두 선수의 이적은 순위 하락으로 직결되어 명문 클럽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리버풀에 대한 애정이 깊기로 유명한 두 선수의 잔류가 계속 되고 팀이 새로운 투자자를 구하면, 리버풀은 다시 원래의 자리를 되찾으며 리그 우승을 향해 전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