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차범근 SBS 축구 해설위원의 출연료가 10억원이라는 소문이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역대 최고 대우로 SBS와 계약했다는 언론 기사는 접했지만 10억원은 와전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관련 기사를 접해봐도 정확한 출처와 구체적인 사실도 없이 10억원 소문에 대한 이야기가 수면 위로 불거진 것이죠. 누구에 의해, 어느 곳에서 이런 소문이 나왔는지 알고싶을 따름입니다.
차범근 해설위원은 지난 7일 SBS 방송국을 찾아 기자들 앞에서 해설위원을 맡게 되었다는 공식 기자회견과 함께 사진 촬영에 임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해설을 맡아 10억원을 받는다는 질문을 받았는데 "감독 때도 그렇고 MBC에서 해설할 때도 돈을 좀 받았다. SBS가 브라질 대회까지 단독 중계를 하는 것으로 안다. 해설을 하면 그때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10억원을 받았다는 단답형 대답을 피했지만 고액의 돈을 수령했음을 인정했습니다. 10억원 질문이 차범근 감독 앞에서 나온것은 어디선가 그런 소문이 나돌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제였던 지난 8일까지 인터넷에서 '차범근 10억원'에 대한 기사가 줄기차게 보도되면서 여론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인터넷 기사 제목에 '차범근 10억원'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갔기 때문에 누리꾼들의 클릭이 이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10억원이면 너무 많이 받는 것 아니냐', '돈에 눈이 멀었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비롯해서 차범근 감독에 대한 일부 누리꾼의 반응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부 반응일 뿐이지만 이것이 10억원 논란으로 확대되고 말았습니다.
차범근 해설위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차범근 해설위원은 얼마전까지 수원 감독을 맡았지만 소속팀이 K리그 꼴찌였고, 수원 감독 사임 기자회견에서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이유로 해설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 월드컵 한국전과 북한전 같은 주요 경기에 대한 해설을 맡는 조건으로 SBS 해설위원직을 수락했습니다.(지난 7일 SBS 8시 뉴스에 의하면) 그래서 '말을 바꾼 것이 아니냐'며 차범근 해설위원에 대한 곱지않은 눈초리를 보내는 일부 누리꾼들의 지적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차범근 해설위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SBS 해설위원을 수락하기까지의 마음속 결단이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후반 독일 분데스리가 선수 시절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MBC와 30년 동안 의리를 지켜왔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끊을 수 없었고 수원 감독 사임 기자회견에서 해설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동안 MBC에 대한 오랜 친근함을 가졌기 때문에 애초부터 다른 방송국에서 마이크를 잡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30년 동안 단골로 이용했던 식당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는 이상, '그 식당에 가지 않겠다'고 갑자기 돌아설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SBS가 월드컵 단독 중계권을 획득한 현실, 그리고 윤세영 회장을 비롯한 SBS의 거듭된 요청이 잇따르자 결국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현실과 의리 사이에서 마음 속 깊은 고민을 했기 때문에 한 번 내린 결정을 쉽게 바꾸는 가벼운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MBC를 통해 미안하다는 반응을 공식 기자회견에서 전했습니다. 어쩌면 마음속에서는 입으로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차범근 해설위원이 남아공행 비행기에 탑승하고 4년 뒤 브라질 월드컵 해설을 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MBC 해설위원 시절에 받았던 돈을 자신이 운영하는 차범근 축구교실에 투자했는데, SBS 해설위원을 통해 받는 돈은 차범근 축구 교실 운영 및 확장을 위해 쓸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돈이 없어 진척이 안됐는데 SBS가 많은 돈을 준다면 후속사업으로 운동장을 만드는 일을 이어가겠다. 가능하면 많이 주시길 바란다"는 농담성 발언을 했던 이유는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SBS 해설직을 수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차범근 축구교실을 가볍게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차범근 축구교실은 1990년 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운영된 곳으로서 한국 유소년 축구의 상징이자 한국 축구의 산파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차범근 해설위원이 독일 분데스리가 선수로서 은퇴하고 국내에 돌아와 먼저 시작한 일이 축구교실 창설이었고 그 시절에는 유소년들에게 무료로 축구 지도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축구가 뿌리깊게 보급되고,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친근함을 가지기 위해, 그리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빛낼 우수한 축구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년 동안 차범근 축구 교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더욱이 90년대 초반에는 한국에서 유소년 축구교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 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에서 차범근 해설위원의 사진 하나가 많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직접 망치를 들고 얼음을 깨는 장면이 사진으로 찍히면서 인터넷에 나돌았던 것이죠. 차범근 축구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어 궂은 일을 기피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묻어나왔기 때문에 스스로 망치를 들고 얼음을 깼습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는 분인지를 알 수 있는 이유입니다.
차범근 해설위원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선수 생활, 국가대표팀 및 수원 감독직, MBC 해설위원을 맡으면서 많은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차범근 해설위원은 몇몇 유명인들 처럼 철저하게 개인부를 늘리는 축구인이 아닙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투자한 것이며 SBS 해설위원을 맡게 된 배경도 마찬가지 입니다. 선수 시절에 받았던 국민적인 지지와 환호를 되갚고자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 봉사를 하겠다'는 신념이 마음속에서 굳게 베어졌기 때문에 20년 동안 차범근 축구교실을 운영했던 겁니다.
물론 차범근 해설위원이 축구교실에 얼마의 액수를 투자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으며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공개 될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SBS 해설위원 공식 기자회견에서 '돈이 없어 진척이 안됐다'는 발언을 한 것은 차범근 축구교실에 많은 돈을 투자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박지성이 지난해 가을부터 공사가 시작된 자신의 유소년 축구센터(박지성 축구센터)에 약 100억원의 자비를 투자하는 것 처럼, 유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는 것은 그 시작부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차범근 해설위원은 2008년 수원의 더블 우승(K리그-하우젠컵 동시 우승)을 이끌고도 모 기업의 재정적 어려움을 덜기 위해 스스로 연봉을 삭감했습니다.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었기 때문에 연봉을 높게 받는 것은 당연했지만 자신의 인건비를 낮추기로 결정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셀러리맨 이라도 연봉 삭감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범근 해설위원이 SBS로 간 것이 돈 때문이 아니냐, 돈을 너무 많이 받는다와 같은 일부 누리꾼들의 쓴소리가 무의미하고 비건설적인 이유입니다.
차범근 해설위원이 SBS로 부터 10억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소문으로 끝났지만, 만약 10억원으로 결정되었더라도 그만큼 받을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역대 한국 축구 최고의 선수이자 레전드, 수원의 감독으로서 여러차례 우승했고(우승 이력만을 놓고 보면),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명해설자로 활약했으며 그 과정을 모두 거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과 독일땅에서 벌어들였던 돈은 그동안 쏟았던 땀과 노력을 의미하며 그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차범근 축구교실에 투자하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가꾸고 아이들에게 축구를 보급했습니다. 차범근 해설위원이 한국 축구의 레전드로 불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