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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안정환-이동국의 월드컵 작별 안타깝다

 

'판타지스타' 안정환(34, 다롄 스더) '사자왕' 이동국(31, 전북)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작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두 선수는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들이 아니었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무게감을 놓고 보면 월드컵에서 특유의 강력한 한 방을 터뜨릴 것 같았던 포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정환은 월드컵 본선에서 끝내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이동국은 아르헨티나전과 우루과이전에 교체 투입했으나 끝내 골망을 가르지 못했습니다.

물론 안정환과 이동국의 선발 제외는 당연했습니다. 안정환은 90분을 뛸 수 있는 체력이 부족한데다 지난달 일본 원정에서 허리에 담이 걸린 여파 때문에 벨라루스-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부진했고 끝내 월드컵 본선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동국은 지난달 16일 에콰도르와의 평가전 도중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팀 내에서의 입지가 축소 됐습니다. 그리스전까지 몸을 완전히 회복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염기훈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 했죠.

두 선수는 30대 초반으로서 이번 남아공 월드컵이 선수로서 뛰는 마지막 월드컵 이었습니다. 안정환은 2002-2006년에 이어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국민들에게 축구의 감동을 선사하고, 이동국은 12년의 월드컵 한을 특유의 강력한 한 방으로 풀겠다는 마음속 각오를 세웠을 것입니다. 그동안 안정환-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에 대한 여론의 논란이 가열되었던 만큼, 두 선수는 2002년의 황선홍 처럼 월드컵 맹활약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완벽하게 증명하고 싶었을 겁니다. 끝내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해 두 선수의 월드컵 작별이 안타깝게 됐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합니다. 안정환과 이동국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대표팀 선수 선발의 기준은 명성보다는 현재의 실력이 전제조건이죠. 전성기가 지났던 안정환, 월드컵 맹활약을 믿기에는 신뢰감이 부족했던 이동국 보다는 젊은 자원들의 등용이 바람직했을지 모르며 두 선수에 대한 여론의 논란이 뜨거웠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논란은 결국 논란진행형으로 끝맺음을 맺고 말았습니다. 두 선수가 월드컵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선수의 월드컵 작별이 아쉽습니다.

안정환과 이동국은 불과 10년 전까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공격 듀오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고종수-김은중과 함께 K리그의 르네상스 돌풍을 일으키며 전국구 스타플레이어로 거듭나면서 한국의 축구 열풍을 선도했습니다. 대표팀에서의 잦은 경기 출전으로 점차 경험을 쌓아가면서 앞으로의 촉망받는 미래를 보장받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안정환은 2002년 페루자 방출, 2006년 무적 선수 전락, 2007년 수원 2군 추락 및 관중석 난입 등과 같은 시련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문제는 그 이후의 행보가 운이 따라주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클럽팀에서 몸담았다면 어쩌면 지금도 전성기 시절의 포스를 이어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무엇보다 독일 월드컵 이후 무적 선수로 전락하면서 순발력과 활동폭이 눈에 띄게 저하되고 골 감각까지 떨어진 것이 아쉬웠습니다. 지금에서야 중국 슈퍼리그 다롄에 잘 정착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져니맨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다롄은 한때 잘나갔던 중국의 하위권 클럽입니다.

더 운이 없었던 선수는 이동국 이었습니다. 1998년 부터 각급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는 무릎 혹사를 거듭했고, 2001년 무릎 부상을 숨기고 독일에 진출했을 정도로 아픈 폼을 이끌고 그라운드를 뛰었지만 결국 무리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 했습니다. 그 이후 절치부심 끝에 본프레레-아드보카트호의 에이스로 떠오르며 독일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을 벼르고 있었으나 불의의 십자인대 파열로 많은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2008년에는 미들즈브러-성남을 떠나면서 1년에 두 번이나 방출되는 불운을 겪었고 다시 대표팀에 돌아오기까지 우여곡절의 시간이 많았지만, 그저 이동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부 축구팬들의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안정환과 이동국은 그동안 불운했던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을 원했을 것입니다. 축구 선수로서 주위의 기대와 달리 순탄치 않았던 세월을 보냈지만, 황선홍처럼 월드컵에서 강렬한 포스를 남겨 국민적인 박수를 받고 아름답게 대표팀과 작별하는 시나리오를 그렸을지 모릅니다. 그 시나리오가 결국 진행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월드컵 본선에서 이렇다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남아공 월드컵 선전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던 두 선수의 분투는 끝내 현실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안정환과 이동국은 허정무호에 필요했던 선수였으며 허정무 감독이 원했던 선수들 이었습니다. 안정환은 그동안 허정무호에서 요원했던 슈퍼조커로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는 아우라가 있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미국전, 2003년 일본 원정,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전 같은 굵직한 경기에서 골을 터뜨리며 한국에게 귀중한 결과를 안긴데다 월드컵 본선에서 유일하게 골을 넣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후반전 교체 투입으로 승부의 흐름을 결정지어 줄 옵션의 존재감이 부족했던 허정무호가 지난 3월 코트디부아르전의 조커로서 인상 깊은 공격력을 펼쳤던 안정환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동국은 대표팀의 공격 옵션 중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 이전까지 꾸준히 골을 터뜨렸던 선수였습니다. 박주영은 잦은 부상 및 시즌 후반 8경기 연속 무득점 침체에 시달렸고, 염기훈도 잦은 부상 여파로 순발력 및 패스와 킥의 세밀함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승렬은 전형적인 골잡이가 아니며 안정환은 다롄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2선 플레이에 주력했기 때문에 골에 대한 요구에서 자유로웠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 일정을 병행하는 무리한 출전을 비롯 최전방과 2선을 활발하게 드나들면서 경기력 개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햄스트링 부상 이었습니다. 끝내 월드컵에서 골을 넣지 못하면서 그동안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순간을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동국은 아르헨티나-우루과이전에 교체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은 지금까지 대표팀의 조커로서 승부의 흐름을 결정지었던 경험이 부족했으며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조커는 빠른 순발력과 유기적인 공격 조율을 앞세워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는것과 동시에 상대 수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과감함이 요구됩니다. 전형적으로 골을 노리는 이동국의 컨셉은 조커와 맞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우루과이전 경기 막판에 결정적 슈팅 상황을 놓치면서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일부 여론의 비판을 받으며 월드컵과 작별하게 됐습니다. 어쩌면 선수 본인의 축구 인생에 있어 가장 아쉬움에 남는 순간으로 기억될지 모릅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안정환과 이동국이 선수로 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두 선수 모두 체력적인 이유 때문에 나이가 허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안정환과 이동국의 월드컵 작별이 아쉽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 축구는 대형 공격수를 집중 육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월드컵 무대를 떠나게 된 안정환과 이동국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