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이 63번의 축구 전쟁을 마치고 세계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마지막 축구 전쟁을 앞두게 됐습니다. 마지막 언덕에서 전쟁을 치를 두 팀은 아직 세계 정상에 오른 경험이 없었습니다. 유럽의 축구 강호였으나 유독 월드컵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우승을 향한 치열한 혈전을 펼치게 됐습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오는 12일 오전 3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요하네스버그에 소재한 사커 시티에서 열리는 2010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분습니다. 역대 전적에서는 네덜란드가 8전 4승1무3패로 앞서있지만 스페인이 12골(10실점)을 기록해 더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스페인은 H조 1위를 기록한 뒤 칠레-파라과이-독일을 꺾고 결승에 올랐으며, 네덜란드는 E조 1위를 달리며 슬로바키아-브라질-우루과이를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과연 어느 팀이 월드컵 역대 첫 우승의 영예를 안을지 주목됩니다.
1. 네덜란드의 특명, 사비를 봉쇄하라
아무리 토털사커의 힘을 자랑하는 자랑하는 네덜란드라도 스페인과의 패스 게임 및 점유율 싸움에서 정면으로 이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스페인은 빠른 볼 처리에 의한 정확한 패스를 지속적으로 연결하면서 상대의 공격 의지를 떨어뜨리고 상대 수비 진영을 파고드는 리듬을 즐기고 있습니다. 4강 이전까지 5경기 13골의 오름세에 힘입은 독일의 공격 축구를 무너뜨려 결승에 진출했던 오름세를 타면서 우승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인 요한 크루이프가 조국이 아닌 스페인이 우승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려면 반드시 스페인을 이겨야 합니다. 스페인의 패스 게임을 주도하는 플레이메이커 사비를 봉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이 지난해 6월 25일 컨페더레이션스컵 4강에서 스페인을 2-0으로 제압했던 원동력은 사비 봉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비를 비롯한 스페인의 공격 옵션들이 미국 진영을 활발히 넘나들지 못하도록 패스를 사전에 차단하고 견고한 커버 플레이를 펼친 끝에 값진 승리를 거두었죠. 네덜란드의 판 보멀-데 용으로 짜인 더블 볼란치가 사비에게 향하는 패스를 얼마만큼 차단하고 종 방향의 활동 반경을 틀어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비는 민첩성이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에 네덜란드 더블 볼란치들이 많이 뛰어야 합니다.
2. 부스케츠는 스네이더르의 약점을 노릴 수 있을까?
스페인의 수비형 미드필더 부스케츠는 지난 9일 AP통신을 통해 "스네이더르의 공격을 막겠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매치업 상대인 스네이더르를 막아야 스페인의 우승이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가 사비 봉쇄에 주력하면 스페인 입장에서는 스네이더르를 철저히 견제해야 할 입장입니다. 스네이더르는 자신의 등번호 10번을 말해주듯, 네덜란드 공격의 핵심이자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끈 플레이메이커로서 5골을 넣은 것을 비롯 양질의 패스를 연결했던 명불허전의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부스케츠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부스케츠가 상대할 스네이더르는 한 번 막히면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잦은 부상 여파 때문에 상대의 견제를 피할 수 있는 공간쪽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이 약합니다. 활동량, 돌파 보다는 중원 장악으로 승부를 거는 타입이기 때문에 상대 수비에게 막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4강 우루과이와의 전반전에서도 상대의 밀집수비에 막혀 고전했던 것이 그 예죠. 하지만 상대 수비의 빈 틈이 열리면 그 즉시 전방으로 볼을 배급하기 때문에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면 봉쇄하기 어렵습니다. 부스케츠가 90분 동안 스네이더르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릴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3. 비야vs토레스, 스페인 원톱은 누구?
스페인의 고민은 원톱입니다. 유로 2008 우승 주역이었던 비야-토레스 투톱 중에 한 명을 월드컵 결승전에서 원톱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아라고네스 전 감독은 4-4-2를 선호했지만 델 보스케 감독은 미드필더진을 두껍게 강화하는 4-2-3-1로 전환하면서 두 선수가 최전방에서 함께 공존하지 않게 됐습니다. 만약 비야가 왼쪽 윙어로 내려가면 토레스가 원톱을 맡을 것이고, 비야가 원톱을 맡으면 파브레가스-페드로-실바 같은 미드필더 자원이 선발로 나설 수 있습니다. 단순한 골 수치만을 놓고 보면, 무득점 토레스보다는 5골의 비야가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원톱 문제는 비야-토레스 모두 해결짓지 못했습니다. 미드필더진이 중앙으로 쏠리는 경기 운영을 펼치고, 스페인과 상대하는 팀들이 중앙쪽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비야-토레스 같은 원톱 자원이 부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비야의 5골은 원톱이 아닌 왼쪽 윙어로 출전했을 때 기록했던 결과물 이었습니다. 본선 1차전 스위스전, 4강 독일전에서는 원톱으로 뛰었으나 부진했습니다. 스페인이 패스 게임을 주도하면서도 6경기에서 7골에 그쳐 득점력이 부족한 것은 원톱 문제에 있었습니다. 과연 결승전에서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지을지 주목됩니다.
4. 판 페르시, 네덜란드 역습의 정점 찍을까?
네덜란드도 스페인과 더불어 원톱의 득점력이 취약합니다. 판 페르시가 6경기에서 1골에 그쳤기 때문이죠. 네덜란드가 판 바스턴, 베르캄프, 클루이베르트, 마카이, 판 니스텔로이 같은 대형 골잡이들을 여럿 배출했음을 상기하면 판 페르시의 득점력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선전하고 있습니다. 카위트-스네이더르-로번으로 짜인 2선 미드필더들의 전방 침투가 매끄럽게 이루어지도록 상대 수비 빈 공간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연계 플레이를 펼치면서 동료 선수들의 슈팅 기회를 마련했죠. 4강 우루과이전 스네이더르의 골도 그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전에서는 판 페르시의 골이 필요합니다. 네덜란드가 스페인 미드필더들의 패스 게임을 제압하려는 압박 작전을 펼치면서 빠른 역습을 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전방 공격수의 골이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카위트-스네이더르-로번이 역습 기회를 노리고 판 페르시가 후방에서 공을 받아 골을 해결짓는 패턴이죠. 판 페르시가 스페인의 철벽 수비를 이끄는 푸욜-피케와 매치업을 벌이기 때문에 힘든 경기를 펼칠 가능성이 높지만 네덜란드 부동의 원톱으로서 그 가치를 실력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5. 주목을 끄는 매치업 대결 5가지
(1) 득점왕 대결이 흥미롭습니다. 비야와 스네이더르는 월드컵에서 5골씩 넣으며 포를란(우루과이) 뮬러(독일)과 득점 공동 선두에 올랐습니다. 포를란과 뮬러는 3,4위전이 끝나면서 더 이상 추가골을 기록할 수 없지만, 비야와 스네이더르는 아직 한 경기 더 남았기 때문에 단독 득점왕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남았습니다. 특히 비야는 A매치 43골을 기록해 앞으로 두 골 더 추가하면 스페인 역대 A매치 최다골(라울, 44골) 기록을 세웁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이룰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2) 사비와 스네이더르는 두 팀의 에이스이자 플레이메이커로서 조국의 우승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에이스의 숙명은 팀의 성적과 비례하기 때문에 맹활약을 벼르고 있을 것입니다. 사비가 숏패스를 위주로 부지런히 패스를 연결짓는 성향이라면, 스네이더르는 사비에 비해 패스 시도가 적은 편이지만 좌우 공간과 중장거리 패스를 가리지 않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과연 어느 선수의 패스가 효율적이고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 주목됩니다.
(3) 경기 내용에서는 카프데빌라와 로번의 맞대결이 흥미롭습니다. 카프데빌라는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세계 최정상급 왼쪽 풀백으로 도약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날카로운 크로스와 정확한 패스, 상대 윙어를 꽁꽁 막는 수비력을 앞세워 공수 양면에 걸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무엇보다 상대 윙어에게 뒷 공간을 쉽게 내주지 않는 장점은 스페인의 A매치 3경기 연속 무실점 발판이 됐습니다. 로번은 감각적인 발재간으로 상대 측면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네덜란드 공격의 물꼬를 트는 성향입니다. 거침없는 움직임으로 마크맨을 따돌려 골 기회를 노리기 때문에 두 선수의 접전이 치열할 것입니다.
(4) 푸욜과 헤이팅아의 센터백 대결도 흥미롭습니다. 두 선수의 대결은 남아공 월드컵 최고의 센터백을 가리는 경기가 될 것입니다. 푸욜이 커멘더형 센터백으로서 수비 라인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했고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투철한 수비력을 발휘했다면, 헤이팅아는 오른쪽 풀백에서 센터백으로 전환하면서 민첩한 몸놀림을 앞세운 대인방어로 많은 재미를 봤습니다. 두 선수 모두 강력한 승부근성을 지녔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는 투지가 있으며 공교롭게도 오른쪽 풀백으로 활용 가능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5) 카시야스와 스테켈렌부르흐의 골키퍼 대결은 야신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카시야스는 6경기에서 2실점만 허용한데다 16강-8강-4강에서 무실점을 기록해 스페인의 결승 진출을 공헌했습니다. 스테켈렌부르흐는 6경기에서 5실점을 기록했지만 16개의 슈퍼 세이브를 기록해 카시야스(12개)보다 더 많습니다. 카시야스가 슛 스토핑 및 수비 조율이 강점이라면 스테켈렌부르흐는 뛰어난 반사신경을 자랑하는 선수입니다. 과연 누가 결승전 선방에 힘입어 야신상을 받을지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