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축구팬들에게 '세계 3대 축구 천재'로 일컫는 카카-호날두-메시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전후로 세계 축구게를 지배할 존재로 주목 받았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잉글랜드-스페인 리그를 대표하는 영건으로서, 강력한 임펙트를 앞세운 특출난 기량으로 자신감 있게 경기를 풀어가며 지구촌 축구팬들을 열광 시켰습니다. 카카가 2007년, 호날두가 2008년, 메시가 2009년에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면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하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축구 천재 판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카카는 브라질의 8강 진출을 이끌었으나 '그라운드 신사'라는 닉네임과 달리 3경기에서 경고 카드 3장을 받은데다(코트디부아르전에서 케이타의 헐리웃 액션에 의해 억울하게 경고 받았지만) 잦은 부상 여파로 턴 동작이 매끄럽지 못하며 유연성이 떨어졌습니다. 메시도 아르헨티나 8강 진출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두 시즌 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의 명성과 달리 본선 무대에서 골이 없는게 아쉽습니다. 볼 배급 역할에 치중하고 있지만 골이 없는게 옥의 티 입니다. 그리고 호날두의 포르투갈은 16강에서 탈락했습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펠레-마라도나-호나우두-지단의 뒤를 이을 새로운 축구 황제로서 누가 자리에 오르는지 여부가 핵심 포인트 였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뜨겁게 달궜던 호나우두-지단이 월드컵과 작별하면서 카카-호날두-메시 중에 한 명이 바톤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이전의 예상과 달리, 독일의 메수트 외질(22, 브레멘)이 앞으로 세계 축구를 화려하게 장식할 새로운 축구 천재로 거듭나기 위한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외질은 독일의 8강 진출을 이끌면서 자신의 출중한 축구 재능을 맘껏 발휘하며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놀라움과 신선함을 불어 넣었습니다. 카카-호날두-메시와 다른 컨셉을 자랑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튼 축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게 됐습니다. 좌우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역할까지 가능한 전천후 미드필더로서 활용 가치가 높습니다. 브레멘에서는 주로 왼쪽 윙어로 뛰었고 월드컵 직전의 독일 대표팀에서는 4-4-2의 중앙 미드필더와 오른쪽 윙어까지 소화하더니 월드컵에서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아 독일 공격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그런 외질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 4경기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확실하게 인지 시켰습니다. 다이나믹한 드리블을 앞세운 과감한 공격 침투, 날카로운 패싱력, 왼발 슈팅을 통해 공격의 실마리를 풀었는데 경기 상황에 따른 패스의 강약 조절 및 여러형태의 패스를 구사하며 독일 공격의 아기자기한 맛을 키웠습니다. 그런 활약 끝에 호주전 4-0 승리를 공헌었고 세르비아전에서는 0-1 패배 속에서도 여러차례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마련하며 상대 중원을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가나전에서는 왼발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이끄는 해결사 기질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라이벌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는 독일의 4-1 승리의 결정적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중원에서 공을 소유하면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짧고 간결한 패스를 주고 받아 공격 기회를 노리더니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며 역습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가 단조로운 공격 전개 때문에 수비수들 위치가 앞쪽으로 쏠리면서 밸런스가 흔들렸는데 외질이 그 약점을 간파하여 상대가 예측하지 못했던 공간에서 패스를 전개한 것이죠. 특히 독일이 네 번째 골 상황에서는 직접 공을 가로채 왼쪽 공간에서 드리블 돌파를 펼친 뒤 반대쪽 공간에 있던 토마스 뮬러에게 빠른 볼 처리에 의한 패스로 골을 엮어냈습니다.
무엇보다 외질의 잉글랜드전 맹활약이 값진 이유는 자신의 기량이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는 비록 조직력에 문제가 있지만 '세계 최고의 리그'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는 선수들이 대다수였고, 외질의 매치업 상대는 프랭크 램퍼드와 가래스 배리 같은 베테랑 이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두 선수를 실력으로 농락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지만 외질은 두 선수가 공격쪽으로 나오는 약점을 간파하여 간결한 패스 플레이를 유도하며 독일의 대승을 이끄는 영리함을 과시했습니다. 더욱이 잉글랜드는 라이벌이기 때문에 22세의 젊은 선수로서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 오히려 담대한 모습을 보이며 독일 축구팬들을 안심 시켰습니다.
외질은 이타와 이기를 적절하게 섞을 수 있는 이상적인 미드필더입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이타적인 경향이 뚜렷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수 있는 선수죠. 지난 시즌 28경기에서 3골 12도움, 올 시즌 31경기에서 9골 12도움을 올렸는데 득점력이 향상됐습니다. 지금의 기세를 꾸준히 이어가면 미들라이커로서 우수한 가치를 뽐낼 것입니다. 지난해 6월 유럽 U-21 선수권 대회 결승 잉글랜드전에서는 1골 2도움을 기록해 독일의 4-0 대승 및 대회 첫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올 시즌에는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로 부터 분데스리가 전반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면서 독일 축구의 10년을 짊어질 존재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실, 독일의 남아공 월드컵 전망은 어려웠습니다. 미드필더진의 구심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미하엘 발라크가 월드컵 직전 불의의 무릎 부상으로 남아공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이 그동안 발라크의 리딩 및 패스 전개를 앞세워 조직력을 다졌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우기가 버거울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독일이 외질을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하는 4-2-3-1로 전환했으며 월드컵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했습니다. 외질은 월드컵 무대에서 주눅들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이끌며 독일 공격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거듭났습니다.
무엇보다 외질의 가치가 높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월드컵을 통해 발라크의 존재감을 확실히 지웠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요한 구르퀴프는 월드컵에서 지네딘 지단의 후계자 답지 못했던 실망스런 활약을 펼쳤고, 잉글랜드의 션 라이트 필립스-레넌-월컷-벤틀리 같은 쌕쌕이 윙어들은 데이비드 베컴의 자리에서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질라르디노-이아퀸타 같은 공격수들은 토니-토티-델 피에로 같은 독일 월드컵 우승을 이끈 공격 옵션을 대체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독일은 외질의 '미친 존재감'에 힘입어 월드컵 우승 행보에 탄력을 얻게 됐습니다.
외질은 내년 여름 브레멘과의 계약이 종료됩니다. 올해 여름 및 내년 1월 이적시장을 통해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엄청난 이적료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맨체스터 시티, 아스날, 첼시, FC 바르셀로나의 영입 관심을 받고 있으며 가장 많은 이적료를 브레멘에 제시하는 팀이 외질을 데려갈 것으로 보입니다. 굳이 빅 클럽에 가지 않더라도 브레멘이 올 시즌 분데스리가 3위에 올라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기 때문에 월드컵 이후 외질의 경기를 쉽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 외질은 이미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카카-호날두-메시의 뒤를 이을 세계적인 축구 천재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면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메시가 속한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괄목할 기량을 과시하며 독일의 승리를 이끌면 남아공 월드컵 베스트 영 플레이어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며 골든볼(최우수 선수)를 노릴 수 있습니다. 외질이 축구 천재로 거듭나려면 아르헨티나전 활약상이 중요한 상황입니다. 그 기세를 앞으로 계속 이어가며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면 세계 축구의 1인자는 메시에서 외질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남아공 무대에서 과시했던 포스를 놓고 보면 축구 천재로 부르기에 손색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