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에 이어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이끌어갈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조광래 경남 감독이 내정됐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21일 오전 9시 30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를 통해 대표팀 감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동안 대표팀 감독이 되고 싶은 의지와 사명감, 열정을 표출하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렸던 조광래 감독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선임은 단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축구계의 재야 인사였던 조광래 감독이 대한축구협회(KFA)에 의해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축구계가 화합을 이루는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허정무 전 감독의 바톤을 받은 지도자가 국내 감독 중에서 선수 발굴 및 육성, 전술 능력이 가장 우수한 조광래 감독으로 이어진 것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1992년 전임 감독제 채택 이후 국내파 감독끼리 좋은 분위기 속에서 사령탑을 물려주고 이어받았으며, 인맥이 아닌 철저한 실력에 의해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특히 조광래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세대들이 중심을 잡았지만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퇴장하거나 어쩌면 한 명도 스쿼드에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새판짜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며 적극적이고 끊임없는 세대교체와 무한경쟁을 통해 스쿼드의 내실을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그 적격이 바로 조광래 감독 이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수원삼성 수석코치 및 안양LG와 FC서울 감독 시절, 그리고 경남 감독으로서 젊고 우수한 재능을 지닌 유망주들을 대거 발굴했습니다. 수원 시절에 고종수-이병근을 키웠고 안양 감독 이후에는 유망주 영입 폭을 넓히면서 이영표-김동진-최원권-정조국-김치곤을 비롯 이청용-한동원-고명진-김동석 같은 중학교 중퇴 선수들 까지 받아 들였습니다. 공격수였던 이정수를 수비수로 전환한 것도 조광래 감독 작품 입니다. 지금의 경남에서는 김동찬-김주영-윤빛가람-김영우-이훈-이용래-서상민 같은 무명 또는 프로 1~2년차 선수들을 올 시즌 K리그 상위권 돌풍의 주역으로 키운끝에 '조광래 유치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조광래 감독이 젊은 선수들에게 눈을 돌리는 이유는 성인 무렵에 접어드는 영건들의 기술 습득 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조광래 감독은 평소 "체격보다는 기술, 머리 좋은 선수를 선호한다"고 말할 정도로 기술 축구를 중요시하며 자신의 축구 철학을 따라줄 수 있는 젊은 선수들을 원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의 유기적인 패싱 게임과 넓은 시야를 활용한 빠른 볼 배급,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상대 수비를 따돌리고 문전으로 쇄도하는 스타일을 선호했고 안양과 경남에서 높은 효율성을 자랑했습니다.
이러한 조광래 감독의 스타일은 기존의 국내파 감독과 다릅니다. 국내파 감독들은 측면 옵션의 빠른 발 및 크로스에 의존하거나 후방에서 전방으로 롱볼을 띄우는 선굵은 축구를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 K리그 감독들이 세계 축구 흐름을 연구하고 받아들이면서 기술을 중요시하는 빠른 축구를 통해 역동적인 컬러로 변모했습니다. 이러한 K리그의 전술적 개선에는 조광래 감독이 중심이자 선두 주자였으며, 경남의 K리그 돌풍은 한국 축구의 트렌드가 힘에서 기술로 옮겨가고 있음을 상징했습니다.
물론 조광래 감독은 안양 시절 수비 축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2000년 K리그 우승 당시의 안양은 점유율을 포기하는 철저한 수비 축구를 통해 한 골 싸움을 펼치면서 최용수에게 한 번에 골 기회를 찔러주는 선 굵은 축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공격 축구에 눈을 뜨면서 젊은 선수들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거듭한 끝에 기술 축구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경남에서 꽃을 피우면서 마침내 대표팀 감독에 올라섰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기술 축구는 대표팀에서 무르익을 가능성이 큽니다. 경남은 김병지-김동찬 이외에는 억대 연봉자가 없었고 선수층이 엷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장기 레이스에 취약합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국내 최정상급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최상의 자원을 앞세워 기술 축구를 전파하고 젊은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항상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는 지도자로 꼽혔던 조광래 감독의 지도력이 대표팀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또한 조광래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선임은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은 선수들의 정교한 패싱게임과 조직된 움직임, 공간을 장악하는 강력한 압박으로 유로 2008 및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미드필더진의 패싱력은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입니다. 스페인을 비롯해서 기술 축구를 펼치는 팀들은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축구의 변화된 흐름을 받아들였고 한국도 그 대열에 포함됐습니다.
그래서 조광래 감독은 한국 대표팀에서 젊은 선수들을 중요시하는 세대교체를 통해 스페인식 축구를 접목시킬 것입니다. 한국의 기술력은 지난해 U-20 월드컵, U-17 월드컵 8강 진출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이청용-기성용-박주영 같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줄 세대들도 기술을 강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가 조광래 감독에게 선수 선발 및 육성 등과 같은 전권을 부여하고 임기까지 확실하게 보장하면 한국 축구의 긍정적 변화는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조광래 감독의 기술 축구가 한국 대표팀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 축구를 뒤흔들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