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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남아공 월드컵, '축구 황제' 등극은 없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이전까지의 화두는 '축구 황제'의 등극 여부 였습니다. 펠레-마라도나-호나우두-지단의 뒤를 이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새로운 축구 황제의 필요성이 대두 됐습니다. 그래서 카카-호날두-메시 같은 세계 3대 축구 천재,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이적인 활약을 펼쳤던 루니의 월드컵 활약에 대한 축구팬들의 시선과 관심, 그리고 기대가 다른 누구보다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네 명의 선수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축구 황제로 떠오르지 못했습니다. 자국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지 못한데다 8강 및 16강에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네 선수의 위상을 견제하거나 동등한 레벨을 지닌 새로운 대항마들이 등장하면서 세계 축구 판도는 '춘추 전국 시대'로 접어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스페인은 월드컵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축구 황제의 등극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기대해야 합니다.

세계 축구, 춘추 전국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선, 축구 황제로 도약하려면 월드컵 우승이 전제됩니다. 상대팀들의 집요한 견제 속에서도 자국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기 위한 에이스적인 기질이 필요합니다. 에이스의 숙명은 팀의 성적과 일치하기 때문에 팀을 세계 최정상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역량이 꾸준하고 최대한 발휘해야 합니다. 물론 축구는 팀 스포츠지만 슈퍼스타의 영향력이 막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펠레-마라도나-지단은 '에이스 그 이상의 힘'으로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우리들의 축구 영웅들 입니다.

하지만 카카-호날두-메시-루니는 자국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지 못한데다 기대와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카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지만 단 1경기에 교체 출전했을 뿐 당시에는 팀의 철저한 벤치 멤버 였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잦은 부상으로 근력과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턴 동작과 순간 스피드에 힘이 실리지 않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남아공 월드컵 본선 4경기에서 3도움을 기록했지만 본선 1차전 북한전에서 안영학, 8강 네덜란드전에서 데 용에게 봉쇄당하고 말았습니다. 32세가 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전성기 시절의 포스를 발휘할지는 의문입니다.

호날두-루니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부진했습니다. 둘 다 공격 기여도가 부족했고 상대팀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루니는 4경기 동안 극심한 부진 끝에 고개를 떨구면서 자국 축구팬들의 거센 야유를 받았고 호날두는 21개의 슈팅 중에 단 1골만 성공시키고 말았습니다. 특히 호날두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의해 본선 3경기 모두 MVP에 선정되었지만 팬투표에 의해 뽑혔던 한계가 있습니다.(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FIFA 테크니컬 스터디 그룹에서 검토) 두 선수 모두 축구 황제로 도약하기에는 팀 전력이 전체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에이스로서 팀의 문제점까지 짊어지기에는 부담이 컸습니다.

메시는 '다득점 윙어'의 명성과 달리 월드컵 본선 5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4-2-3-1, 4-3-1-2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30개의 슈팅 중에서 1골도 넣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는 조율에 강한 이미지를 심었지만 많은 슈팅을 효율적으로 살리지 못했음을 상기하면 임펙트가 부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16강 멕시코전, 8강 독일전에서 부진한 것은 축구 천재의 명성과 정반대적인 행보입니다. 메시도 아쉽지만, 디 마리아-막시의 기대 이하 폼으로 중원이 헐거워지고 메시가 공간 싸움에서 제약을 받았던 팀 플레이의 문제점이 축구 황제 등극을 어렵게 했습니다.

이러한 카카-호날두-메시-루니의 부진과 달리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비야-사비-포를란-스네이더르-외질-뮬러 같은 또 다른 슈퍼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지구촌 축구팬들을 열광 시켰습니다. 축구 황제로 등극하겠다는 선수들의 의욕보다는 월드컵에서 슈퍼 스타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선수들의 기세가 더 높았던 것이죠. 하지만 후자격에 속하는 선수들도 엄연히 축구 황제는 아닙니다.

남아공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은 에이스의 영향력보다는 조직력의 힘이 더 컸습니다. 8강 파라과이전까지 5골을 퍼부었던 비야는 본선 1차전 스위스전, 4강 독일전, 결승 네덜란드전에서 부진했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왼쪽 윙어로 출전한 경기에서 5골 넣었지만 본인의 주 포지션인 원톱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죠. 이러한 비야의 부진 속에서도 스페인이 우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수비와 미드필더진의 견고한 조직력, 즉 '실리축구'의 힘이 작용했습니다. 본선 7경기에서 8골2실점의 짠물 수비를 과시했는데 특히 16강-8강-4강-결승전에서 무실점으로 승리했습니다.

특히 비야는 카카-호날두-메시와 함께 견주어 볼 때 커리어적인 측면에서 과소평가 되었습니다. 카카-호날두-메시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지만 비야는 두달 전까지 발렌시아에서 활약하면서 챔피언스리그와의 인연이 깊지 않았습니다. 물론 월드컵 우승도 좋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에이스로서 소속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끄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단이 월드컵-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두 대회 MVP(최우수 선수, 월드컵으로 치면 골든 볼) 수상 경력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야가 축구 황제로 도약하려면 현 소속팀 FC 바르셀로나의 유럽 제패를 이끌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건재함을 과시해야 합니다.

비야의 팀 동료 사비도 아쉬움에 남는 선수입니다. 스페인의 패스 게임을 주도하는 플레이메이커로서 남아공 월드컵 우승의 절대적인 공헌을 했지만 골든 볼-실버 볼-브론즈 볼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임에도 골이 없었던 것이 과소평가 되었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비는 슈팅보다는 패스 및 공격 조율에 주력하는 선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다득점을 자랑하는 선수에 시선을 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단-카카-스네이더르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 호날두-메시-뮬러 같은 측면 자원들이 메이져대회 개인상 수상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골이라는 요소만 제외하면 사비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포를란은 남아공 월드컵 골든 볼을 수상했지만 엄연히 축구 황제는 아닙니다. 지난 5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유로파리그는 챔피언스리그보다 레벨이 낮은 유럽 클럽 대항전 입니다. 우루과이의 에이스로서 월드컵 4위를 이끈 것은 대단했지만 결과적으로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이 미진했던 것이 아쉬운 측면입니다. 스네이더르는 지난 시즌 인터 밀란의 유로피언 트레블 및 네덜란드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실패 때문에 아직은 화려한 커리어가 더 필요합니다. 독일의 에이스로 거듭난 외질-뮬러는 냉정히 말해 세계 축구의 미래를 빛낼 기대주의 위치에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세계 축구는 남아공 월드컵을 기점으로 춘추 전국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존의 카카-호날두-메시-루니 체제에서 새로운 슈퍼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 자리를 다투고 축구 황제 자리까지 넘어서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됐습니다. 과연 어느 선수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축구 황제로 거듭날 수 있을지, 남아공 월드컵 이후의 세계 축구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