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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12가지 이유

 

부제 : 축구 신간 도서 <축구란 무엇인가>를 읽고

지금까지 수 많은 축구 경기를 봤지만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축구를 왜 좋아할까?'라고 말입니다. 제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들이 강팀을 상대로 지지 않으려는 끈기와 투지를 발휘하며 전세계인을 열광시키는 모습에 마음 속 전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저와 다를 것입니다. 다른 생각과 다른 풍경 속에서 성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입니다. '지구촌 축구 대제전'으로 꼽히는 월드컵이 그 예입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보고서 <빅 카운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이러한 통계를 내놓았습니다. 경기장을 찾는 관중은 320만 명, TV를 통해 월드컵을 시청하는 사람은 전 경기를 포함해 400억 명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을 봤습니다. FIFA는 2005년에 207번째 회원국을 받았는데 국제연합(UN) 회원국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또한 지구촌은 월드컵 뿐만 아니라 유럽 축구의 빅 매치를 보며 열광하고 환호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로 다를 것입니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얼마전 국내에서 발간된 축구 도서 <축구란 무엇인가>를 읽게 됐습니다. 독일의 축구 전문 작가인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이 쓴 책인데, 외국 축구 전문가의 견해를 파악하면서 축구를 바라보는 저의 안목이 넓어졌습니다. <축구란 무엇인가>를 통해 요점에 대한 힌트를 얻으면서. 책을 읽고 나서 느꼈던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풀이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축구란 무엇인가> 표지 (C) 효리사랑]

1. 축구는 발로하는 스포츠 종목이다.

축구는 발로하는 스포츠 종목입니다. 머리, 가슴, 손, 허벅지 같은 다른 신체 부위를 이용할 수 있지만 발로 경기하는 것에 주안점을 둡니다. 농구나 핸드볼은 주로 손을 쓰기 때문에 슛과 패스를 정확하게 연결하는 조절 능력이 있지만 발은 서투릅니다. 그런데 그 발을 통해 기본기와 개인기를 단련하면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습니다. 호날두-메시 같은 드리블러들이 현란한 발재간으로 지구촌 축구팬들을 열광시키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또한 발을 통해 크로스-패스-슈팅-킥-태클 같은 여러 형태의 기술을 쓸 수 있고 스루패스와 전진패스 같은 다양한 종류의 패스들이 있습니다. 그 패스도 종방향과 횡방향을 골고루 활용하며 경기의 퀄리티를 높입니다.

2. 축구는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다.

몇몇 스포츠 종목은 고가의 장비를 구입해야 경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스포츠는 그런 특성 때문에 '귀족 스포츠'로 불립니다. 하지만 축구는 그런 것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때는 배구공으로 축구를 했으니까요. 배구공 없으면 운동장에서 일정한 선을 그어놓거나 아니면 복도에서 테니스공을 썼습니다. 그래서 골대 없이도 축구할 수 있습니다. 운동장이 없으면 주차장이나 주택가 길바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그저 공터에서 두 명 이상 모이면 자연스럽게 공을 차는게 축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할려면 유니폼 맞춰야 하는게 아니냐고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유니폼을 입고 축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동네 축구는 그게 가능하니까요.

3. 축구는 팀 스포츠

학교는 시험을 통해 개인의 학습 역량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의 우열이 명확합니다. 하지만 축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축구를 못해도 동료가 공을 잘 차면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축구는 11명이 서로 똘똘 뭉쳐 경기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개인의 힘 보다는 팀의 결속력이 더 중요합니다. 누군가 공을 빼앗기면 다른 누군가가 다시 공을 되찾을 수 있고, 상대팀이 패스를 돌리는 상황에서 공을 빼앗아 역습을 노리고, 골키퍼가 펀칭한 공을 리바운드하여 세컨골을 넣는 불완전성이 있습니다. 개인 스포츠에서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없지만, 축구는 여러 명이서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을 통해 역동적이고 정열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4. 축구는 템포 싸움이다.

유럽 축구가 지구촌을 열광시키는 이유는 경기의 퀄리티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템포가 있습니다. 빠른 드리블 돌파를 말하는 것이 아닌,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 빠른 패스 타이밍 또는 원투패스 등을 통해 상대 진영으로 넘어오는 플레이를 통해 템포를 강화하며 상대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상대 수비가 정비되지 않으면 빠른 공수 전환을 통해 역습을 노리며 골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굳이 템포가 빠르지 않아도 동료 선수와 공을 돌리며 점유율을 늘려 템포의 흐름을 장악해 승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공을 예쁘게 차더라도 템포 싸움에서 상대팀에 밀리면 그 경기는 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강팀이 약팀에게 종종 무기력한 이유는 상대팀의 템포 죽이기 작전에 말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5. 축구는 투쟁적인 스포츠

축구에서 '투쟁'이라는 키워드는 필수입니다. 상대팀 선수의 공을 빼앗으려면 악착같이 따라붙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공격권을 가져오면 상대팀 선수에게 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공을 지켜내거나 재빠르게 패스해야 합니다. 또한 상대팀 선수가 공격으로 넘어오는 지점을 미리 선점하고, 상대팀 수비수가 예측하지 못한 뒷 공간을 뚫어야 합니다. 투쟁이 없으면 이런 작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경기를 보는 관중 혹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공 다툼을 벌이면서 공간 싸움까지 펼치는 축구 선수들의 대결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그 투쟁심이 과할때가 있어 비신사적인 파울을 범할 수 있지만, 거친 공방전이 축구팬들에게 격렬함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6. 축구는 예술이다

FC 바르셀로나, 아스날은 소위 '아름다운 축구'를 통해 지구촌 축구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선수들의 세련된 개인기와 날렵한 드리블 돌파는 다른 팀 선수들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계획적인 틀 안에서 경기하지 않는 차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팀 전체가 세밀한 콤비 플레이 및 능숙한 몸놀림을 통해 공격적인 축구를 하며 축구의 예술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펠레는 아무리 공격 축구라도 롱볼을 이용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축구는 수비 축구에 취약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기력 이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면 많은 이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7. 축구의 묘미는 골

축구는 90분 동안 수백번의 패스를 연결하고 평균 10km를 뛰는 종목이지만 골이 쉽게 터지지 않습니다. 거스 히딩크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끊임없는 골 기회 속에서도 골이 잘 안들어가기 때문에 '축구는 실패 투성이의 스포츠'라고 규정했습니다. 아름다운 축구로 유명한 아스날은 지난 시즌 4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렸던 전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골이 많아야 축구가 재미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입니다. 하지만 무득점 경기라도 지속적인 골의 위협이 있으면 사람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지루함을 떨칩니다. 골이 적은 단점이 오히려 긴장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골이 터지면 엄청난 환호를 내지르게 됩니다. 물론 골을 통한 난타전은 사람의 마음을 화끈하게 합니다. 그래서 축구의 묘미는 골이라 할 수 있습니다.

8. 축구에서 긴장은 필수다

어느 스포츠든 긴장은 필수입니다. 경기를 뛰는 선수,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칭 스태프, 선수를 바라보는 관중 및 시청자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축구도 마찬가지 입니다. 대등하거나 강한 클래스의 팀과 상대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긴장하고, 약팀과 경기하면 '절대로 지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긴장할 수 밖에 없으며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팀이 몇 시즌 동안 우승을 하는 환경은 긴장감을 떨어뜨리며 경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게 합니다. '어짜피 저 팀은 이길 텐데, 우승할 텐데'라며 축구장을 찾지 않거나 리모콘을 돌리죠. 축구가 흥행하려면 사람들을 긴장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특히 1부리그 하위팀과 2부리그 상위팀을 뒤섞는 승강제가 그 일환 중에 하나입니다.

9. 축구는 현대 여가 문화의 상징

흔히 축구는 '노동자의 스포츠'라고 합니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는 산업혁명 이후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여가 문화가 등장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됐습니다. 특히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은 새로운 생활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축구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아이들에게 "축구는 노동자의 육체적이고 윤리적인 타락에 대한 예방조치"라고 가르치고 장려하면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이것이 클럽의 창단으로 이어지면서 그 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지방에 대한 소속감을 드러내며 지역팀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축구 산업은 팽창을 거듭했고 상류층이 축구의 열정을 즐기면서 계급 장벽을 넘어 현대 여가 문화의 상징이 됐습니다.

10. 축구는 TV보다는 경기장에서 봐야 제맛

누군가는 "축구를 왜 경기장에서 돈을 주고 보냐. 차라리 TV로 보는게 낫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축구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축구를 TV로 보는 것과 경기장에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TV로 보면 축구를 보는 생동감 및 감정이입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기장은 일상 생활에 억눌린 자신을 풀어넣기 위해 얼마든지 소리를 지르거나 고함을 내뱉을 수 있으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것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끼리 모이면 집단적인 열광을 하면서 서포터즈 문화가 정착할 수 있고 파도타기 응원까지 물 흐르듯 할 수 있습니다. 선수 입장에서도 텅 빈 경기장 보다는 많은 관중들의 힘을 얻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게 됩니다.

11. 축구는 발전을 거듭하는 스포츠

과거의 축구는 원초적이고 투쟁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폭력이 줄어들고 규정들이 의무화되면서 기교 위주의 경기력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카카-호날두-메시 같은 테크닉이 뛰어난 선수들이 지구촌 축구팬들의 각광을 받게 되었고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팀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러 형태의 패스 및 공격적인 전술이 유행하게 되었지만, 그 시스템이 정착하기까지는 그것을 봉쇄하려는 수비수들의 저항을 이기기 위한 노력이 진행 됐습니다. WM 형식의 전술, 토탈사커 같은 현대 축구의 진보를 이끈 시스템이 축구의 유동성을 강화시켰고 4-4-2, 4-3-3 같은 4백 위주의 포메이션이 오늘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매혹시킬 또 다른 시스템이 등장할 날이 머지 않을 것 같습니다.

12. 축구의 글로벌화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한국인들에게 열렬한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한국 축구의 에이스' 박지성이 주축 선수로 활약중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럽 빅 클럽들은 자국 선수들을 스쿼드에 대거 포진시키기 보다는 국적-인종-종교에 관계없이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는 쪽에 초점을 모으며 중위권과 하위권 클럽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2005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선수들의 국적은 무려 60여개 국가였다고 합니다. <축구란 무엇인가>에서는 독일 축구팬들이 199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을 펼친 흑인 선수들의 예술적 테크닉이 관중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다고 하는데, 그들이 독일 축구를 호령한 차범근을 왜 열광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