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세계 최고의 클럽 답지 못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횡패스 남발 및 공격수의 부진, 좌우 풀백들의 뒷 공간 커버 실패, 수비 불안, 컨디션 조절 실패 등 평소와 달리 허점을 많이 노출했습니다. 문제는 이번 패배가 결승 진출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가 21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주세페 메이차에서 열린 2009/1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인터 밀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1-3으로 패했습니다. 전반 18분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선제골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으나 전반 29분 베슬레이 스네이더르에게 동점골, 후반 2분 더글라스 마이콘에게 역전골, 후반 15분 디에고 밀리토에게 쐐기골을 허용하고 무너졌습니다. 홈에서 열릴 29일 4강 2차전 경기에서는 카를레스 푸욜의 경고 누적 결장 공백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라 결승 진출 과정이 험난할 것으로 보입니다.
메시의 부진이 바르사에게 아쉬웠다
통계상으로는 바르사가 우세를 점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경기였습니다. 2002/03시즌 2차 조별리그와 올 시즌 32강 조별리그를 포함한 4경기 모두 무실점 경기를 펼치면서 2승2무의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인터 밀란이 역대 스페인 클럽과의 유럽 클럽 대항전 토너먼트에서 4무9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던 징크스는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넘보는 바르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 처럼 보였습니다.
우선, 바르사는 점유율 66-34(%), 슈팅 11-8(유효 슈팅 7-5), 패스 636-521(개), 패스 성공률 82-58(%)로 인터 밀란을 앞서며 90분 동안 공격적인 흐름을 일관했습니다. 특히 사비는 무려 108개의 패스(93개 성공)를 연결한데다 양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활동량(11.121km)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바르사의 문제점은 컨디션 이었습니다. 최근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의 영향으로 유럽 전역의 항공편이 잇단 결항되면서 바르사 선수들이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하루 숙박한 뒤, 밀라노에 도착하기까지 985km 이동했고 버스에서 보낸 시간만 무려 14시간 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버스에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유지했던 리듬이 끊어졌고 컨디션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경기 초반부터 무거운 몸놀림을 보이며 평소만큼 활동 폭을 넓히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바르사의 문제는 공격 옵션들의 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르사는 인터 밀란전에서 즐라탄을 원톱으로 세우고 케이타-메시-페드로를 2선 미드필더로 활용하는 4-2-3-1을 구사했습니다. 수비시에는 즐라탄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압박 과정에 참여하고, 공격시에는 2선 미드필더들이 박스 안으로 깊게 침투하여 4-2-4로 변형되는 모습을 보였는데 문제는 공격 옵션끼리의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가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오랜 원정시간에 따른 컨디션 저하로 선수들이 활동 폭을 넓히지 못하면서 자기 공간을 지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2선 미드필더끼리 종종 스위칭을 시도했으나 횡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상대 수비를 뚫는 작업과 무관 했습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인터 밀란전 공격 전술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인 메시가 캄비아소-모따로 짜인 상대 더블 볼란치의 뒷 공간을 파고드는 쪽에 초점을 모았습니다. 인터 밀란이 4명의 수비수와 3명의 미드필더 사이의 폭을 좁히는 압박 작전을 펼치기 때문에 그 작전을 간파하기 위해 메시를 필승카드로 활용한 것이죠. 그래서 페드로를 메시의 자리에 놓고, 케이타를 왼쪽 윙어로 끌어올리고, 부스케츠-사비를 더블 볼란치로 놓으며, 페드로-즐라탄-메시로 짜인 평소의 3톱과 변형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메시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좁은 공간에서 상대 수비의 압박을 뚫지 못했습니다. 전반전에 공격 옵션 중에서 가장 많은 패스를 시도했으나(28개) 대부분이 횡패스였고 원톱인 즐라탄에게 여러차례 결정적인 전진패스를 이어주지 못했습니다. 메시는 상대 수비의 빈 공간이 열리면 그 즉시 전방으로 매섭게 파고들어 골을 넣는 성향인데,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캄비아소-모따)의 강력한 압박을 받으면서 빈 공간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평소의 컨디션이었다면 상대의 터프한 수비를 극복하면서 전방쪽으로 빠르게 치고들었을지 모르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몸 놀림이 무거웠습니다.
이러한 메시의 부진은 공격 옵션들이 인터 밀란의 강력한 압박에 실마리를 풀지 못하는 단점으로 이어졌습니다. 메시의 어려움은 즐라탄의 최전방 고립으로 이어졌고 케이타-페드로가 측면으로 공간을 벌리는 작업을 병행하면서 박스 안쪽으로의 공격 연결보다 횡패스에 의존하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사비가 패스와 활동량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냈지만 공격 옵션들의 무기력함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장점이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바르사는 전반 18분 막스웰이 왼쪽 측면에서 오버래핑하는 과정에서 캄비아소가 스피드 경합에서 밀려 박스 안에서 공을 이어받은 페드로가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캄비아소-모따, 4백 옵션들이 압박 과정에서 활동량을 늘리며 바르사 공격 옵션을 지치게했고,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바르사 공격 옵션들의 과감함이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메시는 90분 동안 8.228km를 뛰며 10km를 넘은 케이타-페드로-사비-부스케츠보다 더 많이 뛰지 못했는데, 다른 공격 옵션들의 활동 부담이 커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공격시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패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르사의 3실점 원인은 인터 밀란에게 전방 수비의 약점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막스웰-푸욜-피케-알베스로 짜인 포백은 미드필더와 폭을 좁히면서 앞쪽으로 올라오는 형태의 수비를 펼칩니다.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따내며 미드필더들의 공격적인 흐름과 점유율 확보를 유도하는 것이 바르사 수비의 특징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막스웰-알베스가 오버래핑을 펼치는 상황에서 상대의 측면 역습을 간파당해 뒷 공간을 허용하면서 3실점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인터 밀란이 에토-판데프를 좌우 윙어로 놓는 변헝적인 4-2-3-1을 썼는데 그 전략을 과르디올라 감독이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르사는 박스 안쪽 오른쪽 공간을 파고들며 골 기회를 노렸던 인터 밀란의 공격을 봉쇄하지 못했습니다. 첫번째 실점은 에토의 크로스, 두번째 실점은 밀리토의 돌파에 이은 스루패스, 세번째 실점은 에토의 크로스에 의해 무너졌는데 세 장면 모두 박스 안쪽 오른쪽 공간에서 실점의 결정적 빌미를 허용했습니다. 특히 첫번째 실점 상황에서는 3명의 수비수가 박스 안에서 뒤엉키면서 왼쪽에서 골 기회를 노리던 스네이더르에게 빈 공간을 허용해 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좌우 풀백들의 뒷 공간 커버 실패 뿐만 아니라 수비수들의 호흡까지 척척 맞지 못했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든 것이 매끄럽지 못했던 바르사의 패배가 당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