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한국 축구 선수 중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수는 박지성입니다. 박지성은 잉글랜드 명문 클럽 맨유에서 다섯 시즌 동안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지구촌에 널리 떨쳤습니다. 그래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을 비롯한 여러 유럽 클럽들이 박지성의 성공을 계기로 수많은 한국인 선수들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여러 명의 선수들이 유럽땅을 밟았습니다. PSV 에인트호벤을 거쳐 맨유에서 성공을 거둔 박지성의 행보는 유럽 성공을 꿈꾸는 한국인 선수들의 롤 모델이자 이상향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에인트호벤에서 중심을 잡기 이전에 한 명의 한국인 선수가 유럽에서 두각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바로 '스나이퍼' 설기현(31, 포항)입니다. 설기현은 지난 2000년 7월 벨기에 주펄러리그에 갓 승격했던 로얄 앤트워프에 입단하여 지금까지 10년 동안 유럽 무대에서 롱런했습니다. 재능있는 한국인 선수들이 유럽에서의 적응 실패로 고국에 돌아왔던 전례가 많았음을 떠올리면 설기현의 유럽 무대 10년의 활약상은 의미가 큽니다.
설기현이 벨기에 무대를 밟았던 시절에 유럽 무대에서 빛을 발했던 한국인 선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본인 미드필더 나카타 히데토시(은퇴)가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발휘했던 천재성에 한국 팬들이 부러워했던 시기였죠.(당시 한국에 나카타 팬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축구는 유럽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치는 한국인 선수의 필요성을 느끼며 유럽 공포증을 이기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했고 실행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설기현 이었습니다. 2000년 대한축구협회(KFA)로 부터 유망주 해외 진출 프로젝트 1호로 선정되어 벨기에 주펄러리그에 진출했습니다.
유럽에서 웃고 있는 선수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까지, 그 첫 발이었던 설기현의 벨기에리그 활약상은 당시 국내팬들의 시선과 초점을 모았습니다. 데뷔 시즌에 12골을 터뜨리고 이듬해 벨기에리그 명문 안더레흐트에 이적하면서 차범근 이후 한국 공격수가 유럽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줬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축구 인재들이 유럽에서 위상을 떨치기 시작했던 요인도 설기현의 활약을 통해 긍정적인 희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유럽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는 박지성이었지만, 진정한 개척자는 다름 아닌 설기현 이었습니다.
하지만 설기현의 데뷔 시즌이 무조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효리사랑은 2001년 어느 모 일간지에서 허정무 감독과 설기현이 대담을 나누던 내용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설기현이 허정무 감독에게 "앤트워프에 진출할 초기에 동료 선수들과 훈련했는데 나에게 공이 오지 않아 힘들었다"라며 개인적인 고충을 털어 놓았고 허정무 감독도 "나도 에인트호벤에 있었던 초기에 같은 경험을 했다"고 답변했던 내용 말입니다. 동양인 선수가 유럽이라는 낯선 땅에서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 였습니다. 여기에 설기현은 영어까지 통하지 않았고 운전면허증까지 없어(2001년 여름에 취득) 유럽에서 힘든 시기를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설기현은 "유럽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신념으로 무장하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8세 때 아버지를 탄광 사고로 여의면서 축구를 통해 삶의 희망을 품었고 그 마음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신이 가진 축구 재능을 맘껏 쏟으며 불붙은 득점 감각을 보여줬고 이듬해 시즌 안더레흐트에 이적하며 벨기에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았습니다. 그러더니 2001년 8월 9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 3라운드 할름슈타트(스웨덴)전에서 한국인 선수 최초로 경기 출전 및 골을 기록했습니다. 9월 12일에는 로코모티프 모스크바(러시아)전에 출전해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를 밟았습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는 4강 전사로 활약한 자신감에 힘입어 벨기에 무대를 평정했습니다. 2002/03시즌 개막 후 4경기 연속골(6골)을 넣으며 리그 득점 선두에 오를 만큼 공격력이 부쩍 좋아졌습니다. 비록 윙 포워드라는 한계 특성상 연속골 이후로 다득점에 실패했지만, 정확한 크로스와 측면에서의 유연한 몸 놀림을 앞세워 측면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날이 갈수록 경기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당시의 설기현 경기는 어느 국내 방송사에서 꾸준히 생중계 되었고 그 시점이 박지성-이영표의 에인트호벤 진출 이전 이었던 만큼 축구팬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참고로 2003/04시즌에는 당시 신예였던 빈센트 콤파니-맨시티-와 한솥밥을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설기현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벨기에 리그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칠때 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 꿈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04년 여름 챔피언십리그(잉글랜드 2부리그) 울버햄튼에 이적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기 위한 초석을 다졌습니다. 울버햄튼에서 두 시즌 동안 69경기에 출전해 8골 기록했는데, 측면이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으면서 경기 조율에 주력했기 때문에 골 숫자가 줄었습니다. 당시에는 글렌 호들 감독의 두꺼운 신임을 받으며 울버햄튼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이끌 선수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승승장구를 거듭할 것 같았던 설기현에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챔피언십리그 특유의 바쁜 일정에 몸이 지쳐 잦은 잔부상을 당했고 피부병까지 도졌습니다. 여기에 호들 감독과의 불화로 벤치 멤버로 전락해 경기력이 떨어졌고 그 여파로 대표팀에서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팬들의 기대를 져버렸습니다. 특히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A매치 세네갈전에서 일명 '역주행 사건'으로 집중력을 잃자 팬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 여파는 지금도 존재하면서 설기현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팬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 설기현에게 행운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승격팀인 레딩의 스티븐 코펠 감독이 자신을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게 됐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첫 경기에서의 멋진 활약으로 주간 베스트 11에 오르더니 팀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박지성-이영표와 함께 프리미어리거로서의 성공적인 가도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2007년 초 허리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코펠 감독과 불화설까지 제기 되면서 팀에서의 입지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설기현은 자신이 꾸준히 붙박이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원했고 2007년 여름 풀럼에 둥지를 틉니다.
만약 설기현이 레딩에 계속 잔류하며 팀의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공헌했다면 축구 인생이 지금과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풀럼으로의 이적 과정은 자신의 의견이 고려되지 않은 트레이드 형태였습니다. 풀럼에는 사이먼 데이비스라는 그 당시 꾸준한 폼을 보여줬던 오른쪽 윙어가 있었기 때문에 주전 보장을 기대할 수 없었죠. 풀럼의 전술도 자신의 스타일과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풀럼은 좌우 윙어들의 활발한 움직임과 정확한 패스워크를 앞세워 공격을 펼치는 팀이지만 설기현은 스탠딩 윙어였으며 측면에서 최전방으로 한방에 찔러주는 크로스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동료 선수들과의 호흡에서 문제점을 드러냈고 뚜렷한 맹활약을 펼친 경기가 없었습니다.
결국 설기현은 들쑥날쑥한 경기 출전으로 폼이 떨어졌고 시즌 중반에 부임한 로이 휴지슨 감독과 불화에 빠져 기나긴 결장을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1월 사우디 알 힐랄로 임대되어 꾸준한 경기 출전으로 폼을 되찾았으나 지난해 여름 복귀 이후 다시 자리를 잡는데 실패해 결국 유럽을 떠나게 됐습니다. 유럽에서 활약한 10년의 커리어를 미루어보면 또 다른 유럽팀에서 활약할 역량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출전을 위해 꾸준한 경기 출전이 필요했고 포항 입단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내렸습니다.
일부 팬들은 설기현이 풀럼에서 실패한 것에 대해 폄하합니다. 레딩의 설기현이면 몰라도 풀럼의 설기현은 완벽하게 실패한 선수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설기현이 풀럼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그동안 유럽에서 쌓아올렸던 커리어가 퇴색되는 것은 아닙니다. 설기현이 벨기에 시절부터 두각을 떨칠 수 있었기에 유럽 진출을 원하는 축구 인재들이 성공을 향해 꿈을 키울 수 있었고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설기현은 10년 전 대한축구협회의 유망주 해외 진출 프로젝트 1호에 선정되었던 선수입니다. 10년 전에는 유럽에서 두각을 떨친 한국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선수들이 여럿 등장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탄생할 예정입니다. 그런 설기현의 족적이 풀럼에서의 실패와 박지성의 존재감에 가려져 팬들에게 과소평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 노고에 박수를 쳐야 할 때가 왔습니다. 유럽에서 외롭고 힘겨운 세월을 보냈지만 도전 성공을 위해 노력했던 그의 축구 여정과 10년 동안의 유럽리거 경력은 유럽 성공을 꿈꾸는 한국 축구 인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