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개의 다른 리그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고 싶다. 그래서 이탈리아 무대를 떠나고 싶으며 다른 도전을 원한다. 그것(레알 마드리드행)에 대해 지난 2~3개월 동안 생각했고 며칠 더 생각하고 싶다. 레알 마드리드는 내게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팀이다"
인터 밀란(이하 인테르)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조세 무리뉴 감독이 결승전 종료 후 잉글랜드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발언했던 내용입니다. 그동안 루머로만 여겨졌던 무리뉴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행이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며칠전에 "인테르는 나를 기쁘게 할 수 없다. 계약이나 돈이 아닌 개인적인 만족의 문제다. 이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발언하면서 레알행에 대한 여운을 띄우더니 이제는 현실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오피셜은 뜨지 않았지만, 스페인 언론은 무리뉴 감독이 레알행에 합의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무리뉴 감독은 인테르와의 계약 기간이 2012년까지 입니다. 하지만 인테르에게 위약금을 지불하면 얼마든지 다른 팀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유럽 축구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많으며 대형 선수가 다른 팀으로 옮기는데 이적료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더욱이 레알은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을 경질하고 무리뉴 감독을 영입할 예정이어서, 이제 무리뉴 감독의 산티아구 베르나베우 입성은 시간 문제가 되었습니다. 과연 무리뉴 감독은 FC 포르투-첼시-인테르에 이어 레알에서 성공할까요?
무리뉴의 스페인 진출이 기대되는 이유
만약 무리뉴 감독이 인테르에서 레알로 옮기면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가 지배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호셉 과르디올라 바르사 감독은 두 시즌 연속 프리메라리가를 평정했지만 이제는 무리뉴 감독의 거센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두 감독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치열한 전술 싸움을 벌였고, 지난 시즌과 올 시즌에 걸쳐 유로피언 트레블을 달성했던 젊은 감독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세계 축구를 화려하게 장식할 라이벌 관계로 부각 될 것입니다. '무간지(무리뉴)vs펩간지(과르디올라)'의 구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무리뉴 감독인 레알에게 가장 적합한 사령탑입니다. 레알은 '갈락티코'를 모토로 그동안 많은 스타급 선수들을 영입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실력과 해결사 기질을 가진 선수들이 여럿 포진하면서 개인 플레이 위주의 경기를 펼칠 수 밖에 없었고 스타의식에 젖어들기 쉬운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스타 위주의 시스템을 유도했던 레알 구단 운영진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결국 레알의 갈락티코는 실력적인 면에서 큰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끝에 바르사의 2인자로 전락했습니다. 팀이 변화하려면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들의 스타 의식을 버려야 하며 구단도 이에 동조해야 합니다.
무리뉴 감독은 개성 강한 선수들을 똘똘 뭉쳐 팀을 하나로 묶는 선수 장악력이 뛰어난 지도자입니다. 선수들을 야단치는 용장이자 그동안 많은 스타급 선수들을 다루었던 경험이 있지만 때로는 선수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고 있어 덕장으로서의 면모를 풍기게 합니다. 자신이 지도했던 포르투-첼시-인테르가 소위 '무리뉴의 팀'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무리뉴 감독이 선수들을 장악하고 자신의 색깔이 팀 전술에 그대로 묻어나왔던 카리스마가 얼마만큼 대단한지를 느끼게 합니다. 레알 구단이 무리뉴 감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 최근 6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의 뼈아픈 상처를 청산하고 유럽 제패애 본격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입니다.
무리뉴 레알행의 최대 수혜자는 카카?
무리뉴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중원에 세우는 4-3-3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빠른 타이밍, 패스의 강약을 조절하는 세기, 정확한 패싱력, 활발한 종적인 움직임을 자랑하는 선수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편이죠. 데쿠(포르투)-램퍼드(첼시)-슈네이데르(인테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레알로 팀을 옮기면 카카를 팀 공격의 구심점으로 놓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이 선호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스타일에 적합한 선수가 카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카카는 올 시즌 레알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쳤고 프리메라리가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세리에A와 프리메라리가의 공격 스타일 차이점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리에A 시절에는 좁은 공간에서 안정적인 볼 키핑으로 공을 오랫동안 소유하거나 스스로 전방으로 침투하여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AC밀란은 카카가 중심이 되는 역습 전개가 팀 공격의 근간 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리메라리가에서는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상대 수비를 파고들 공간 및 타이밍을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패스와 개인기를 바탕으로 공격을 전개하기 때문에 자신의 스피드를 내뿜을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카카의 공격력은 무리뉴 감독이 선호하는 역습에 가장 부합되는 성향입니다. 무리뉴 감독은 포르투-첼시-인테르에서 역습을 줄기차게 구사했고 레알에서도 그 흐름을 유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비록 카카가 프리메라리가 스타일에 융화되지 못했지만, 4-3-3이 성공하기 힘든 세리에A에서 4-3-3을 앞세워 성공했던 점을 미루어보면(성공 과정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못했지만) 카카의 슬럼프 탈출을 도울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의 역습 축구가 레알에서 성공하려면 카카의 꾸준한 맹활약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무리뉴 감독 레알행의 최대 수혜자는 카카가 될지 모릅니다.
무리뉴 레알행의 최대 피해자는 무리뉴?
하지만 무리뉴 감독이 레알로 옮긴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뚜렷한 실패 없이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유로피언 트레블 달성에 성공했지만 사람의 인생에서는 무조건적인 행복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분명 어느 시점에서는 실패하거나 험난한 과정에 시달릴 수 있으며 그것이 사람의 전형적인 인생사입니다. 무리뉴 감독의 명성과 자질만을 놓고 보면 레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많겠지만, 레알이라는 특성 관점에서 바라보면 실패할 가능성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리뉴 감독이 인테르에서 성공했던 원인은 구단의 간섭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입니다. 2년 전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와의 영입 협상 과정에서 자신이 데려오고 싶은 선수를 인테르의 일원으로 등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 여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바르사에 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사뮈엘 에토와 4000만 유로(약 591억원)의 거금을 받았고, 루시우-슈네이데르-모따-밀리토를 영입해 전력을 보강한 것, 자신과 전술적인 차이가 있었던 막스웰을 바르사로 넘긴 것은 올 시즌 트레블 달성의 뼈대가 됐습니다. 모라티 구단주가 자신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알의 감독은 구단 뿐만 아니라 프런트, 팬, 언론의 간섭까지 받습니다. 그래서 다른 빅 클럽과 다르게 외부의 입김이 지나칩니다. 무리뉴 감독이 첼시 사령탑 시절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의 갈등 끝에 팀을 떠났던 원인은 로만 구단주의 끊임없는 간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만 구단주는 무리뉴 감독에게 바르사 같은 공격적인 축구를 하라는 주문을 여러차례 했었고 선수 영입도 무리뉴 감독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문제점이 레알에서 되풀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례로, 파비오 카펠로 감독(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2006/07시즌 레알의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나 팬들에게 수비 축구를 한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경질 압박에 시달렸고 결국 짐을 싸고 떠났습니다. 공교롭게도 자신을 경질한 사람은 10년 전 자신의 제자였던 프레드락 미야토비치 전 단장 이었습니다. 레알은 우승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축구'를 근간으로 공격적이고 화려한 전술을 선호합니다. 카펠로 감독은 레알을 4시즌만에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이끌고도 레알이 선호하지 않는 수비 축구를 했기 때문에 마드리드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무리뉴 감독의 전술이 카펠로 감독의 전술 컨셉과 일치합니다. 무리뉴 감독은 공격보다는 탄탄한 수비에 중점을 두는 성향인데 선 수비-후 역습 전술을 즐겨 씁니다. 레알에서는 구단의 간섭에 의해 공격적인 축구로 바꿀 수도 있지만, 그동안 수비 위주의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뜻을 그대로 밀고 나갈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바르사 원정에서 10백이나 다름없는 밀집 수비를 펼쳤는데, 인테르 결승 진출의 토대가 됐다는 점에서 인테르팬들이 좋아하겠지만 반대로 레알에서 그런 전술을 썼다면 경질 압박과 비슷한 쓴소리를 들었을지 모릅니다.
또한 레알은 감독 교체가 잦은 클럽입니다. 레알은 1989년 존 토샥 부터 지금의 페예그리니 감독에 이르기까지 21년 동안 24번의 감독 교체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페예그리니 감독은 시즌 초반 행보가 순조로웠으나 지난해 11월 코파 델 레이 32강 탈락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경질설에 시달렸습니다. 무리뉴 감독이 레알로 둥지를 틀면 경질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물론 인테르도 1995년 부터 2004년까지 11명의 감독 교체를 단행했던 이력이 있으나, 모라티 구단주는 무리뉴 감독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했습니다.
결국, 무리뉴 감독이 레알에서 성공하려면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을 비롯한 구단 수뇌부들의 꾸준한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잦은 간섭 보다는 모라티 구단주의 사례처럼 감독의 뜻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페레즈 회장은 갈락티코 1기 시절에 잦은 감독 교체를 단행했던 경험이 있어 무리뉴 감독이 성공할지 의문입니다. 물론 무리뉴 감독이 포르투-첼시-인테르에 이어 레알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면 좋겠지만, 구단과의 갈등 문제가 불거지거나 팬-언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입김에 무너지면 레알 감독으로써 실패할지 모릅니다. 레알행을 앞둔 무리뉴 감독의 현명한 진로 선택도 중요하지만, 레알의 인내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