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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혼다-엔도, EPL 실패 가능성 높은 이유

 

일본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그 주역이었던 혼다 케이스케(24, CSKA 모스크바) 엔도 야스히토(30, 감바 오사카)가 유럽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혼다는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시티, 아스날, AC밀란, 세비야 같은 유럽 빅 클럽 이적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엔도 또한 리버풀의 영입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영입설로 주목받는 상황입니다.

두 선수 외에 모리모토 다카유키도 아스날의 러브콜을 받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모리모토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카타니아)에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는 바람에 아스날 이적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반면 혼다와 엔도는 월드컵 맹활약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에 이적시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유럽 빅 클럽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만약 두 선수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이루어지면, 일본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실패 잔혹사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혼다-엔도, EPL 빠른 템포 및 거친 몸싸움 적응 관건

일본 축구는 지금까지 네 명의 프리미어리거를 배출 했습니다. 2001년 아스날에 진출한 이나모토 준이치를 시작으로(2002년 이후 풀럼, 웨스트 브롬위치 이적) 토다 가즈유키가 토트넘, 니시자와 아키노리가 볼턴, 그리고 2005년 하반기에 나카타 히데토시가 일본인 선수로는 마지막으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해 실패의 멍에를 지고 잉글랜드를 떠났습니다.(일본 골키퍼 가와구치 요시카쓰는 당시 챔피언십리그에 속했던 포츠머스에서 뛰었고 2003/04시즌 팀의 프리미어리그 승격과 함께 덴마크리그로 떠났습니다.)

이러한 일본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실패 원인은 고질적인 피지컬 부족 때문입니다. 프리미어리그에 다부진 체격 조건과 거친 몸싸움을 펼치는 선수들이 즐비하다보니 이들과 경쟁을 펼칠 만큼 신체적 조건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거친 타입의 선수들과 대등하게 맞서려면 두둑한 배짱이 필요한데 그동안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던 선수들은 그런 면모가 부족했습니다. 일본 축구의 영웅이었던 나카타의 프리미어리그 실패는 세리에A에서 걷잡을 수 없었던 슬럼프 여파가 주 원인 이었지만 결국에는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이 일본 선수 영입을 꺼리는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반면 혼다와 엔도는 투철한 승부근성을 자랑하는 선수들 입니다.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한 발 더 뛰면서, 저돌적으로 몸싸움을 펼치면서 상대 공격을 저지하거나 수비수와 경합을 펼칩니다. 실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겠다는 정신력이 다른 누구보다 뒤쳐지지 않다는 것을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입증했습니다. 더욱이 혼다는 나카무라 슌스케보다 피지컬이 좋으며 엔도는 피지컬 부족의 약점을 악착같은 몸싸움과 동료 선수와의 철저한 협력 수비로 이겨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던 이전 세대와 다른 행보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혼다와 엔도가 프리미어리그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잉글랜드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납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프리미어리그는 아시아 선수가 성공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박지성-이영표가 2005/06시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한국인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진출 러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청용이 볼턴의 에이스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박주영-조용형-김형일이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영입 관심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축구도 누군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하면 또 다른 일본 선수들이 잉글랜드 무대를 밟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혼다-엔도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바랄지 모를 일입니다.

물론 혼다와 엔도가 프리미어리그 클럽의 영입 관심을 받는 것은 구단의 마케팅 차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잉글랜드 클럽들이 재정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양인 선수 영입을 통한 마케팅 수익 증대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인 선수 중에서 철저한 마케팅 선수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선수는 없었습니다.(설기현은 2006년 레딩 시절을 말함) 엔도를 노리는 리버풀은 올 시즌 부터 스폰서로 참여한 영국계 은행 <스탠다드 차터스>가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동양인 선수 영입을 노리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관건은 혼다와 엔도의 프리미어리그 성공 여부 입니다. 프리미어리그는 공수 전환이 빠르고 쉴새없이 반복되는데다, 빠른 템포의 공격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돌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넓기 때문에 활동적인 성향의 선수들이 유리하며 미드필더진에서는 왕성한 활동량을 강점으로 삼는 선수들이 적응하기가 쉽습니다. 혼다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톱으로 뛰었지만 본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오른쪽 윙어를 소화하는 미드필더이며, 엔도는 박스 투 박스 성향의 중앙 미드필더 입니다. 두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면 빠른 템포 및 빠른 압박을 요구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혼다는 경기 내내 활기찬 움직임을 통해 공격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CSKA 모스크바에서는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팀의 공격 과정에 따라오지 못하는 장면이 종종 노출 됐습니다. 개인 드리블 돌파와 오픈패스 위주를 강점으로 삼고 있지만 그 패턴이 단조롭다보니 상대 수비수들에게 읽히기 쉬우며 월드컵 16강 파라과이전 부진이 그 예 입니다. 한마디로 경기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부족합니다. 월드컵 직전에 오카다 다케시 감독과 수비가담을 놓고 대립각을 세웠던 적이 있을 정도로 팀 플레이가 아직 덜 여물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의 빠른 템포는 팀 플레이가 근간이기 때문에 혼다가 적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공격수로서의 혼다도 프리미어리그 성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톱을 맡은 것은 일본 대표팀 공격수들이 월드컵 직전까지 침체를 거듭했기 때문이며 혼다가 급조된 상태에서 최전방을 누볐습니다. 하지만 공격수는 상대 수비수들의 압박을 받기 쉬운 포지션입니다. 혼다는 프리킥으로 골을 넣는 능력이 출중하지만 상대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내구성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더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교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반면에 엔도는 혼다와 다릅니다.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뛰는 선수로서 빠른 공수 전환 및 공수 양면에 걸친 기량이 골고루 갖춰진 선수이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에 정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로 중앙에서 뛰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왼쪽 윙어로 전환할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빠른 템포와 거친 압박에 직면할 것입니다. 줄곧 일본 J리그에서 뛰면서 아기자기한 패스 플레이를 통한 느린 템포에 몸이 베었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에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측면으로 전환하면 상대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문제는 전형적인 윙어가 아닙니다.

더욱이 엔도는 올해 나이가 30세 입니다. 축구 선수의 전성기는 대략 27~28세이며 그 이후에는 전반적인 운동능력이 저하되면서 기량이 내림세에 접어들기 쉽습니다. 프리미어리그의 중앙 미드필더는 엄청난 활동량과 탄탄한 압박을 강점으로 삼기 때문에 체력이 좋아야하는데, 엔도는 내림세로 접어들 시기입니다. 그동안 체력 관리에 충실했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노장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나이에 프리미어리그에서 도전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따릅니다. 리버풀의 러브콜이 빅 클럽의 이적 제안을 받는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무리한 도전은 본인의 커리어에 이롭지 않습니다.

현 시점에서 혼다와 엔도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면 이나모토-토다-니시자와-나카타에 이어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엔도는 30세의 나이가 유럽 진출의 부담거리로 작용할 수 있지만 혼다는 프리미어리그보다는 기술로 승부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적합한 타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두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이적이라는 도전장을 내밀지, 아니면 다른 리그로 진출하거나 현 소속팀에 잔류할지 올해 여름 이적시장 행보가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