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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축구, 수아레스 골 결정력 배워야 한다

 

한국은 우루과이전에서 1-2로 패하면서 남아공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의 꿈을 이루었지만 우루과이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두 번의 실점 상황에서 골키퍼 정성룡의 판단 미스가 있었고 수비수들의 안이한 커버 플레이가 아쉬웠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고질적인 단점으로 나타났던 고질적인 수비 조직력의 약점은 우루과이의 벽을 넘기 힘든 요인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우루과이와의 경기 내용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전반 중반까지 몸이 무거운 모습을 보이며 비효율적인 롱볼을 날리는 장면이 속출했지만, 전반 29분 박지성이 왼쪽 측면에서 페레스-아레발로를 제치고 빠른 드리블 돌파를 펼쳐 공격의 물꼬를 텄던 장면은 한국의 공격력이 물이 오르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2분 뒤에는 박주영이 골문 40m 거리에서 왼발 중거리슛을 날리면서 우루과이 수비 진영을 상대로 과감한 공격력을 앞세워 골을 넣으려는 한국 선수들의 의지가 후반 중반까지 게속 됐습니다.

특히 한국의 우루과이를 상대로 매끄러운 패스 게임을 펼쳤던 순간은 놀라웠습니다. 상대 선수를 끈질기게 견제하거나 2~3명이 상대 선수를 애워쌓는 협력 수비 과정에서 공을 빼앗아 빠른 공격 전환 및 빠른 볼 배급에 의해 역습을 시도했던 장면이 좋았습니다. 개인기와 패싱력이 뛰어난 우루과이를 상대로 패스 게임에서 우세를 나타냈던 한국의 기술력은 과거 '개인기 부족'이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이전의 한국 축구보다 진보된 모습 이었습니다. 남미의 기술을 끈질긴 수비로 저지하고 한국의 기술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던 경기력은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웠던 것은 골 결정력 이었습니다. 축구는 상대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스포츠입니다. 과정보다는 결과로 말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아무리 경기력이 좋지 않아도 골을 해결지으면 이길 가능성이 더 많아집니다. 한국의 수비 조직력이 불안했고 우루과이 미드필더들의 경기 장악 부족이라는 약점이 서로 대등했다면, 골 결정력은 두 팀의 희비가 엇갈리는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한국 축구가 우루과이 축구에게 배워야 할 유일한 키워드는 '골 결정력' 입니다. 특히 우루과이 골잡이 루이스 수아레스(23, 아약스)는 6개의 슈팅 중에 5개가 유효 슈팅 이었으며 그 중에 2개가 한국의 골망을 가르는 골로 이어졌습니다. 올 시즌 네덜란드 에레데비지에 33경기 35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맨유-첼시-토트넘-AC밀란-FC 바르셀로나의 러브콜을 받았던 수아레스의 골 결정력은 세계 톱 클래스로 손색 없었습니다. 한국은 우루과이전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았던 디에고 포를란 봉쇄에 주력했지만, 실점 과정에서의 커버 플레이 미스로 수아레스의 발을 묶지 못해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공격수는 단순히 골을 넣는것도 좋지만 어떤 방법으로 상대 골망을 흔드는 것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어느 위치에서 골을 해결짓고 그 상황에 적합한 좌우 양발과 여러가지 킥 중에 하나를 빠르게 판단하여 골을 터뜨릴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수아레스의 첫번째 골은 탁월한 위치선정과 판단력이 돋보였습니다. 포를란이 왼쪽에서 크로스를 날릴 때 오른쪽 공간쪽으로 빠르게 쇄도하면서 공을 받는 순간에 골을 해결 지었습니다. 한국 수비수들이 포를란의 위치에 흔들리면서 왼쪽에 빈 공간을 열어둘 때, 박스 바깥에서 포를란의 크로스 궤적을 읽었던 수아레스의 빠른 판단력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수아레스의 두번째 골은 킥력이 얼마만큼 정확하고 날카로운 선수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포를란의 코너킥 때 양팀 선수들이 문전에서 혼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로데이로가 박스 왼쪽 공간에 있었던 수아레스에게 헤딩 패스를 연결했습니다. 수아레스는 김정우의 견제에 아랑곳 않고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문전에서 양팀 선수 숫자가 적지 않아 슈팅 각도가 좁았지만, 수아레스는 왼쪽 공간에서 왼발이 아닌 오른발을 통해 공에 강한 힘을 전달했고 킥 과정에서 발목이 흔들리지 않았에 정확한 슈팅을 날렸습니다. 슈팅시의 몸의 균형도 흐트러짐이 없었기 때문에 슈팅 타이밍을 빠르게 가져갔고 공의 세기도 강했습니다.

축구는 발로 경기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스포츠 종목입니다. 발은 손에 비해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패스 및 슈팅 상황에서 실수가 잦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만큼 실수를 줄이는 것이 관건인데 꾸준하고 철저한 연습을 통해 자신의 장점으로 승화해야 합니다. 수아레스가 경이적인 골 결정력을 선보였던 것도 부단한 연습의 결과물 입니다. 한국의 공격수들이 전통적으로 골 결정력에 약점이 있었지만 연습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골을 해결지을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됩니다. 그 결과는 수아레스 처럼 골 결정력을 주무기로 하는 대형 공격수의 등장으로 귀결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공격진에서 한 가지 칭찬하고 싶은것은 박주영의 연계 플레이 였습니다. 비록 골 기회를 날렸던 아쉬움이 있지만 2선으로 직접 내려와서 패스 플레이를 주도하는 장면은 인상적 이었습니다. 루가노-고딘(빅토리노)으로 짜인 우루과이의 센터백 조합이 견고한 수비 조직력을 구축하다보니 중앙에서 공간 창출할 수 있는 틈이 보이지 않자 2선으로 내려왔습니다. 박주영의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한국 미드필더들의 공격 부담을 줄이면서 공격 옵션끼리의 간격이 좁아졌고 간결한 패스를 통해 상대 미드필더 뒷 공간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쉬웠던 것은, 박주영의 패스 이후에 2차-3차 공격이 유기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것입니다. 4-2-3-1에서 미드필더들의 활동 부담이 커지면서 더 이상의 공격을 전개하기에는 힘에 부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반 중반에 이동국을 교체 투입해 4-4-2로 전환했지만 미드필더들의 체력이 소진되고 수아레스에게 골을 허용하여 패색이 짙어지면서 분위기가 일시적으로 다운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박주영의 스타일 변화는 칭찬해야 합니다. 박주영이 올 시즌 기복이 심했던 이유는 잦은 부상 때문도 있지만 최전방에서 스스로 공격을 해결짓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특히 시즌 막판에 문전 앞에 머무는 모습이 많아지면서 공격형 미드필더 루크만 하루나와의 간격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고 AS 모나코의 공격 패턴이 네네의 드리블 돌파에 의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은 8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통해 움직임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 2선과의 공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우루과이전에서 연계 플레이가 좋아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4-2-3-1은 미드필더를 두껍게 배치하는 장점이 있지만 원톱이 고립되기 쉬운 단점이 있습니다. 최전방에 고정된 공격수보다는 2선과 함께 호흡하며 골 기회를 노리는 활동적인 공격수가 인정받기 쉽습니다. 물론 박주영은 4-2-3-1을 쓰는 모나코의 주전 원톱으로 뛰면서 공중볼에 강한 모습을 과시했지만 연계 플레이에서는 그동안 굴곡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루과이전을 통해 그 우려를 불식시켰고 이제는 수아레스의 골 결정력에 견줄만한 강력한 임펙트를 키우면 세계 축구팬들이 부러워하는 공격수로 거듭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