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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루니-호날두, 축구황제 되기 힘든 결정적 이유

 

25세 동갑내기인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지난해 여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대표하는 듀오로 활약했습니다. 비록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두 선수 사이의 콤비 관계가 깨졌지만, 세계 축구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축구황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공통점은 여전했습니다. 호날두는 2007/08시즌의 경이적인 활약에 힘입어 세계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고 루니는 올 시즌 맨유의 에이스 및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면서 축구황제 도약의 가능성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루니와 호날두는 남아공 월드컵 16강에서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대표팀이 각각 독일과 스페인에게 패배하면서 월드컵을 통해 축구황제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월드컵은 세계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축구황제로 도약하기 위한 절대적인 바로미터 입니다. 펠레-마라도나-호나우두-지단이 축구황제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월드컵이 결정타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루니와 호날두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한 가지의 결정적인 이유가 걸림돌입니다. 바로 월드컵 우승입니다.

루니-호날두, 월드컵 우승 이끌기에는 팀의 레벨이 문제

과거에는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고도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세계 축구를 평정했던 디 스테파노가 그 예입니다. 디 스테파노는 194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 및 남미 축구계를 평정했고 1953년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챔피언스컵(지금의 UEFA 챔피언스리그) 5연패를 비롯 레알 마드리드에서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며 30대 후반까지 거침없는 축구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비록 월드컵에 단 1경기도 출전하지 않았지만 남미와 유럽을 모두 제패했던 세계 최초의 선수로서 오늘날까지 이름을 남기게 됐습니다.

하지만 현대 축구는 축구황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유럽 진출을 비롯 월드컵 및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커리어,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같은 개인상 수상 여부까지 중요시합니다. 카카가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면서도 아직 축구황제 반열에 올라서지 못한 이유는 남아공 월드컵 이전까지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에이스로 활약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지만 본선 3차전 코스타리카전 교체 출전 이외에는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가 없었던 철저한 벤치 멤버 였습니다.

그런데 축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끈 마라도나의 원맨쇼 기질은 월드컵 전체 판도를 흔들었지만 한 명의 맹활약으로 우승하는 경우는 더 이상 힘들게 됐습니다. 현대 축구에서는 상대 공격 옵션의 발을 묶기 위해 철저한 압박 작전을 펼쳐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1998년-2006년 월드컵 우승 원동력은 '수비' 였으며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실리축구가 대세입니다. 이제는 견고한 수비 밸런스를 자랑하는 팀들이 우승의 고지에 가까워졌으며, 아무리 기량이 출중한 공격 옵션이라도 상대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름값을 보여주기 힘듭니다.

그래서 현대 축구에서는 한 명의 활약에 의존하는 원맨팀이 성공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한 명의 에이스가 있으면 그 에이스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주연급 조연이 필요하며, 그들을 뒷받침하는 조연들의 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또한 주연과 조연의 호흡을 가다듬어 조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스쿼드에 즐비해도 팀으로서 융합하지 못하면 그 팀은 우승할 수 없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팀이 루니가 속한 잉글랜드, 호날두가 속한 포르투갈 입니다.

잉글랜드의 남아공 월드컵 16강 탈락 원인은 공격과 미드필더에 걸친 부조화 및 그동안 루니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었던 득점 패턴에 있었습니다. 루니는 월드컵 유럽 예선 9경기 9골 및 그동안의 평가전에서 꾸준히 골을 터뜨렸지만 문제는 잉글랜드 스쿼드에서 루니 이외에는 골을 책임질 수 있는 공격 옵션이 없었습니다. 제라드-램퍼드 같은 대표적인 미들라이커들을 보유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 준수한 골 능력을 과시했던 디포-크라우치가 있었지만 팀으로서는 루니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루니는 발목 부상 여파로 컨디션이 저하되면서 평소만큼의 과감함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거나 흔드는 움직임이 미흡했고 결정적인 골 기회를 노리지 못해 결국 무득점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루니가 실마리를 풀지 못했던 잉글랜드의 득점 패턴이 꼬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여기에 디포-헤스키가 루니의 파트너로서 매끄럽지 못한 콤비 플레이를 일관했고, 제라드-밀너 같은 중앙 미드필더 출신의 윙어들이 중앙쪽에 쏠리는 공격 패턴을 나타내면서 서로 위치가 겹치는 혼동 현상이 벌어집니다. 션 라이트 필립스-레넌-월컷-벤틀리 같은 쌕쌕이 윙어들은 선발 스쿼드에 중용받지 못하면서 미드필더진의 공격 템포가 느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의 빠듯한 경기 일정을 소화하면서 폼이 정상적이지 않은 문제점도 있지만 조직적인 짜임새부터 실종된 것이 더 문제입니다. 팀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루니가 공격진에서 고군분투를 하더라도 월드컵 우승하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호날두의 포르투갈은 다소 억울한 감이 있습니다. 16강 스페인전에서 후반 18분 비야에게 결승골을 허용했을 때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었고, 후반 44분 코스타가 카프데빌라를 팔꿈치로 가격하여 퇴장당한 것은 주심이 상대팀의 헐리웃 액션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포르투갈의 공격력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호날두 의존증, 데쿠 노쇠화, 최전방 공격수 파괴력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선 수비-후 역습 패턴의 전술로 변화했지만 브라질-스페인을 상대로 단 1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호날두라는 출중한 공격 자원이 있지만 문제는 나머지 선수들의 파괴력 및 전술적인 짜임새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호날두는 클럽과 대표팀에서의 행보가 서로 정반대 였습니다. 클럽에서는 거의 매 경기 골을 터뜨리며 다득점 윙어로서의 진가를 뽐냈지만 대표팀에서는 골이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월드컵 유럽 예선 7경기 무득점 및 월드컵 직전에 열렸던 중국-카보베르데-카메룬 등과 같은 약체와의 평가전에서도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북한전에서 후반 막판에 골을 넣었지만, 본선 4경기에서 21개의 슈팅을 날려 1골밖에 성공시키지 못하는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상대팀의 집중적인 압박에 막히다보니 골을 넣을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무리하게 슈팅을 난사했던 것이 골 결정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됐습니다.

루니와 호날두가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아쉬움을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서 만회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루니의 잉글랜드는 성공적인 세대교체 없이는 우승이 힘들어질 것이며 호날두의 포르투갈은 파괴력이 뛰어난 최전방 공격수 및 데쿠를 데체할 새로운 플레이메이커 발굴, 세계 톱 클래스의 개인 역량을 자랑하는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더 배출되어야 합니다. 팀이 도와주지 않으면 루니와 호날두가 월드컵 우승을 통해 축구황제로 거듭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쉬움이 컸던 두 선수의 앞날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