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축구팬들에게 즐거운 골 소식을 전해줬던 유럽리거들의 활약상이 뜸해지고 있습니다. 박지성은 지난 주말 맨시티전에서 컨디션 저하로 결장했지만 문제는 박주영(25, AS 모나코) 이청용(22, 볼턴) 입니다. 두 선수는 불과 70~80여일 전까지 여러차례 상대 골망을 흔들며 '골 넣는 선수'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켰지만 지금은 박스 안에서의 임펙트가 미흡해지면서 골 넣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축구팬들이 주전 입지를 걱정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우선, 박주영-이청용은 다득점에 능한 선수들이 아닙니다. 박주영은 청소년 대표팀 시절까지 천재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으나 2006~07년에 잦은 부상 및 부진으로 신음하면서 골 감각이 떨어졌고 지난 시즌 31경기에서 5골을 기록할 만큼 전형적인 골잡이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특히 2008년~2009년 상반기에는 골보다 조율 위주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청용은 K리그 시절 많은 골을 넣었던 선수는 아니며 친정팀 서울에서 주연보다는 조연의 향기가 짙었습니다.
그럼에도 축구팬들이 두 선수의 골에 기대를 걸었던 이유는 올 시즌을 기점으로 업그레이드에 성공하며 '골을 잘 넣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심어줬기 때문입니다. 박주영은 지난해 12월 16일 스타드 렌전 부터 1월 31일 니스전까지 8경기 6골의 골 폭풍을 과시했습니다. 후방 공격 옵션들의 문전 침투를 돕는 역할에서 벗어나 활동 반경을 골문 안쪽에 치중하면서 동료 선수들의 전방 패스를 받아 골 기회를 노리는 골잡이의 진면모를 과시했습니다. 그 이후 햄스트링 부상으로 신음하지 않았고 꾸준히 경기에 뛰며 감각을 길렀다면 지금쯤 골잡이로서의 불꽃같은 공격력을 뽐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부상 복귀 이후 랑스와의 프랑스컵 4강을 포함해서 6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모나코의 득점 1위인 네네가 상대팀들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며 기복이 심해졌고, 아루나-알론소 같은 2선 미드필더들의 폼이 떨어지면서 박주영의 볼 터치가 부상 이전보다 떨어졌습니다. 박주영은 경기를 치를 수록 특유의 빠른 순발력을 되찾았고 후방에서 밀어준 롱볼을 잘 따냈는데 2선에서의 지원이 미흡합니다. 4-2-3-1의 원톱으로서 최전방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2선에 들어가기에는 활동 폭이 힘에 부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체력적으로 지친 끝에 19일 릴 원정에 결장했습니다.
박주영이 올 시즌 초반과 중반에 가공할 공격력을 보여줬던 원동력은 아루나-알론소와의 유기적인 호흡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두 명의 미드필더는 정교한 볼 배급과 활발한 움직임을 앞세워 박주영-네네와의 끊임없는 연계 플레이를 유도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두 명이 활동량에 힘이 부치면서 전진적인 움직임이 줄었고 박주영과의 간격이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은 최전방에서 외롭게 자리를 지켰고 골 넣을 기회가 마땅치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16일 스타드 렌전 부터 지난 2월 7일 생테티엔전까지 프랑스리그 8경기에서 슈팅 20개를 날렸는데(1경기 당 2.5개), 부상 복귀 이후 프랑스리그 5경기에서 슈팅 5개에 그쳤습니다.(1경기 당 1개) 아루나-알론소가 살아나지 못하면 박주영이 절호의 공간에서 슈팅을 날릴 기회가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청용은 오언 코일 감독 부임 이전까지 4골을 넣으며 볼턴 공격의 중요 옵션으로 떠올랐습니다. 게리 멕슨 전 감독의 롱볼 축구는 몇몇 경기에서는 이청용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청용은 박스 바깥에서 안쪽으로 치고드는 움직임을 즐기며 상대 문전을 위협하거나 동료 선수에게 결정적인 골 기회를 밀어줬던 임펙트가 강렬했습니다. 이것은 멕슨 전 감독이 이청용의 잠재된 공격력을 통해 팀 공격의 업그레이드를 꾀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 이청용은 멕슨 감독의 지지속에 꾸준한 공격 포인트를 뽑았습니다.
문제는 코일 감독 부임 이후 이청용의 활동 반경이 밑으로 내려갔다는 점입니다. 박스 바깥에서 안쪽으로 치고드는 움직임이 적어지고 볼턴 진영에서 하프라인을 넘나드는 움직임이 더 많아졌습니다. 전반적인 경기력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비중을 두는 현실입니다. 볼턴은 고질적인 수비 불안에 시달리자 강등을 면하기 위해 포백을 밑으로 내리고 미드필더와 수비수의 간격을 좁히면서 선 수비-후 역습 전술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청용은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팀의 압박에 참여했는데 그 빈도가 많아지면서 박스 안으로 들어오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찌보면 골 부진은 예견된 수순 이었습니다.
이청용의 발목을 잡은 또 하나의 이유는 체력입니다. 최근 이청용의 경기를 보면 2~3개월 전과 다르게 볼 터치가 줄었습니다. 그 원인은 동료 선수에게 공을 받을때의 움직임이 능동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패스를 받으려면 동료 선수가 정확하게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거나 상대 수비를 따돌려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열흘 쉬고 경기에 출전했던 14일 첼시전에서는 나아진 모습을 보였는데 17일 스토크 시티 원정에서 체력 저하에 시달리며 약점을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여름 휴식기 없이 1년 넘게 경기 출전을 강행했던 것이 자신의 경기력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축구팬들은 '박주영과 이청용이 주전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합니다. 박주영의 경쟁자인 무사 마주가 11일 발랑시엔전과 14일 랑스전에서 골을 넣었고, 이청용은 메튜 테일러, 블라디미르 바이스 같은 측면 자원들의 스토크 시티전 맹활약 때문에 주전 입지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일부 축구팬들의 견해입니다. 이러한 걱정도 두 선수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박주영과 이청용은 골 부진 속에서도 입지를 지킬 것이 분명합니다. 모나코는 박주영을 주전에서 빼면 롱볼 공격을 할 수 없습니다. 후방 옵션들이 박주영의 머리를 노리는 롱볼을 통해 공격을 전개하는 것이 모나코의 특징이기 때문이죠. 볼턴에서 '공중볼의 달인' 케빈 데이비스가 골 부진 속에서도 붙박이 주전을 지키는 것 처럼, 모나코는 롱볼을 받아낼 선수가 최전방에 필요한데 그 선수가 박주영입니다. 이청용의 입지는 걱정할게 없습니다. 바이스-윌셔 같은 측면 임대 자원은 앞으로 3경기만 치르면(시즌 종료 후) 원 소속팀에 복귀합니다. 볼턴이 강등 위협에서 벗어난 만큼, 이청용vs바이스의 주전 경쟁을 논하기에는 부적절한 타이밍입니다. 테일러는 전형적인 왼쪽 윙어이기 때문에 이청용 경쟁자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청용이 앞으로 남은 3경기에 모두 결장해도 팀 내 입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을거라 봅니다. 볼턴의 잔류는 사실상 확정적이고 이청용의 체력은 그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하면서 방전된 상태이기 때문에 계속 된 경기 출전보다는 통째로 휴식을 주는 것이 선수에게 더 낫다는 생각이며 볼턴 입장에서도 미래를 염두하기 위한 긍정적 선택으로 보여집니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되면 최상의 몸 상태로 남아공 월드컵에 임할 수 있으며 그 여세를 몰아 다음 시즌을 대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현실적인 시나리오겠지만, 그만큼 이청용에게 휴식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박주영과 이청용은 모나코와 볼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선수라는 것입니다. 모나코는 19일 릴 원정에서 박주영의 체력 안배를 위해 결장시켰지만 0-4로 대패했고 마주는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만약 이청용이 볼턴에 입단하지 않았거나 팀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뛰지 않았다면, 볼턴은 지금쯤 강등권에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청용의 출중한 공격력이 뒷받침했기에 데이비스-테일러의 내림세를 커버할 수 있는 구실이 생겼기 때문이죠. 두 선수 모두 골 부족에 시달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원래의 공격력을 보여줄 존재임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