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핀란드전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과시하며 승리의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한국은 18일 오후 11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스페인 말라가 에스타디오 시우다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핀란드전에서 2-0으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39분 오범석이 핀란드 문전으로 과감하게 침투하는 과정에서 상대 수비진을 허물고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습니다. 후반 16분에는 염기훈의 오른쪽 공간 프리킥을 김정우가 중앙쪽으로 헤딩 패스를 떨구었고 이것을 이정수가 골대 안으로 공을 밀어넣으며 한국의 승리를 공헌했습니다.
핀란드를 제압한 한국은 지난 10일 남아공에서 열린 잠비아전과 대조된 경기를 펼쳤습니다. 잠비아전에서는 경기 초반부터 졸전을 거듭한 끝에 2-4로 패했지만 이번 핀란드전은 공수 양면에 걸쳐 우월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가상의 그리스'로 낙점지은 핀란드를 꺾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값진 의미를 둘 수 있으며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가능성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핀란드를 꺾기 위한 대표팀의 전략이 승리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김정우-신형민, 핀란드전 승리의 일등공신
우선, 핀란드전은 허정무 감독의 작전이 제대로 적중했습니다. 잠비아전에서 실패했던 김정우-김재성 조합을 버리고 김정우-신형민 조합을 중원에 세운 것, 전반 36분 '부진한' 김보경을 빼고 '지능적인' 김두현을 교체 투입 한 것, 그 이후 4-2-3-1을 가동하여 공격수로서 부족했던 염기훈을 측면에 놓고 이동국을 원톱에 포진시켜 공격 마무리를 강화시킨 허정무 감독의 선택은 핀란드전 승리의 초석을 다지고 무난한 경기 내용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습니다.
허정무 감독의 작전이 적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원에 있었습니다. 지난 잠비아전에서 중원의 부진으로 4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중원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중원을 맡았던 김정우-김재성은 지나치게 공의 시선만 쫓으면서 상대 공격 옵션의 침투 공간을 허용하는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잠비아 공격 옵션들은 한국 미드필더 뒷 공간을 노리는 패스 전개로 전반 14분 안에 두 골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김정우-김재성의 압박 실패는 잠비아전 패배의 원인이 됐고 핀란드전에서 중원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정우-신형민 조합의 압박 수비는 핀란드를 제압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습니다. 물론 압박 수비는 이전에도 대표팀 경기에서 존재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원동력으로 작용했지만 핀란드전에서 만큼은 어느 때보다 견고하고 강했습니다. 그 흐름을 김정우-신형민이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에 한국이 경기 내내 활발한 공격을 펼치며 상대팀 골문을 두드렸고 포백의 수비 부담을 덜어내어 무실점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플러스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김정우와 신형민은 살림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정우는 그동안 대표팀에서 기성용과 호흡을 맞추면서 살림꾼 역할을 도맡았고 신형민은 소속팀 포항의 살림꾼으로써 지난해 팀의 아시아 제패를 견인했습니다. 그래서 두 선수 모두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비를 펼칠 수 있는 특징이 있었고 그것을 십분 활용하며 '핀란드 에이스' 리트마넨이 중심이 된 핀란드의 중앙 공격을 압박으로 밀어붙였습니다. 하프라인 부근에서 핀란드 선수가 공을 잡아 공격을 전개하려는 시점이 되면 상대방의 침투 공간을 좁혀 커팅을 시도했고 그 동작이 세밀했습니다.
두 선수가 중원에서의 압박 상황에서 공간이 겹치면 옆쪽에서 빈 공간이 벌어지는 문제점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압박 축구의 전형적 단점) 그래서 한국은 김정우-신형민의 공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김보경-박주호-노병준-오범석 같은 측면 자원이 중원쪽으로 이동하여 빈 공간을 커버하는 움직임을 취했습니다. 김정우-신형민이 뚫리더라도 또 다른 수비 진영이 구축되면서 압박을 시도하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은 수비 상황에서 공격수 2명을 제외한 8명의 선수가 하프라인 밑으로 내려와 압박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러한 수적 우위는 핀란드의 공격 마무리가 떨어지면서 '요한손-부오리넨' 투톱이 한국 진영에 고립되는 효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한국의 수비 과정에서는 핀란드에게 공중볼 처리 및 몸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이 여러차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수비 불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전에서도 반복 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표팀의 수비 구성원이 유럽 선수들처럼 높은 신장과 탄탄한 피지컬 같은 신체적인 장점이 없기 때문입니다.(이영표가 대표팀에 합류하더라도) 선 굵은 축구를 하는 그리스를 상대로 공중볼과 몸싸움에서 정면 대결을 펼친다면 그 경기는 한국이 완패할게 분명합니다. 그것도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미드필더를 통한 압박 수비를 통해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키우는 유연한 경기 운영이 필요합니다. 상대팀이 높이와 피지컬의 우위를 앞세워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내주지 않기 위해 공간을 내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수비수보다는 미드필더쪽에 기대를 걸어야 합니다. 수비수는 상대팀의 공격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나 1차적인 역할은 수비수 앞선에 포진한 미드필더가 도맡고 있는 만큼, 미드필더들이 서로 하나 된 호흡으로 거침없이 압박을 가하여 상대팀의 공격 물 줄기를 끊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앙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서로 좁은 간격을 유지하며 하나된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팀의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앵커맨의 전방 침투를 봉쇄하고 나머지 옵션들이 중앙 미드필더들의 옆과 뒷 공간을 커버하며 경기를 풀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김정우-신형민 조합은 이러한 전술적인 플레이에 충실하며 상대 공격 옵션을 타이트하게 좁혔고 커팅에 성공하여 윙어들에게 빌드업 기회를 밀어줬습니다. 핀란드전을 통해 압박에 충실하며 좋은 경기를 거둔 것은 그리스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감각과 노하우를 길렀습니다.
여기에 김정우-신형민은 전술 수행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경기를 유리하게 운용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이 중원을 중심으로 경기 흐름을 유리하게 가져가고 상대의 공격 의지를 뿌리치는 결과로 직결됐습니다. 또한 신형민이 중원 공간을 선점한 상황에서 김정우가 최전방과 왼쪽 측면으로 이동해 공격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한국이 압박을 통해 경기 흐름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의미하는 장면 이었습니다.
현대 축구에서는 중원을 장악하는 팀이 경기 내용에서 우세를 점하고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전력이 약한 팀이더라도 중원에서 승부를 걸지 않으면 강팀을 상대로 이변을 일으키기 어렵습니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4강 미국-스페인전에서 미국이 '천하무적' 스페인을 꺾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중원 장악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핀란드전 승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김정우-신형민 조합의 능수능란한 압박이 있었기에 중원을 장악했고 승리의 토대가 됐습니다. 이러한 경기력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빛을 발하면 틀림 없이 좋은 결과를 거둘 것이 분명합니다. 핀란드전 승리 과정은 중원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