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던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스페인이 월드컵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고 한국이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대단원을 마무리 했습니다.
무엇보다 월드컵은 수많은 축구 영웅들을 배출했던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펠레와 마라도나, 크루이프, 베켄바우어, 호나우두, 지단 등에 이르기까지 월드컵을 빛낸 영웅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리고 향후 세계 축구계를 빛낼 '뜨는 별'이 어김없이 탄생하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가 하면,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아쉽게 작별했던 '지는 별'도 있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뜨는 별과 지는 별로 꼽을 수 있는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요?
스네이더르-외질-이청용은 '뜨는 별', 앙리-칸나바로-나카무라는 '지는 별'
먼저, 남아공 월드컵 실버볼을 획득한 베슬러이 스네이더르(26, 네덜란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스네이더르는 월드컵 본선에서 5골을 넣었는데 그 중 3골이 결승골 이었습니다. 16강 슬로바키아전-8강 브라질전에서 직접 결승골을 넣으며 네덜란드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죠. 좌우 양발 및 스루패스와 롱패스를 가리지 않는 다재다능한 패싱력을 앞세워 네덜란드 공격의 물꼬를 틀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지난 시즌 인터 밀란의 유로피언 트레블을 이끌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정상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섰습니다.
토마스 뮬러(21, 독일)의 득점왕-영 플레이어상 동시 수상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월드컵 직전까지 A매치에 단 2경기만 뛰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독일 축구의 새로운 해결사로 떠올랐습니다. 본선 1차전 호주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더니 꾸준히 공격 포인트를 생산한 끝에 5골 3도움으로 득점왕에 올랐고 영 플레이어상까지 획득했습니다. 오른쪽 윙어로서 적극적으로 문전에 침투하면서 골 기회 및 결정적인 볼 배급을 연결했던 것이 자신의 진가를 세계 무대에서 높일 수 있는 결정타로 작용했고 그것은 곧 독일의 선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뮬러의 동료로 활약했던 메수트 외질(22, 독일)의 활약은 그야말로 신선했습니다. 힘에 의지하고 투박한 스타일을 즐겼던 전차군단을 스스로의 힘에 의해 기술 축구로 바꾸었죠. 한 박자 빠른 날카로운 패스와 왕성한 움직임에 의한 볼 배급, 짧고 간결한 패스를 통해 패스 게임을 주도하며 독일 공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독일 최고의 테크니션으로서 팀 공격력에 창의력을 불어넣었고 그 결과는 독일이 본선 7경기에서 16골을 퍼붓는 공격 축구의 향연으로 이어졌습니다. 공을 끌지않고 간결하게 패스를 공급하는 외질에게서 카카의 향기가 납니다.
가나의 8강 진출을 견인한 앤소니 아난(24) 안드레 아예우(21, 이상 가나)도 눈길을 끕니다. 아난은 가나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운 세밀한 태클과 저돌적인 압박으로 에시엔의 불참 공백을 톡톡히 메웠습니다. 맨유와 첼시의 영입 공세를 받고 있어 '제2의 에시엔'으로 거듭날지 모릅니다. 아예우는 가나의 왼쪽 윙어로서 스루패스를 기반으로 삼는 정교한 볼 배급과 유연한 드리블 돌파를 통해 팀 공격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뮬러-도스 산토스(멕시코)와 함께 월드컵 영 플레이어 후보에 오를 만큼 앞으로의 촉망받는 미래가 기다려집니다.
상대팀의 골을 손으로 막아내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루이스 수아레스(23, 우루과이)도 선전했습니다. 본선 3차전 멕시코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우루과이의 믿음직한 해결사로 떠올랐고 16강 한국전에서는 경이적인 골 결정력으로 두 골을 몰아 넣었습니다. 감각적인 발재간과 폭발적인 스피드, 날카로운 슈팅을 앞세워 상대 수비진을 흔들었던 수아레스의 파괴력은 '골든 볼' 디에고 포를란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었다고 봅니다.
멕시코의 공격 듀오인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21) 하비에르 에르난데스(22, 치차리토, 이상 멕시코)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도스 산토스는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드리블 돌파를 앞세워 팀 공격의 물꼬를 트는 인상깊은 경기력을 과시했으며 월드컵 영 플레이어 후보에 올랐습니다. 에르난데스는 프랑스전과 아르헨티나전에서 골을 넣었는데 박스 안에서 슈팅 기회를 노리는 위치선정과 민첩한 움직임이 날카로웠습니다. 본선 3경기에서는 조커로 활약했지만 아르헨티나전에서 풀타임 출전하면서 멕시코 대표팀에서의 입지가 커졌습니다.
한국의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을 이끈 이청용(22, 한국)도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아르헨티나-우루과이전에서 골을 넣은데다 재치있는 드리블 돌파와 수준급의 기교를 앞세워 상대 수비를 교란했습니다. 박지성에 의존했던 한국의 공격이 좌우 측면에서 장단을 맞춰 균형을 실을 수 있었던 것도 이청용의 존재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 이청용은 지난 12일 미국 스포츠 전문지 <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가 선정한 월드컵에서 떠오른 스타 10인에 선정됐습니다.
혼다 케이스케(24, 일본)는 일본의 월드컵 원정 첫 1승 및 16강 진출의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카메룬전에서 마쓰이 다이스케의 크로스를 받아 상대 골망을 흔들었고 덴마크전에서는 왼발 무회전 프리킥으로 상대 골망을 흔드는 인상적인 경기력을 과시했죠. 원톱으로서 2골을 넣으며 일본의 고질적 문제였던 킬러 부재를 해결했습니다. 정대세(25, 북한)는 본선 3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팀의 열악한 전력 속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최전방과 2선을 질주하며 부지런히 뛰었습니다. 원톱으로서 짊어진 짐이 많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발휘했고 이제는 그 여세를 몰아 독일 보쿰에서 유럽 축구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고개를 숙인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티에리 앙리(33,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남아공 월드컵 플레이오프 아일랜드전에서 손으로 골을 넣으며 물의를 일으켰더니 이번 월드컵 본선 3경기 모두 선발 출전에 실패했습니다. 기량 노쇠화가 찾아오면서 팀 전력에 이렇다할 공헌을 세우지 못했죠. 결국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 대표팀의 벤치로 밀려났으면 2경기에 교체 출전했지만 무기력한 경기력을 거듭한 끝에 본선 탈락의 책임을 지고 말았습니다.
앙리와 더불어 니콜라 아넬카(31, 프랑스)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난 시즌 첼시의 더블 우승을 이끌며 기고만장했지만 남아공 월드컵에서 부진했습니다. 우루과이전과 멕시코전에서 원톱으로 출전했지만 팀 공격에 이렇다할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했고 상대 수비의 집중적인 압박을 이겨내지 못해 최전방에서 고립됐습니다. 특히 멕시코전에서는 하프타임때 도메네크 감독과 의견 충돌을 빚은 끝에 교체 조치 당하면서 대표팀에서 퇴출됐습니다. 그 이후 자신의 잘못은 없었다며 대표팀 영구 은퇴를 선언했지만 멕시코전이 자신의 생애 마지막 월드컵 경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경기 4골로 인상 깊은 공격력을 과시했던 욘 달 토마손(34, 덴마크)도 기량 노쇠화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순발력과 파워가 떨어지더니 상대 수비수들에게 힘을 쓰지 못해 고전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일본전에서는 페널티킥 실축 후 리바운드로 공을 침착히 밀어넣어 골을 추가했지만 치명적인 헛발질로 골 기회를 놓친것은 선수 본인에게 두고두고 아쉬운 일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의 주인공 파비오 칸나바로(37, 이탈리아)는 불과 1~2년 전 까지 세계 최고의 센터백으로 맹활약을 펼쳤는지 의심 될 정도의 경기력을 일관했습니다. 본선 3경기에서 맨 마킹, 수비 조율, 커버 플레이가 매끄럽지 못했고 키엘리니를 비롯한 동료 수비수와의 호흡까지 맞지 못해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이전까지 빗장수비의 핵심으로서 이름값을 떨쳤지만 37세로 접어들면서 순발력과 민첩성이 떨어지더니 상대팀의 빠른 문전 침투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독일 월드컵 영광의 사나이들도 몰락했습니다. 잔루카 잠브로타(33) 젠나로 가투소(32, 이상 이탈리아)는 4년 전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남아공에서는 본선 탈락의 책임을 지게 됐습니다. 두 선수 모두 전성기 시절에 비해 공수 양면에 걸쳐 내림세가 두드러졌으며 상대 공격에 흔들리는 불안안 모습을 보였습니다. 4년 전 포르투갈의 4강 진출을 공헌했던 데쿠(33, 포르투갈)는 본선 1차전 코트디부아르전에서 61분 출전했으나 부진을 거듭한 끝에 나머지 경기에 결장했습니다. 월드컵 직전까지 포르투갈 부동의 플레이메이커로서 맹활약을 펼쳤지만 기량 저하를 이겨내지 못해 팀 내에서의 입지가 단단히 좁아졌습니다.
한때 박지성의 라이벌로 꼽혔던 나카무라 슌스케(32, 일본)는 혼다에게 에이스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지난 시즌 스페인 에스파뇰에서의 실패로 슬럼프에 빠지면서 일본 대표팀에서의 입지가 한 순간에 가라앉았죠. 본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후반전에 교체 멤버로 출전하여 32분 동안 활약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서는 벤치를 뜨겁게 달구고 말았습니다. 일본이 월드컵 원정 첫 1승 및 16강 진출을 이루었던 카메룬전과 덴마크전에서는 벤치에서 출격 명령을 기다렸지만 끝내 오카다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