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날이 북런던 라이벌 토트넘에게 프리미어리그에서 11년 만에 패배하면서 5시즌 연속 우승이 좌절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아스날은 15일 오전 4시(이하 한국시간) 화이트 하트레인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토트넘 원정에서 1-2로 패했습니다. 전반 10분 대니 로즈에게 선제골, 후반 2분 가레스 베일에게 골을 허용하면서 패색이 짙어졌고 후반 40분 니클라스 벤트너가 추격골을 넣었지만 승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아스날은 그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토트넘에게 20경기 연속 무패(11승9무) 행진을 기록했고 1999년 이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나 이번 경기에서 덜미를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아스날은 승점 71(22승5무7패)로 리그 3위 자리를 지키며 각각 승점 77, 73을 기록중인 첼시와 맨유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아직 리그가 4경기 남았기 때문에 첼시-맨유를 추격할 여지가 있지만, 잔여 경기를 모두 이기더라도 첼시가 남은 4경기 중에 두 경기를 더 이기면 아스날의 우승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골득실에서도 15골 차이로 벌어졌기 때문에(아스날 40골, 첼시 55골) 우승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올 시즌 칼링컵-FA컵-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한 아스날의 5시즌 연속 무관이 유력해졌습니다.
토트넘전에서 드러난 아스날의 문제점
'북런던 더비' 토트넘과의 라이벌전은 아스날의 한계가 드러났던 경기입니다. 우승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왜 우승을 못하는지, 2004/05시즌 FA컵 우승 이후 5시즌 연속 무관에 그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아스날은 토트넘전에서 파브레가스-아르샤빈-갈라스-송 빌롱 같은 공수의 핵심 전력들이 부상 공백으로 결장했습니다. 후반 23분 교체 투입했던 판 페르시는 장기간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이탈했던 선수였습니다. 문제는 다섯 선수들에 대한 비중이 아스날 전력에서 크다는 점입니다. 파브레가스 없는 아스날은 메시 없는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에 비유할 만큼 전력의 큰 구심점이며, 아르샤빈-판 페르시가 없는 아스날의 공격은 창 끝이 예리하지 않습니다. 갈라스가 없는 아스날의 수비는 비디치 없는 맨유를 보는 것처럼 든든하지 않으며, 송 빌롱이 없는 아스날의 중원은 살림꾼의 부재로 허약합니다.
그래서 아스날은 지난 7일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바르사 원정에서 다섯 명의 부상 공백을 이겨내지 못해 1-4 대패로 탈락했습니다. 이번 토트넘전에서는 판 페르시가 교체 투입했지만 정상적인 전력을 풀 가동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아스날의 플랜B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주력 선수에 의존하는 아스날의 시스템은 최근 몇 시즌 동안 우승 길목에서 발목이 잡혔던 원인 이었습니다. 올 시즌에는 로테이션 시스템이 유연해졌지만 주축 선수와 예비 전력의 실력 편차가 큰 것은 아스날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축 선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 선수들은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팀의 전력 손실을 부추겼습니다.
토트넘전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아스날은 갈라스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베르마엘렌-캠벨을 센터백으로 세웠는데 전반 20분에 베르마엘렌이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실베스트레를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실베스트레는 그동안 실전 경험이 부족한데다 빠른 타입의 공격 옵션에 약한 취약점이 있습니다. 지난 바르사전에서 메시-페드로에게 흔들리며 4실점 패배를 부추기더니 토트넘전에서도 상대 공격수에게 뒷 공간을 번번이 내주고 동료 수비수와 호흡이 맞지 않는 불안함을 일관했습니다. 뚜렷한 내림세가 엿보이는 실베스트레를 기용할 수 밖에 없는 아스날 수비의 현실, 전성기가 지난 캠벨까지 포함하면 백업 센터백 자원이 취약함을 알 수 있습니다.
중원은 더 문제입니다. 송 빌롱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중원에서 살림꾼 노릇을 할 수 있는 옵션을 잃었습니다. 데니우손은 좁은 활동 폭과 느슨한 압박 때문에 강팀 혹은 다크호스와의 경기에 취약한 문제점을 드러냈고 디아비는 기복이 심한 취약점이 있는데, 두 선수를 중원에 믿고 기용하기에는 아스날의 뒷문이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토트넘전에서 두 선수를 더블 볼란치로 배치했으나 상대팀의 에이스인 모드리치의 가공할 패싱력과 베일-로즈로 짜인 좌우 윙어들의 빠른 역습을 봉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지난 바르사전에서도 송 빌롱의 부상 결장으로 사비를 막지 못했는데, 토트넘전에서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된 것입니다.
파브레가스의 결장 공백은 나스리가 메웠습니다. 나스리도 파브레가스 못지 않은 공격력을 자랑하지만 상대 문전을 과감히 침투하여 직접 골을 엮어내거나,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수 뒷 공간을 파고들어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만들어내는 임펙트가 부족하며 토트넘전에서도 이러한 약점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40개의 모드리치보다 2배 더 많은 89개의 패스를 연결했으나(76개 성공) 대부분 횡패스 였습니다. 상대 홀딩맨인 허들스톤 사이를 파고들지 못해 횡패스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아스날 공격의 독으로 작용했습니다.
경기 내용에서는 아스날이 우세 였습니다. 점유율 66-34(%), 슈팅 23-15(유효 슈팅 6-5), 패스 555-241(개)를 기록해 토트넘보다 더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문제는 나스리의 공격 패턴이 단조로워지면서 로시츠키-에부에로 짜인 좌우 윙 포워드가 밑선으로 내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벤트너가 최전방에서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아르샤빈이나 판 페르시가 최전방을 맡았다면 자신도 밑선으로 내려와 나스리가 전진 패스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면서 박스 안에서의 유기적인 공격이 가능했을텐데, 벤트너는 전형적인 타겟 성향 이었습니다.
오른쪽 라인도 문제였습니다. 사냐는 평소와는 달리 몸이 무거운 모습을 보이며 베일의 빠른 침투를 봉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아스날이 토트넘의 역습에 고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스날은 후반 8분 사냐를 벤치로 불러들이고 에부에를 오른쪽 풀백으로 내려 월컷을 교체 투입했습니다. 에부에가 오른쪽 풀백으로서는 무난한 경기를 펼쳤지만 그 이전까지의 공격력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미드필더들과 간격을 좁히면서 활동 폭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기에는 자신의 기동력이 힘에 부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측면 옵션임에도 상대 수비를 제압하는 임펙트가 부족한 것은 에부에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입니다.
아스날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골키퍼 알무니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스날의 첫 실점은 알무니아의 매끄럽지 못한 위치선정이 결정타 였습니다. 전반 10분 토트넘의 오른쪽 코너킥을 펀칭으로 잘 막아냈지만 그 이후 로즈의 슈팅 궤적을 판단하지 못해 공의 방향과 멀어진 지점에서 다이빙을 하고 말았습니다. 공과 선수의 위치를 읽는 시야와 판단이 약하다는 것인데, 그동안 아스날의 실점은 알무니아의 실수에서 빚어진 것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권에 있는 클럽들은 정상급 골키퍼들이 있는데 아스날은 알무니아의 불안한 선방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올 시즌 무관이 거의 확실시 된 아스날이 여름 이적시장에서 대형 골키퍼 영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