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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에게 있고 맨시티에 없는 것, 노련미

 

노련미에서 경기 희비가 엇갈렸던 경기였습니다. 두 팀 모두 경기 막판까지 서로 물고 늘리는 경기를 펼쳤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승패가 결정된 것은 한 팀에게는 강점 요소, 다른 한 팀에게는 약점 요소라 할 수 있는 노련미가 승부를 좌우했기 때문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전에서 36세 미드필더 폴 스콜스의 결승골로 승리했습니다. 맨유는 17일 오후 8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맨시티 원정에서 후반 47분 파트리스 에브라의 크로스에 이은 스콜스의 헤딩골로 맨시티의 골망을 갈랐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승점 76을 기록해 토트넘에게 1-2로 제압당한 첼시(승점 77)와의 격차를 승점 1로 좁혀 프리미어리그 역전 우승의 희망을 지폈습니다.

긱스-스콜스-네빌의 살신성인이 맨시티전 승리 원동력

우선, 맨유는 올 시즌 맨시티와의 4경기 중에 3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3경기에서 이긴 과정이 서로 똑같습니다.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상황에서 쐐기골을 넣었으며 노장 선수가 공격 포인트를 달성했습니다.

맨유는 지난해 9월 20일 맨시티전에서 후반 49분 벨라미에게 동점골을 허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오언이 긱스의 전방 킬 패스를 받아 4-3으로 승리했습니다. 지난 1월 24일 맨시티와의 칼링컵 4강 2차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까지 통합 스코어에서 3-3으로 팽팽히 맞섰으나 루니가 긱스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시켜 맨유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스콜스가 후반 47분 헤딩골을 넣으며 또 다시 맨시티에게 좌절을 안겼습니다. 긱스-스콜스가 맨시티와의 3경기에서 팀 승리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런 맨유에게 있어 이번 맨시티전은 중요합니다. 지난 11일 블랙번전 0-0 무승부로 첼시와 승점 4 차이로 벌어졌기 때문에 맨시티전에서 승점 3을 얻지 못하면 리그 우승이 사실상 좌절 될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가용할 수 있는 최정예 전력으로 맨시티전을 준비했는데 '의외의 선택'을 내렸습니다.(박지성은 컨디션 저하, 퍼디난드는 부상으로 결장) 긱스(37)-스콜스(36)-네빌(35) 같은 30대 중후반 선수들을 선발로 기용한 것입니다. 긱스 자리에 나니, 스콜스 자리에 캐릭, 네빌 자리에 오셰이 같은 젊은 선수들이 포진할 수 있었는데 퍼거슨 감독은 노장을 통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긱스-스콜스-네빌은 지난 블랙번전에서 평균 이상의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베르바토프-마케다 투톱처럼 극심하게 부진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의 밀집 수비를 뚫어내기에는 이들이 역부족 이었습니다. 하지만 맨시티전은 지역 라이벌전이자 최근에 서로 물고 늘리는 혈전을 펼쳤습니다. 젊은 선수 위주로 스쿼드를 꾸리기에는 자칫 맨시티가 주도하는 맹공격을 비롯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단점이 있기 때문에, 실력이 출중한 노장 선수가 팀 전력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긱스-스콜스-네빌이 경기에 나선 것입니다.

물론 긱스-스콜스-네빌은 기동력에서 젊은 선수들보다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긱스는 나니-발렌시아-박지성에 보다 기동력이 약하며, 스콜스는 최근 경기에서 체력 저하에 시달리며 팀 전력을 어렵게 했고, 네빌은 고질적으로 빠른 타입의 상대 윙어에 취약한 편입니다. 그런데 맨시티전에서는 이 같은 단점이 전혀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세 명의 노장 모두 젊은 선수 못지 않게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비는 살신성인으로 맨유의 경기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맨유가 점유율 56-44(%), 슈팅 15-9(유효 슈팅 4-3, 개)로 맨시티를 앞섰던 것은 노장들의 활약이 중요한 결정타 역할을 한 것입니다.

긱스는 맨시티전에서 왼쪽 윙 포워드와 중앙 미드필더를 번갈아 갔습니다. 왼쪽 윙 포워드로 뛸 때는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통한 압박 과정에 참여했으며 공격시에는 상대 박스쪽으로 전진하고 동료 선수들과 공을 주고 받으며 팀 공격의 유기성을 키웠습니다. 후반 중반에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한 이후에는 스콜스-플래처와의 하나 된 호흡으로 배리-데 용-비에라와의 허리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고 그들의 뒷 공간을 파고드는 패스를 노렸는데 그 작업이 경기 막판까지 반복되면서 에브라 크로스-스콜스 헤딩슛에 의해 맨시티의 수비가 흔들리는 토대가 됐습니다.

스콜스는 전형적인 앵커맨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플래처-깁슨 사이의 가운데 미드필더를 맡아 팀의 공격을 조율한 것이죠. 맨유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패스(52개)를 시도했고 48개를 정확하게 연결하며 팀 공격의 효율성을 키웠습니다. 최근 경기에서는 후반전이 되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활동 폭이 좁아지는 단점이 노출되었는데 맨시티전에서는 경기 내내 팀의 압박 및 패스 연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혼신의 힘으로 경기를 뛰었습니다. 이 같은 활약에 자신감을 얻으면서 경기 종료 직전 상대 박스 안으로 전진하여 헤딩골을 넣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습니다.

네빌은 상대 왼쪽 윙어이자 빠른 드리블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는 벨라미 봉쇄에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빠른 타입의 윙어에 취약한 단점을 드러냈는데 이날 경기에서는 벨라미를 악착같이 따라 붙으며 상대를 괴롭혔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일상속의 용어를 떠올리게 하듯, 벨라미의 거친 특성을 이용하여 손과 어깨를 이용한 거친 수비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끈질기게 따라 붙었습니다. 여기에 맨시티 공격이 벨라미에 의존하는 악수를 두면서, 네빌의 벨라미 봉쇄 작전이 팀 승리의 밑거름으로 작용했습니다. 벨라미가 왼쪽 박스 바깥에서 안쪽으로 이어지는 10개의 패스를 모두 부정확하게 연결한 것은 네빌의 수비를 이기지 못해 공격 활로를 잃었던 경기 내용을 여실히 반영했습니다.

물론 맨시티에는 34세 노장인 기븐-비에라가 있고 배리-투레-벨라미 같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긱스-스콜스-네빌처럼 맨유에서 약 20년 동안 뛰었던 선수들이 아닙니다. 기븐은 골키퍼, 비에라는 철저한 벤치 멤버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팀 전력에 미치는 영향이 낮으며, 배리-투레-벨라미의 노련함은 긱스-스콜스-네빌에 비해 무게감이 약합니다. 그리고 맨시티라는 팀은 잦은 선수 영입 때문에 조직력이 약점 요소로 부각되기 쉬운 단점이 있는데 팀으로서 노련미를 강점 요소로 승화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맨유전에서 벨라미-아데바요르-테베즈-존슨이 서로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경기를 펼쳤는데, 맨유의 철저한 수비 조직력 앞에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반면 맨유는 조직력이 강한 팀입니다. 박지성이 2년 전 일본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유창한 일본어로 인터뷰한 동영상 장면) 맨유의 강점 원인을 "맨유 선수들은 정신적으로 모두가 프로의식을 갖고, 자신만이 아닌 모두가 팀을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고 답변했던 장면처럼, 철저한 팀 플레이를 중심으로 경기 합니다. 긱스-스콜스-네빌 같은 선수들이 오래전부터 팀 전력의 뼈대를 잡으면서 그라운드의 리더 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맨유는 세 선수가 여전히 팀 전력에 필요한 상황이며 얼마전 스콜스와 계약 연장을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결국 맨시티전 승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맨유에게 있고 맨시티에 없는 '노련미'가 두 팀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