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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탈리아의 아바타 같은 일본의 오카나치오

 

이탈리아는 본선 F조에서 2무1패로 충격적인 탈락을 했지만 또 다른 푸른 유니폼을 입은 일본이 E조에서 2승1패로 16강에 진출한 것 또한 충격적입니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카데나치오(빗장수비)가 '오카나치오(오카다 감독+카데나치오의 합성어)'가 일본에 그대로 옮겨진 듯한 느낌입니다. 일본 축구는 마치 이탈리아의 아바타를 보는 듯 했습니다.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일본은 24일 오전 3시 30분(이하 한국시간) 루스텐버그에 소재한 로얄 바포켕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E조 본선 3차전 덴마크전에서 3-1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반 17분에 혼다 케이스케가 왼발 무회전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전반 30분에는 엔도 야스히토가 오른발 감아차기 프리킥으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후반 36분 욘달 토마손에게 추격골을 허용했으나 6분 뒤 오카자키 신지가 승부의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넣으며 16강 고지에 올랐습니다. 일본은 오는 29일 저녁 11시 파라과이와 16강에서 맞붙습니다.

일본, 막강한 수비축구와 프리킥의 승리

우선, 일본의 덴마크전 3-1 승리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덴마크가 남아공 월드컵 이전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를 3번 밟아 모두 16강에 진출했던 '16강 DNA'의 저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남아공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는 호날두-즐라탄 같은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속한 포르투갈과 스웨덴을 제치고 1위로 본선 티켓을 따냈습니다. 덴마크의 자랑은 다부진 피지컬을 앞세운 강력한 수비 조직력으로서 '피지컬이 약한' 일본 축구가 넘기 힘들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 였습니다. 일본은 피지컬이 좋은 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힘보다는 기교로 승부수를 띄우며 자신들의 강점을 최대화 시켰습니다. 바로 프리킥 이었습니다. 일본은 공격형 미드필더 혼다를 4-1-4-1의 원톱으로 기용할 만큼 특출난 킬러가 없기 때문에 순수적인 공격 전개에 의해 덴마크의 수비를 뚫는것은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리킥을 통한 득점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했습니다. 혼다-엔도의 프리킥 실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검증되었고 오쿠보-마쓰이 같은 미드필더들의 킥력 또한 수준급이기 때문에 프리킥으로 골을 넣을 자원들이 풍부했습니다.

무엇보다 덴마크 후방 옵션들의 순발력 부족은 일본 공격에게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덴마크는 철저한 커버 플레이에 의해 상대 공격 옵션을 마크하는 성향이자 피지컬로 승부를 거는 타입이기 때문에 스피드가 무딜 수 밖에 없었고 일본이 그 약점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파울을 얻는 지능적인 작전을 펼치면서 프리킥에 의한 골을 호시탐탐 노렸고 혼다의 왼발 무회전 프리킥과 엔도의 오른발 감아차기 프리킥이 덴마크 골망을 갈랐습니다. 특히 혼다의 무회전 프리킥은 아무리 킥력이 뛰어난 선수라도 성공하기 힘든 슈팅인데, 동양인 선수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특출난 프리킥 실력을 발휘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일본은 두 번의 프리킥 골 이후 '잠그기' 작전을 펼치며 덴마크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주력했습니다. 덴마크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하는 유리한 조건에 있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한 공격을 할 필요가 없었죠. 반면 덴마크는 다득점을 기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본의 수비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마츠이-엔도로 짜인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홀딩맨 아베와 동일 선상에서 호흡을 맞추면서 포백과의 폭을 좁혔습니다. 덴마크 미드필더진이 중앙쪽으로 과감히 전진하지 못하면서 벤트너-토마손-롬메달로 짜인 스리톱이 일본 진영에서 봉쇄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수비 입장에서는 덴마크의 롱볼 공격이 반가웠습니다. 덴마크가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 번에 띄우는 롱볼을 날릴 때, 일본 수비진은 공의 낙하 지점을 파악하여 2~3명이 협력 수비를 펼치고 또 다른 선수들이 커버 플레이를 펼치는 수비 작전을 통해 공을 걷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 오쿠보-혼다-마쓰이는 덴마크의 롱볼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전방 압박을 펼쳤습니다. 덴마크의 롱볼 견제 뿐만 아니라 전진 패스와 드리블 돌파를 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은 것이죠.

특히 일본의 수비는 경기 초반부터 덴마크 공격수와의 기싸움에서 우세를 점했습니다. 덴마크의 좌우 윙 포워드를 맡는 벤트너-토마손에게 드리블 돌파에 의한 침투 공간을 내주지 않도록 엔도-하세베가 좌우 풀백 자원인 코마노-나가토모와의 폭을 좁혔죠. 벤트너는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 폼이 떨어진 상태에서 월드컵 본선에 임했고 롬메달은 카메룬전 1골 1도움을 기록했으나 전성기 시절보다 공격력에 힘이 부쳤기 때문에 일본이 측면 압박에서 우세를 점했습니다. 벤트너-롬메달의 부진은 경기 감각이 떨어진 토마손의 최전방 고립으로 이어지면서 사실상 일본이 경기 흐름을 지배했습니다.

오카다 감독의 용병술도 적중했습니다. 후반 29분 마쓰이를 빼고 공격수 오카자키를 투입하여 혼다-오카자키 투톱의 4-4-2로 전환했습니다.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던 덴마크의 허를 찌르기 위한 추가골을 위해 오카자키를 투입한 것입니다. 후반 35분 하세베가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로 아게르에게 파울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면서 토마손의 추격골을 허용했지만 2분 뒤 오카자키가 추가골을 넣으며 오카다 감독 교체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덴마크가 공격에 집중하고 있을 때 혼다가 주도했던 빠른 역습 전개에 의해 오카자키가 골을 넣은 것이죠.

그래서 일본의 덴마크전 3-1 승리는 운이 아닌 '준비된 전략에 의한 결과' 였습니다. 상대의 약점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일본 축구가 지닌 장점을 최대화 시켰기 때문에 좋은 결실을 거두었던 것이죠. 무엇보다 카메룬-네덜란드전에서 재미를 봤던 탄탄한 수비 조직력이 덴마크전에서도 빛을 발한 것이 놀라웠습니다. 미드필더진과 포백의 폭을 좁히면서 라인 컨트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수비 균형을 잡으며 상대 공격 옵션의 패스 길목 및 침투 공간을 봉쇄한 끝에 16강 진출의 결실을 거두었죠.

이러한 일본의 오카나치오는 마치 이탈리아의 카데나치오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카메룬전에서 에토-웨보, 네덜란드전에서 판 더르 파르트-판 페르시-카위트, 덴마크전에서 벤트너-토마손-롬메달을 봉쇄하는 '지지않는 축구'를 했습니다. 물론 네덜란드전에서는 스네이더르의 중거리슛에 의해 실점하여 0-1로 패배했지만 막강한 공격 축구를 자랑하는 팀을 상대로 1골만 내준 것은 충분한 긍정적 의미가 있습니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탈락한 이탈리아의 기운이 일본에게 옮겨진 듯한 느낌입니다. 물론 이탈리아와 일본의 세부적인 축구 스타일은 다르겠지만, 이탈리아의 카데나치오를 떠올리게 하는것은 분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