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모나코는 105분의 무실점 저력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박주영은 팀의 에이스 답게 자기 몫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만약 박주영이 부진했다면 모나코는 전후반에 이어 연장전까지 무기력한 경기를 거듭했을지 모릅니다.
박주영이 속한 모나코가 2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09/10시즌 쿠페 드 프랑스(프랑스컵) 결승전 파리 생제르맹(이하 PSG)전에서 0-1로 패했습니다. 경기 내내 PSG 페이스에 끌려다니며 여러차례 실점 위기를 허용했으나 골키퍼 스테판 루피에의 선방에 힘입어 연장전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연장 전반 15분 수비진의 집중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기욤 오아르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프랑스컵 준우승에 그쳐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진출이 좌절 되었습니다. 박주영은 120분 동안 그라운드를 밟았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습니다.
박주영, 타겟맨으로서 최상의 활약 펼쳤지만 팀이 문제
우선, 박주영은 이날 경기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프랑스컵 결승전 무대를 밟았습니다. 서정원-이상윤-안정환 같은 한국인 선수들을 비롯해 일본인과 그 외 아시아 국적 선수들이 프랑스리그 무대를 밟았으나 프랑스컵 결승전 출전과 인연이 없었습니다. 프랑스컵 결승전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메인 스타디움이자 프랑스의 국립 경기장인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렸습니다. 8만 관중석을 거의 채운 현지 축구팬을 비롯해 프랑스 전역의 많은 축구팬들이 박주영의 활약상을 지켜보는 계기였습니다.
박주영은 PSG와의 결승전에서 힘든 경기를 펼쳤습니다. 1~2달 전까지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렸고 지난달 28일 르망전에서 왼쪽 눈 주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해 조기 교체된지 얼마되지 않아 PSG전에서 120분을 출전했습니다. 축구 선수가 연장전까지 뛰면 일반적으로 3~4kg의 체중이 빠지는 편인데, 부상 이후 감각을 되찾아가는 시점에서 평소보다 체력 소모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네네-피노로 짜인 좌우 윙어들을 제외한 미드필더 세 명(코스타, 망가니, 알론소)들의 활발하지 못한 전방 침투는 박주영을 외롭게 했습니다. 한마디로 모나코 공격은 네네-박주영-피노의 개인 기량에 의존했습니다.
그런 박주영이 힘든 경기를 펼칠 수 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모나코의 공격이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모나코는 후방 옵션들이 공격을 전개하기 위해 미드필더진의 짧은 패스보다는 전방에 있는 박주영쪽으로 롱볼을 날립니다. 코스타-망가니로 짜인 더블 볼란치가 PSG와의 허리 싸움에서 밀리면서 패스 게임이 살아나지 못했고 공격형 미드필더인 알론소의 공격 조율이 무뎌지면서 박주영의 머리를 노리는 공격에 치중했던 것이죠. 그래서 박주영은 공중볼을 받아내기 위해 좌우 측면, 최전방, 하프라인 부근까지 부지런히 움직인데다 120분 동안 쉴세없이 반복하며 발이 닿도록 공중볼 받기에 주력했습니다.
올 시즌 모나코 경기를 유심히 지켜봤던 분들이라면, 박주영이 PSG전에서 공중볼을 따내려는 모습이 평소보다 잦았음을 느끼셨을 겁니다. 연장전을 제외하더라도, 모나코의 공격이 박주영의 롱볼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그 빈도가 여러차례 반복된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모나코에게 독으로 작용했습니다. 모나코 후방 옵션이 롱볼을 올리면 PSG 수비수가 박주영을 따라붙는 모습 또한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PSG가 박주영의 롱볼에 의지하는 모나코의 공격 전술을 읽었음을 말합니다.
또한 모나코는 박주영이 공중볼을 따낸 이후의 2차, 3차 공격이 박스 안에서 매끄럽게 전개되지 못했습니다. 네네-알론소-피노가 박주영과 간격을 좁히면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유기적인 콤비플레이를 사전에 준비했어야 했는데, 네네-피노는 팀 전술의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개인 돌파에 치중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알론소는 활동 범위가 좁았던데다 상대 중원에 막혀 박스 안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박주영이 상대 수비수와의 경합 속에서도 부지런한 움직임과 높은 점프력, 정확한 헤딩 타점으로 공중볼을 무수하게 따내며 팀 공격 기회를 마련했음에도 모나코가 한 골도 못넣은 것은 팀의 공격 전술에 문제가 있었음을 뜻합니다.
이날 모나코의 공격 전술을 보면 박주영이 아닌 네네-피노, 후반 40분에 교체 투입된 무사 마주의 골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박주영이 공중볼을 따낸 공을 네네-피노가 잡으면서 상대 수비를 흔들어 골을 넣는 공식이 두드러졌죠. 볼턴에서 케빈 데이비스라는 타겟맨이 공중볼을 따내고 나머지 선수들이 골을 노리는 방식과 똑같은 타입입니다. 상대 수비수들을 제끼고 박스 안으로 침투하여 슈팅을 노리는 네네-피노의 파괴력은 뛰어났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특출난 공격 옵션들의 개인기보다는 콤비 플레이를 통한 호흡 능력이 현대축구에서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죠.
만약 모나코가 후반 종료 직전 PSG에게 실점했다면 라콤브 감독이 후반 40분 마주의 교체 투입 타이밍에 대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마주는 최근에 여러차례 골을 터뜨리며 모나코 공격에서의 비중이 커졌는데 라콤브 감독이 늦게 투입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문제는 마주 원톱 체제에서 피노를 교체하고 박주영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리면서 모나코의 공격 밸런스가 무너졌습니다. 피노가 상대 진영을 맹렬하게 흔들며 모나코 공격의 활력소 역할을 했는데, 결국 교체되면서 네네의 돌파력이 상대 수비의 거센 압박에 막혀 이렇다할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박주영에게 많은 패스가 올라오지 못하면서 PSG가 연장 전반 페이스를 장악했고 결국 골을 터뜨렸습니다.
그런 박주영은 많은 힘이 소모된 상태에서 연장전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부지런히 움직일 수 밖에 없었고, 공격형 미드필더임에도 박스 안까지 활발히 접근하여 슈팅을 노렸습니다. 연장 전반 3분 박스 왼쪽에서 날린 터닝슛, 연장 후반 막판 두 번의 헤딩슛을 통해 골을 노렸지만 상대 골망을 가르지 못했습니다. 골을 넣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런 시도가 전후반에 많았다면 네네-피노가 소위 '받아먹기'를 하면서까지 골을 터뜨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박주영이 부상 복귀 이후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지만, PSG전에서의 슈팅 자세는 감각적이었고 상대 수비의 판단이 한 박자 늦었을 만큼 슈팅 타이밍도 절묘했습니다.
결국, 박주영은 팀의 공격 전술 부재와 동료 선수들의 미흡한 공격 속에서도 최전방에서 고군분투 했습니다. 수많은 프랑스 축구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PSG 수비진과의 공중볼 경합에서 여러차례 우세를 점했고 부지런한 움직임을 펼쳤다는 점은 국내 축구팬들에게 인상깊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열심히 뛴 것에 비해 원하는 결과를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연장 혈투끝에 우승을 못했기 때문이죠. 박주영과 더불어 최후방에서 PSG 선수들의 슈팅을 막아내느라 분주했던 골키퍼 루피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두 선수가 없었다면 모나코는 결승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패했을 것입니다.
또한 박주영은 프랑스컵 결승전을 통해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유로파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면 자신의 가치와 위상이 높아지면서 좋은 여건으로 빅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모나코가 올 시즌 리게 앙 9위로 추락하면서 유로파리그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구드욘센-니마니가 3~4개월 전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지만 이 선수들은 모나코에서 실패한 선수들입니다. 모나코는 박주영을 빅 리그에 보낼 경우 높은 이적료를 받아 넘길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팀 성적이 중요한데, 이제 박주영은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빅 리그 진출의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박주영의 프랑스컵 우승 좌절이 안타까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