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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레알 마드리드, 분노의 영입은 잘못된 판단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는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리옹에 의해 8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유럽 제패의 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도 2004/05시즌 부터 6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하면서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팀(9회)의 자존심을 단단히 구기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올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탈락의 충격이 제법 컸습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장소가 레알의 홈 구장인 산티아구 베르나베우였기 때문이죠. 수많은 홈팬들 앞에서 10번째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시나리오가 그저 꿈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라이벌 FC 바르셀로나가 트레블을 달성한 것이 박탈감을 느끼며 '분노의 영입'을 단행했습니다. 호날두-카카-벤제마-알비올-알론소-아르벨로아 같은 슈퍼 스타 영입에 2억 4650만 유로(약 3818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투자해 유럽 제패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끝내 헛수고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현지 언론에서는 레알이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또 다른 슈퍼 스타들을 영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밝히고 있습니다. 레알이 그동안 '갈락티코'를 모토로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투자한 것을 비롯 전력 강화의 근간으로 삼았기 때문에 슈퍼 스타의 이적설이 불가피하게 거론된 것이죠. 더욱이 레알이 6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슈퍼 스타의 영입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올해 여름에도 '분노의 영입'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입니다.

레알 이적설로 주목받는 슈퍼 스타는 6명 입니다. 웨인 루니, 파트리스 에브라(이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 프랑크 리베리(바이에른 뮌헨)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다비드 비야(발렌시아) 더글라스 마이콘(인터 밀란)이 바로 그들입니다. 6명은 그동안 레알 이적설로 꾸준한 관심을 받았으며 올 시즌이 종료되면 레알의 강도높은 영입 공세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 달 전 에이전트를 통해 이적을 부정했지만, 네마냐 비디치(맨유)의 레알 이적 가능성도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리베리의 올해 여름 레알 이적은 기정 사실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리베리가 레알의 고문인 지네딘 지단을 존경했던 것, 바이에른 뮌헨과의 재계약 공세를 거부한 것, 바이에른 뮌헨이 리베리의 이적료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올해 여름이라는 것(2011년 여름 계약 종료, 그러나 계약 종료 6개월 전부터 이적료 없음), 레알이 카카의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는 요소가 리베리의 마드리드 입성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리베리 뿐만은 아닙니다. 또 다른 슈퍼 스타들도 갈락티코의 일원이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만약 레알이 올해 여름 분노의 영입을 단행하면 취약 포지션 네 곳을 보강할 것입니다. 곤살로 이과인의 챔피언스리그 부진을 해소시킬 수 있는 대형 공격수 영입(루니-비야), 기복이 심한 마르셀루를 대체할 왼쪽 풀백 영입(에브라), 호날두의 의존도를 줄이면서 카카의 대안이 되는것을 비롯 레알의 공격 구심점 역할을 맡을 공격 옵션의 영입(리베리-제라드), 수비 조직력 약점 보완을 위해 포백에 안정감을 불어넣을 수비수 영입(마이콘-비디치)이 바로 그것입니다. 취약 포지션을 대체할 선수를 영입하여 적절한 효과를 거두면 카카-벤제마의 입지를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알이 지난해 여름에 이어 올해 여름에도 분노의 영입을 벌인다고 해서 전력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레알은 마지막으로 유럽을 제패했던 2001/02시즌 이후 지금까지 무수한 슈퍼 스타들을 영입했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결실을 거두지 못했고 최근 6시즌 연속 16강에서 탈락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레알로 이적했던 카카-벤제마는 폭발력 부족으로 레알의 공격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마이클 오언, 안토니오 카사노, 클라스 얀 훈텔라르 같은 슈퍼 스타들도 레알에서 정착에 실패했는데 선수 영입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레알이 직면한 문제는 조직력입니다. 그동안 출중한 클래스와 해결사 기질이 뛰어난 선수들을 여럿 영입했으나 서로 골을 넣기 위해 개인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팀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선수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레알의 공격은 선수 개인의 활약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바르셀로나-리옹에게 발목이 잡힌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수비는 올 시즌 아르벨로아-알비올-가라이(임대 복귀)를 데려오면서 지난 시즌보다 조직력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얻습니다. 하지만 페페가 오른쪽 무릎 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으면서 수비의 짜임새가 떨어졌고, 페르난도 이에로 이후로 수비진을 꾸준히 리드할 수 있는 선수가 없는 한계를 여전히 해결짓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잦은 감독 교체 입니다. 레알은 1989년 존 토샥 부터 지금의 마누엘 페예그리니에 이르기까지 21년 동안 24번의 감독 교체가 있었습니다. 2008/09시즌 초반까지 베른트 슈스터 전 감독이 레알 사령탑을 맡았고 그의 경질 공백을 후안 데 라모스 전 감독이 대신했습니다. 올 시즌에는 페예그리니 감독이 레알을 지휘하고 있으나 지난해 11월 코파 델 레이 32강 탈락 이후부터 경질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 이후에는 조세 무리뉴 인터 밀란 감독이 레알 영입설로 주목받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2006/07시즌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이끈 파비오 카펠로 전 감독은 수비축구를 한다는 이유로 우승하고도 경질 신세에 내몰렸습니다.

결과적으로 레알의 승리는 선수의 몫, 패배는 감독이 책임지는 상황입니다. 감독은 팀의 우승을 위해 거의 매 경기를 이겨야 하는 현실이며 어떠한 시행착오가 없어야 하는것이 레알 사령탑의 숙명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감독도 레알과 같은 환경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맨유에서 24년 동안 장기집권하며 세계 최고의 명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맨유 사령탑 초기 시절에 겪었던 혹독한 시행착오를 이겨냈기 때문이며 어느 팀이든 우승 과정에 있어 고비가 있습니다. 하지만 선수를 우선시하는 레알이라는 환경에서는 감독의 전술 구현이 힘들어지며 조직력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그래서 올 시즌 레알의 문제점 및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의 원인을 페예그리니 감독쪽으로 몰아 세우기에는 적절치 못합니다. 페예그리니 감독은 전술 구성능력이 뛰어난 '지장' 성향이지만 개성강한 선수들을 장악하는 '용장' 체질이 아닙니다. 레알에게 필요한 것은 선수들을 통제하고 카리스마로 강하게 몰아 세우는 용장이지만, 그 용장도 레알이 원하는 공격축구 컨셉에 적합하지 않거나 중요한 경기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면 경질되는 것이 레알의 환경이자 한계 입니다. 결국, 레알의 근본적인 문제는 '갈락티코'를 모토로 슈퍼 스타 영입에 목을 메는 구단의 마인드에 있습니다.

페예그리니 감독이 다음 시즌에 레알 사령탑을 맡을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레알이 감독 경질 잔혹사에서 벗어나려면 페예그리니 감독 경질은 우승을 향한 능사가 아닙니다. 올 시즌 유럽 제패에 실패한 레알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통산 10회 우승을 달성하려면 분노의 영입보다는 페예그리니 감독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분별한 선수 영입보다는 페예그리니 감독이 원하는 선수 영입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며, 페예그리니 감독의 주도하에 체질 개선을 단행해야 합니다. 지난 시즌까지 비야 레알의 돌풍을 일으켰던 주인공이 페예그리니 감독임을 상기하면 그의 감독 자질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레알이 올 시즌 종료 후 페예그리니 감독을 경질하고 분노의 영입을 단행하면 지금의 악순환이 또 벌어질 공산이 큽니다. 근본적인 문제점 해결없이 선수 영입에 목을 메면 지금의 문제점이 다음 시즌에도 반복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호날두-카카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도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 징크스 앞에 무릎을 꿇은 현실을 레알이 받아들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