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는 역시 3월의 사나이, 그리고 풀럼의 킬러 다웠습니다. 3월들어 최상의 공격력을 발휘한데다 풀럼전에서 시즌 첫 어시스트를 기록해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박지성은 14일 오후 1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0라운드 풀럼전에서 후반 27분 안토니오 발렌시아와 교체 투입 됐습니다. 맨유의 첫 교체 선수로 출전했던 박지성은 루이스 나니와 함께 좌우 측면을 스위칭하며 상대 미드필더들을 흔들었습니다. 부지런한 움직임과 넓은 활동폭의 강점을 맘껏 발휘했던 박지성은 슈퍼 조커로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소화했습니다.
그러더니 빠른 타이밍의 크로스와 정확한 짧은 패스를 연결하며 팀 공격의 활력소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후반 44분,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헤딩골을 엮으며 어시스트를 기록해 팀의 3-0 승리와 프리미어리그 선두 탈환을 주도했습니다. 박지성을 교체 투입해 공격력을 끌어올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교체 작전이 적중했고, 퍼거슨 감독의 신뢰속에 그라운드에서 산소탱크 역할을 했던 박지성의 활약은 맨유 공격의 자극제가 됐습니다.
사실, 박지성 투입 이전까지의 맨유는 1-0으로 앞섰음에도 공격력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풀럼이 경기 초반부터 공격수부터 전방 압박을 가한것을 비롯 허리라인이 안정된 수비 밸런스를 바탕으로 맨유 미드필더들의 침투 공간 길목을 막으면서 맨유의 공격력이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캐릭-플래처로 짜인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전반 10분까지 띄웠던 전진패스가 세 번씩이나 상대 미드필더의 몸에 걸렸을 만큼 상대의 압박이 두꺼웠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전진패스를 띄울 공간이 확보되지 못해 후방에서 전방으로 롱볼을 날리는 빈도가 평소보다 많았습니다.
풀럼은 이날 맨유의 미드필더 습성을 철저하게 연구한 듯한 느낌 이었습니다. 발렌시아에게 두 명의 마크맨이 달라 붙고, 캐릭-플래처의 전진패스 및 문전 침투 공간 길목을 차단하고, 나니는 측면 깊숙한곳으로 움직임을 유도하여 맨유의 페너트레이션을 붕괴하기 위한 압박 작업을 벌였습니다. 후반 시작 후 30초만에 루니에게 기습 선제골을 내주는 허점이 있었지만, 후반 27분 박지성 투입 이전까지는 맨유 미드필더 봉쇄에 성공했을 만큼 풀럼의 압박 작전은 견고하고 강했습니다.
그래서 맨유의 공격은 풀럼의 압박을 극복하지 못해 골을 넣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반전에 15개의 슈팅을 시도했으나 유효 슈팅이 3개에 그친것을 비롯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는 것은 결정력 문제도 있지만, 상대의 허를 찌르며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특히 단순한 공격 패턴이 문제 였습니다. 나니-발렌시아가 측면에서 공격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이 최전방에서 골을 노리는 획일적인 형태의 공격 패턴을 반복했던것이 상대의 압박 타이밍을 벌어주는 문제점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발렌시아는 이날 경기에서 상대의 공격에 철저하게 막혔습니다. 공격 패턴이 단조롭고 왼발을 쓰지 못하는 기존의 약점이 풀럼 미드필더들에게 읽히고 말았기 때문이죠. 특히 시즌 초반과 중반에 활발했던 과감한 문전 침투가 최근들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맨유를 상대하는 팀들이 발렌시아의 습성을 읽었음을 의미합니다. 왼발 구사 능력이 약하다보니 왼쪽 윙어와의 스위칭을 할 수 없는 한계는 맨유의 공격 루트가 다채롭게 변화하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발렌시아가 풀럼의 압박에 막히면서 제한적인 공격 패턴을 나타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맨유의 첫번째 교체 대상으로 발렌시아를 지목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발렌시아의 경기력이 맨유의 공격에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른쪽 윙어로 박지성을 투입한 것입니다. 그런 박지성은 감독의 의중을 이해한 듯, 나니와 함께 좌우 측면을 번갈아가며 상대 미드필더들의 압박에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상대 미드필더 및 풀백의 뒷공간을 파고드는 과감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며 상대를 흔들었고, 공간 확보에 성공하면 그 즉시 패스 및 크로스를 띄우며 맨유에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결국, 맨유의 박지성 교체 투입은 성공 했습니다. 풀럼의 압박에 쩔쩔메던 맨유는 박지성의 공간 창출을 앞세워 베르바토프의 폼까지 살아나면서 상대 문전에서 유기적인 공격 패턴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38분과 44분에 루니, 베르바토프가 골을 넣으며 3-0 승리를 확정지었죠. 무엇보다 박지성을 후반 27분에 교체 투입한 퍼거슨 감독의 교체 타이밍이 적절했습니다. 발렌시아를 좀 더 이른시간에 뺄 수 있었겠지만, 압박 작전을 펼치는 상대의 집중력이 떨어질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죠. 그래서 후반 25분이 넘어서는 그 시점에 박지성을 투입했고, 박지성은 짧은 시간 동안 왕성한 움직임을 발휘하며 상대의 기세를 무너뜨렸습니다.
공간 창출 능력이 뛰어난 박지성의 맹활약도 대단했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한 가지를 더 칭찬하고 싶습니다. 풀럼전을 비롯 최근들어 볼 터치 횟수가 늘어난 것은, 동료 선수들에게 공을 받기 위한 움직임이 능동적이고 활발해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동료 선수들에게 공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 여럿 속출했지만(일부 팬들이 '박지성은 왕따가 된게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로) 최근의 맨유 공격 패턴에서는 박지성을 통해 거치는 패스가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동료 선수에게 공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늘었음을 의미하며, 그런 박지성은 공을 잡은 상태에서 마크맨의 뒷 공간을 노리는 돌파를 노리며 절호의 공격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박지성의 풀럼전 선발 제외가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맨유가 점유율에서 역습 축구로 공격 전술을 바꾼 이후부터 박지성의 폼이 오른 것을 비롯 지난 11일 AC밀란전에서 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박지성의 풀럼전 선발이 유력했습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풀럼전에서 박지성이 지치지 않도록 휴식 차원의 배려를 했습니다. 박지성은 자신의 전술 역량을 최대화 시키는 존재로써, 잦은 경기 출전으로 무리를 시키기보다는 특정 경기에 고정적으로 출전시키거나 절호의 타이밍에 교체 투입하여 선수의 역량을 끌어올려 팀 승리를 이끌기위한 기폭제 역할을 맡겼습니다. 이것은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맨유의 승리를 결정지을 키 포인트로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현대 축구에서는 개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선호를 받기 쉽지만 우승을 목표로 하는 감독의 입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걸출한 기량을 자랑하는 상대팀의 핵심 전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팀 플레이어도 감독의 선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공간을 활용하는 움직임과 동료 선수와의 유기적인 패스 연결, 이타적인 공격력, 적극적인 압박, 세밀한 커팅 그리고 강철같은 체력을 자랑하며 90분 동안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는 선수입니다. 개인 플레이보다는 팀을 위한 희생에 강한 면모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팀 플레이어로 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박지성은 맨유의 스쿼드 플레이어이며 얼마든지 저평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맨유의 경기를 꾸준하게 지켜보셨던 분들이라면 박지성이 왜 맨유에 필요한 선수인지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번 풀럼전에서 그랬던 것 처럼, 박지성은 선발과 조커를 가리지 않고 팀 공격에 역동성과 활력을 키울 수 있는 아우라가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의 공격력이 약하다고 지적하지만, 종적인 움직임과 종패스에 강한것을 비롯 전술 이해능력이 뛰어난 박지성의 공격력은 개성이 강합니다. 발렌시아의 단조로운 공격력보다는 박지성의 예측불가능한 공격력이 더 강한것이 풀럼전에서 그대로 증명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