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그리스전, 박주영이 고립되면 승리 못한다

 

한국에게 있어 그리스전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입니다. 첫 경기에서 비기거나 패하면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를 이겨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남은 본선 일정을 치르기 때문에 그리스전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축구는 상대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 승리하는 스포츠인 만큼 공격력에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전에서는 박주영-염기훈 투톱이 가동됩니다. 이미 이동국-안정환을 조커로 활용하기로 결정했고, 이승렬이 큰 경기에서 주전으로 뛰기에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최근 훈련에서 박주영-염기훈 투톱을 주전 공격수로 기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이 4-4-2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은 0그리스전을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로 요약됩니다. 4-4-2는 4-2-3-1보다 공격 숫자가 많기 때문에 얼마만큼 경기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골을 넣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가 한국전에서 5-2-3 포메이션을 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는 3-4-3과 4-3-3을 골고루 활용하는 팀이지만 4백을 쓰기에는 수비수들의 발이 느린 단점이 있는데다 4-3-3을 구사했던 최근 평가전에서 부진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특유의 대인방어 및 압박을 강화할 수 있는 3-4-3을 쓰면서 좌우 윙백을 수비 라인 동일 선상으로 내려 5-2-3으로 변형된 자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박지성-이청용으로 구성된 좌우 윙어들의 공격력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는 만큼, 그리스는 두 선수 견제를 위해 5백을 쓸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의 5백은 박주영-염기훈에게 부담거리 입니다. 박지성-이청용과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면 한국 공격수 2명이 그리수 수비수 5명과 대결을 벌이는 비효율 상태에 놓입니다. 그리스는 5백 뿐만 아니라 사마라스-하리스테아스(니니스)로 짜인 좌우 윙 포워드가 협력 수비를 펼칠 수 있기 때문에 박지성-이청용에 대한 견제를 강화할 것이며 박주영-염기훈 투톱은 숫적 상황 열세를 이겨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투톱 공격수 중에 한 명이 2선으로 내려가 미드필더들의 활동 부담을 덜어내야 합니다. 공중볼에 강한 박주영이 타겟맨으로 변신한 만큼, 염기훈이 쉐도우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염기훈이 연계플레이에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설픈 드리블을 일관하다 공을 빼앗기고, 패스 해야 할 타이밍에서 공을 직접 몰고가는 모습, 볼 키핑력 불안 때문에 동료 선수들과 유기적인 공격을 전개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이 같은 모습이 되풀이되면 한국의 공격은 염기훈쪽에서 끊어질 것이며 박주영이 최전방에서 고립되는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이 그리스를 상대로 골 넣는 작업이 어려워집니다.

무엇보다 박주영의 고립은 한국 공격에 있어 치명타입니다. 박주영만큼 박스 안에서 골을 해결지을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수비수들이 박주영에게 집중적인 압박을 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어쩌면 선수 본인이 쉽지 않은 경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박주영의 최근 폼이 좋지 않습니다. 지난 3월 햄스트링 부상 복귀 이후 AS 모나코에서 8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린 끝에 허정무에 합류했지만 최전방에서 스스로 공격을 해결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최전방에서 고립되면 직접 2선으로 내려가거나 동료 공격수와 폭을 좁히면서 연계 플레이를 유도하는 경기 운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박주영은 올 시즌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활동 폭이 좁아졌고 순발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런 모습이 올 시즌 후반부터 지금까지 노출되면서 무득점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이청용-염기훈의 움직임이 많아져야 하는데, 박지성-이청용의 기동력은 충분히 검증되었지만 염기훈은 잦은 부상에 따른 순발력 저하를 지금까지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박주영의 고립을 막아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염기훈의 활동량이 많아져야만 합니다. 그리스전에서는 이동국-안정환을 조커로 투입할 예정이기 때문에 염기훈이 현실적으로 90분을 뛰기 힘들지만 90분을 뛸 수 있는 에너지를 맘껏 쏟아야 합니다.

국내 언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의 3백 가운데 수비수를 맡는 방겔리스 모라스의 결장이 한국에게 호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모라스는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한국전에 나서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하지만 모라스의 결장은 한국에게 호재이자 악재로 꼽힙니다. 모라스는 193cm의 장신으로서 공중볼과 대인방어에 강한 선수이며 발군의 위치선정을 자랑하지만 스피드가 떨어집니다. 어쩌면 박주영-염기훈이 모라스의 약점을 노려 최전방에서 골 기회를 노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라스의 공백을 메울 소크라티스 파파스타소풀로스는 모라스와 다른 타입입니다. 183cm의 센터백으로서 투쟁적인 성향이자 활동 폭이 넓기 때문에 커버 플레이에 주력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파파스타소풀로스가 파파도풀로스-키르기아코스 같은 동료 수비수들과의 호흡이 원만할 경우, 박주영-염기훈은 박스 안에서의 공간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상대 수비의 스피드 약점을 파고들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른 수비수들의 스피드가 느린 것이 한국에게 위안거리지만 파파스타소풀로스가 분전하면 박주영-염기훈의 경기 운영이 더 힘들어집니다.

관건은 박주영입니다. 그리스가 밀집 수비를 펼치기 때문에 상대 수비를 앞쪽으로 끌어내는 움직임을 취하는 것이 힘든 만큼, 동료 공격 옵션과 간격을 좁히면서 연계 플레이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염기훈이 연계 플레이에 약하기 때문에 박주영도 그 몫을 덜어줘야 합니다. 비록 최근에 부진했지만 그리스전은 한국 입장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동기부여를 안고 경기를 치르는 이점이 작용합니다. 공격수는 골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는 팀 플레이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연계 플레이에 참여하고 스위칭을 하면서 상대 수비를 교란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빠른 볼 처리는 필수입니다.

또한 박주영은 그리스 수비수와의 공중볼 및 몸싸움에서 정면으로 맞부딪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박주영이 뛰고 있는 프랑스리그는 탄탄한 체격을 앞세운 거친 대인마크와 빠른 순발력을 자랑하는 수비수들이 즐비한 곳으로서 공격수가 골 넣기 힘든 리그로 유명합니다. 그런 곳에서 박주영은 상체를 키우며 몸싸움을 향상시켰고 높은 점프를 앞세워 190cm가 넘는 거구와의 공중볼에서 우세를 점하는 모습이 여렷 있었습니다. 터프한 수비수들을 요리할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활동적인 측면에서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면 다시 폼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전을 앞둔 박주영에게 필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