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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2002년 처럼 월드컵 4강에 진출하려면?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오는 26일 우루과이와 16강전을 치릅니다. 만약 우루과이를 제압하면 다음달 3일 미국-가나전 승자와 8강에서 맞붙으며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4강에 진출합니다. 4강으로 향하는 여정까지 잉글랜드-독일-브라질-스페인 같은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와 맞붙지 않기 때문에 '최상의 대진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과 맞붙는 우루과이를 비롯해서 미국-가나의 레벨은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이 16강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할 수도 있고 8강에서 미국-가나 승자에게 덜미를 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최상의 대진운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루과이-미국-가나가 기존의 월드컵 우승 후보들에 비해 전력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8강에서 잉글랜드-독일 승자와 맞대결을 벌이는 것보다는 미국-가나 승자가 한국에게 더 좋습니다. 우루과이를 이겨야 한다는 전제조건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대진운을 바라보며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8년 만에 4강에 진출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허정무호의 남아공 월드컵 목표는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 이었지만 그 꿈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 축구의 위상과 번영을 위해 우루과이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우루과이전 승리 및 4강 진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의 4강 진출, 수비력에 달렸다

한국은 16강 고지에 오르면서 조별리그 본선 3경기 체제에서 벗어나 토너먼트 단판 경기를 치릅니다. 우루과이전에서 패하면 남아공 월드컵 일정을 종료해야 하기 때문에 이 경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조별리그에서는 아르헨티나전에서 1-4로 대패하더라도 그리스전 2-0 완승과 나이지리아전 2-2 무승부가 있었기에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단판 경기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승리욕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공격력이 중요하지만 상대팀도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에, 토너먼트에서는 수비력이 강한 팀이 좋은 결과를 거두는 경향이 많습니다.

축구에서는 "공격을 잘하는 팀이 승리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토너먼트 단판 경기에서는 실수가 승부의 결정타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비가 견고한 팀들이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프랑스가 1998년 자국에서 월드컵 우승하고 이탈리아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제패했던 힘은 탄탄한 수비 조직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두 팀과 대조되는 색깔을 지닌 브라질은 1994년 미국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공격적인 팀 컬러를 과시했지만 전방을 뒷받침하는 후방의 수비 밸런스가 튼튼했습니다.

한국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과정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3-4-3을 기반으로 4백과 5백을 쓰는 다양한 수비 시스템을 통해 상대 공격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공을 먼저 압박하는 협력 수비를 펼쳤습니다. 김태영-홍명보-최진철로 짜인 3백은 전방 수비를 펼쳤으며 미드필더진이 후방과 폭을 좁혀 압박을 펼치면서 상대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 및 패스 길목을 차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영표-송종국으로 짜인 좌우 윙백은 상대 측면 옵션을 꽁꽁 봉쇄하면서 대인방어와 지역방어의 혼합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히딩크 감독이 '이기는 축구'를 지향하는 지도자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문제는 지금의 허정무호에서는 한일 월드컵 시절에 비해 압박의 세기가 떨어집니다. 일부 여론에서는 박지성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이영표-김정우-조용형의 물 셀틈 없는 수비력 때문에 '한국 축구는 압박이 강하다'고 자평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아르헨티나전 4실점 원인은 '메시 봉쇄'에만 주력했던 압박 축구의 실패작이었고 나이지리아전 선제골 상황에서는 미드필더진에서 협력 수비 체제가 무너지면서 크로스 저지에 나섰던 김정우에게 수비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점 상황 뿐만 아니라 포백과 미드필더들이 수비 상황에서 톱니바퀴처럼 협력 수비를 펼치지 못하면서 상대에게 여러차례 공격 기회를 내주는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우루과이전 해법은 '포를란 봉쇄' 입니다. 포를란은 우루과이의 창의적인 미드필더 부재 때문에 타겟맨이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 왼쪽 윙 포워드를 번갈아 뛰고 있으며 골 생산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2선 플레이에 강합니다. 우루과이가 한국전에서 전술을 변경하지 않으면, 포를란은 틀림없이 최전방과 2선을 오가며 공격을 조율할 것입니다. 우루과이는 적은 공격 숫자 속에서도 빠른 볼 처리 및 패스의 강한 세기를 이용하여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흔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철저하게 압박하지 않으면 상대 공격 옵션을 놓쳐 결정적인 골 기회를 내줄 수 있습니다. 포백이 불안한 현 시점에서는 미드필더들의 압박이 관건입니다.

만약 우루과이를 꺾고 8강에 진출하면 미국-가나 승자와 맞붙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팀은 역습 공격을 지향합니다. 미국은 뎀프시-도너번으로 짜인 좌우 윙어들의 날카로운 측면 침투를 강점으로 삼는 팀이며 스피드와 조직력의 조화를 앞세운 빠른 공격을 지향합니다. 가나는 '살림꾼' 에시엔이 부상으로 월드컵에 빠진 어려움 속에서도 미드필더들이 빠른 볼 처리와 종적인 움직임에 의한 역습을 통해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듭니다. 여기에 아프리타 특유의 폭발적인 탄력이 공격력에 가미 되면서 파괴력이 향상됐습니다. 한국의 남아공 월드컵 4강 진출은 상대 공격을 저지하는 수비력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아르헨티나전 처럼 골문을 걸어잠그는 수비 축구를 해선 안됩니다. 상대에게 박스 바깥에서 공간을 쉽게 내주기 때문에 틀 안에 갖히면서 여러차례의 슈팅 기회를 내줄 수 밖에 없으며 아르헨티나전에서 1-4로 대패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을 압박하지 못했던 한국의 미흡한 압박 대처도 문제였습니다. 메시를 저지하기 위해 센터백 이정수를 시작으로 수비형 미드필더 김정우, 공격형 미드필더 박지성까지 근처에 달라 붙으면서 다른 공격수들의 전방 침투를 허용하는 문제점을 남겼습니다. 수비 축구를 하지 않더라도 후방의 라인 컨트롤이 튼튼하게 형성되면 많은 공격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공격 과정에서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에 골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한국은 본선 3경기 5골 중에 3골이 세트 피스 상황에서 터졌고 2골은 상대 수비의 공을 가로채 골문으로 돌진하여 골을 넣었습니다. 상대 허리와 수비진을 흔드는 공격 전개에 의해 골을 넣은 장면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8강 혹은 4강 진출을 위한 승부수로 세트 피스에 의한 골을 강화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상대팀에게 세트피스 상황을 대비하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력이 본선 3경기에서 드러난 만큼, 우루과이전에서 승리하고 4강에 진출하려면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패스을 늘리고 공격 옵션끼리의 간격을 좁혀 상대 골문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빠른 공격 전환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공격과 수비 진영을 빠르게 휘젓는 움직임보다는 팀으로서 함께 뭉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후방에서 어느 한 선수가 상대 선수의 공을 빼앗으면 근처에 있는 선수가 후방에서 공을 받을 공간을 확보해 종패스를 받으면서, 또 다른 선수가 상대 수비 위치에 따라 뒷 공간을 파고들거나 두번째 종패스를 받으려는 능동적인 움직임이 유기적이고 꾸준해야 합니다. 한국과 상대하는 팀들도 수비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많이 뛰는 것보다는 상대 수비를 한 번에 무너뜨리는 효율적인 공격 전개가 골을 넣을 확률이 더 많습니다.

박지성-김정우-기성용-이청용으로 짜인 미드필더들의 개인 기량을 놓고 보면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관건은 그 선수들의 역량을 팀으로 최대화 시키는 허정무 감독의 전술 능력입니다. 비록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실패했지만 그것에 교훈을 얻으며 나이지리아전에서 상대 미드필더 뒷 공간을 허물었기 때문에 우루과이전에서 콤비 플레이가 더 좋아질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과연 한국이 16강에서 최상의 대진운을 부여받은 것에 힘입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8년 만에 4강 고지에 올라 또 한 번 세계를 놀래킬지 주목됩니다. 전술을 철저히 대비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