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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월드컵 영웅에 가려져 빛을 못본 2인자들은?

 

월드컵은 최고의 축구 스타를 가리는 지구촌 축구 대제전이다. 흔히 축구팬들에게 '축구 황제'로 일컬어지는 펠레-마라도나-호나우두-지단이 세계 축구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월드컵이 있었기 때문이다. 푸스카스-크루이프-베켄바우어-호마리우 같은 월드컵 최고의 스타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들에 가려진 2인자들도 1인자 못지 않은 축구 영웅로 꼽힌다. 무한도전의 박명수, 1박2일의 이수근과 이승기가 유재석-강호동의 2인자로 주목을 받듯,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월드컵 영웅의 2인자들이 있다.

1. 산드로 콕시스(1929년 9월 29일생, 1954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헝가리)
펠레가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을 통해 축구 황제로 떠오르기 이전까지, 세계 최고의 공격력을 발휘했던 존재는 '매직 마자르' 헝가리의 투톱인 푸스카스-콕시스였다. 푸스카스가 '최고의 골잡이', '왼발 마술사'의 찬사를 받아 A매치 85경기에서 84골을 넣었다면, 콕시스는 강력한 헤딩과 포스트플레이를 자랑하던 골잡이였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콕시스의 골 생산이 단연 돋보였다. 한국전 3골을 비롯 총 11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등극했는데 푸스카스의 4골보다 거의 3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스위스 월드컵 이후 레알 마드리드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푸스카스의 화려한 명성에 가려 2인자의 인상이 짙어졌다.

2. 고든 뱅크스(1937년 12월 20일생, 1966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잉글랜드)
뱅크스는 조국에서 열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삼사자 군단의 우승을 이끈 골키퍼다. 각각 골든볼(1위) 실버볼(2위)을 수상한 바비 찰튼, 바비 무어의 공헌에 밀린 감이 있지만, 그가 없었다면 잉글랜드의 우승이 힘들었지 모른다. 조별리그 3경기와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무실점 선방을 펼쳤기 때문.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펠레가 왼쪽 구석에서 날린 헤딩슛을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선방했던 장면은 월드컵에서 가장 뛰어난 선방으로 일컬어진다.

3. 자이르지뉴(1944년 12월 25일생, 1970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브라질)
자이르지뉴는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끈 '드리블의 귀재' 가린샤의 후계자로 꼽힌다.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드리블에 파워까지 겸비하며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렸고 골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측면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문전 쇄도하는 성향을 즐기며 펠레에게 골 기회를 제공하거나 자신이 직접 골을 해결 지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이 우승하기까지 매 경기 골을 넣는(6경기 7골) 경이적인 득점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선수는 축구 황제 펠레였다.

4. 게르트 뮐러(1945년 11월 3일생, 1970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독일)
뮐러는 서독(독일) 축구가 자랑하는 전형적인 골잡이다. 펠레와 마라도나처럼 스피드와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가 아닌데다 신장 176cm로서 장신이 아니었지만 골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았다. A매치 62경기에서 68골, 바이에른 뮌헨에서 453경기에 나서 398골, 1970년 멕시코 월드컵 10골로 득점왕에 오른 데다 두 번의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괴력의 골 생산을 펼친 것. 뮐러가 속한 독일은 1970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아성을 못 넘었지만 4년 뒤 서독 월드컵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크루이프-베켄바우어가 지배했던 1970년대 세계 축구계를 빛낸 또 하나의 축구 영웅으로 꼽힌다.

5. 롭 렌센브링크(1947년 6월 3일생, 1974-1978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네덜란드)
1970년대는 네덜란드의 토털사커가 꽃피우던 시절이었다. 역동성-압박-스위칭을 강화하며 탄탄한 조직력과 압박을 자랑했다. 당시 네덜란드의 에이스는 크루이프였지만 그의 조력자로서 왼쪽 윙 포워드인 렌센브링크의 맹활약이 빛났다. 뛰어난 볼 컨트롤과 활발한 움직임을 앞세워 크루이프를 비롯한 동료 선수의 공격력을 보완하는 역할에 강했다. 크루이프가 불참했던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5골을 넣었는데 그 중 4골이 페널티킥 골이었다.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공로로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6. 코임브라 지쿠(1953년 3월 3일생, 1982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브라질)
지쿠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가공할 드리블, 패스, 프리킥을 비롯 공격수를 능가하는 슈팅 능력을 뽐내며 당시 브라질 축구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각광받았다.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패스를 찔러 넣는 과정 및 움직임이 인상적이었으며 '하얀 펠레'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감독과의 갈등 끝에 벤치로 밀렸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 2라운드에서는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를 제압했으나 이탈리아에 덜미 잡혔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의 원맨쇼에 존재감이 가려졌다. 펠레와 비견되는 공격력을 지녔으나 월드컵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7. 미셸 플라티니(1955년 6월 21일생, 1982-1986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프랑스)
플라티니는 지쿠와 더불어 198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다투었던 프랑스 축구의 영웅이다. 가공할 슈팅력과 날카로운 패싱력, 현란한 테크닉에 그림 같은 프리킥까지 장착하며 '아트사커'의 진수를 선보였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팀 전력에 이렇다 할 공헌을 하지 못해 프랑스가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1982년 스페인 월드컵과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절정의 공격력을 과시하며 프랑스의 4강 진출을 이끌었고 월드컵 베스트 11에 이름을 내밀었다. 그러나 두 대회에서는 로시, 마라도나의 우승 공헌에 가려 2인자에 그쳤다.

8. 호르헤 발다노(1955년 10월 4일생, 1986년 월드컵 우승 주역, 국적 : 아르헨티나)
발다노는 현재 레알 마드리드 단장으로 유명하지만 현역 선수였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와 더불어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한국과의 본선 첫 경기에서 2골 넣으며 3-1 승리를 이끈 것을 비롯, 본선 불가리아전 및 결승 서독전 1골로 총 4골 기록해 브론즈 슈(득점 3위)를 수상했다. 위력적인 포스트 플레이, 문전 앞에서 결정적인 득점력을 이끌어내며 1980년대 유럽 축구를 빛낸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지만 대표팀 통산 기록은 22경기 7골에 불과하다. 멕시코 월드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공헌했으나 마라도나라는 축구 영웅에 가려졌다.

9. 베베토(1964년 2월 16일생, 1994년 월드컵 우승 주역, 국적 : 브라질)
베베토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호마리우와 더불어 브라질의 우승을 이끈 쉐도우 스트라이커다. 감각적인 발재간과 빠른 순발력으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는 재미난 공격력을 펼친 것. 본선 카메룬전, 16강 미국전, 8강 네덜란드전에서 골을 넣었지만 지구촌 축구팬들의 스포트라이트는 호마리우의 가공할 공격력에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베베토가 네덜란드전에서 골을 넣은뒤 아들의 출산을 기뻐하며, 두 손으로 아기를 안으며 좌우로 흔드는 골 세리머니는 지금도 축구팬들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회자된다.

10. 릴리앙 튀랑(1972년 1월 1일생, 1998-2006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프랑스)
만약 프랑스가 튀랑없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나섰다면 우승 달성이 어려웠을지 모른다.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 0-1로 패할 뻔했던 상황을 튀랑이 역전시켰기 때문. 튀랑은 대회 최고 복병이었던 크로아티아전에서 후반 2분 동점골, 후반 24분 역전골을 넣으며 조국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인마크와 끈기 넘치는 수비력으로 상대 공격수를 제압한 공로에 힘입어 호나우두-수케르에 이어 프랑스 월드컵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프랑스 월드컵 우승의 주역 지단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은 것. 8년 뒤 독일 월드컵에서는 프랑스가 7경기에서 3실점만 허용했는데, 34세 베테랑 수비수 튀랑의 공이 컸다.

11. 히바우두(1972년 4월 19일생, 1998-2002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브라질)
브라질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준우승과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을 통해 호나우두라는 축구황제를 배출했다. 하지만 호나우두와 더불어 지구촌 축구팬들의 화려한 주목을 끌었던 공격수는 히바우두다. '왼발의 달인'이라 불릴 만큼 왼발을 이용한 킥력이 뛰어났으며 빠른 드리블 돌파와 현련한 드리블 돌파 또한 일품 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3골, 2002년 한일 월드컵 5골을 넣으며 선전했고 특히 한일 월드컵에서는 승부처에서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스콜라리 브라질 감독에게 '히바우두가 월드컵 최고의 플레이어'라는 극찬을 받았다.

12. 미하엘 발라크(1976년 9월 26일생, 2002-2006년 월드컵 베스트 11, 국적 : 독일)
지단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과 2006년 독일 월드컵 준우승을 통해 축구 황제로서의 진면목을 과시했지만, 발라크는 지단의 네임벨류에 가려진 경향이 짙다. 독일 대표팀의 플레이메이커로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준우승, 2006년 독일 월드컵 3위라는 빼어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 한일 월드컵에서는 독일이 답답한 경기를 펼친다는 외부의 비판 속에서도 8강 미국전, 4강 한국전 결승골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팀의 구심점을 맡아 날카로운 패싱력을 전개했다. 이번에도 주장으로 출전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지단에 가려진 2인자가 아닌, 독일 우승의 주역으로 거듭나 1인자의 영광을 차지할지 주목된다.

*이 글은 Daum 스포츠 남아공 월드컵 특집 매거진에 실렸으며 Daum측의 허락을 받고 게재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