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독보적 이었습니다. 아스날과 상대한 볼튼 선수들 중에서 유독 이청용의 활약이 눈에 띄었습니다. 동료 선수들의 기대 이하 활약과 온갖 실수 속에서도 팀의 공격력 향상을 위해 부지런히 골 기회를 창출했던 이청용의 활약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청용은 18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리복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날과의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2라운드에서 풀타임 출전하여 멋진 기교를 뽐냈습니다. 오른쪽 측면에서 날카로운 크로스와 여러 형태의 정확하고 창의적인 패스, 부지런한 움직임을 앞세워 팀의 공격 물줄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상대팀의 왼쪽 공간을 적극 공략했습니다. 비록 팀은 0-2로 패했지만 자신의 도우미 본능을 동료 선수들이 상대 골문에서 충분히 활용했다면 골을 넣었거나 경기에서 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청용, 아스날전에서 유일하게 맹활약 펼친 볼튼 선수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이청용은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Impressed down right(오른쪽 측면에서 영향력 있었다)"는 평가와 함께 볼튼 선수 중에서 가장 높은 평점 7점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6점을 받은 볼튼 선수가 4명(스테인손, 코헨, 데이비스, 클라스니치) 있었고 6점이 평점의 기본 점수임을 상기하면, 아스날전에서 유일하게 맹활약을 펼친 선수는 이청용이었던 셈입니다. '볼튼vs아스날'이 아닌 '이청용vs아스날'의 대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동료 선수들보다 유난히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청용은 볼튼의 미드필더와 공격수 중에서 가장 많은 패스를 시도했습니다. 36개의 패스 중에 26개를 동료 선수에게 정확히 연결했는데, 2번째로 패스 시도가 많은 타미르 코헨(28개 시도 21개 시도)보다 적극적인 공격 전개를 나타냈습니다. 특히 디아비-트라오레 사이의 빈 공간에서 패스 시도가 많았고 대부분 정확하게 연결했습니다. 문전 깊숙한 곳에서 긴 패스가 동료 선수에게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았지만, 문전에서 골을 넣으려는 공격수들의 위치선정이 전반적으로 매끄럽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따름입니다.
그런 이청용이 많은 패스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볼튼 공격 패턴이 중앙과 오른쪽에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왼쪽 윙어인 메튜 테일러의 활동 분포도가 44-53-3(%, 왼쪽-중앙-오른쪽)를 기록해 왼쪽보다 중앙 공격에 힘을 실었고 이청용의 활동 분포도가 3-14-83(%)를 나타내 오른쪽에 비중을 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스날의 약점을 노리기 위해서입니다. 아스날이 송 빌롱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차출로 중원 수비가 허약해졌고 왼쪽 풀백인 아르망 트라오레가 수비 뒷 공간을 자주 허용하는 문제점을 나타내면서 볼튼이 이를 공략한 것이죠.
그래서 이청용은 경기 시작과 함께 오른쪽 문전을 재빠르게 침투하여 트라오레의 뒷 공간을 파고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전반 1분에만 두 번이나 속출하고 동료 선수에게 패스가 정확하게 연결되면서 볼튼이 초반 공격 기세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트라오레는 경기 초반부터 공간 커버에 약점을 나타냈고 그의 약점을 노린 이청용은 상대의 기세를 단번에 제압하며 90분 동안 여유있게 경기를 운영했습니다.
이청용은 그 이후에도 트라오레를 요리하며 볼튼의 공격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전반 11분 오른쪽 측면에서 트라오레와 경합하는 과정에서 옆에 있던 그레타 스테인손에게 정확한 힐 패스를 연결하는 재치를 뽐냈습니다. 2분 뒤에는 같은 지점에서 트라오레와 매치업을 벌이면서 스테인손에게 헤딩 패스를 연결하는 빼어난 볼 키핑력과 넓은 시야를 앞세운 공격 센스를 발휘하며 공격을 전개했습니다. 이러한 이청용의 군계일학에 트라오레의 경기 운영은 점점 위축되었고, 볼튼의 공격 패턴이 이청용쪽에 무게감이 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후반전에도 이어졌습니다. 이청용은 트라오레의 좁은 공간 커버 속에 오른쪽 측면에서 여러차례 크로스와 전진 패스를 번갈아가며 아스날 문전에서 골 기회를 노리는 동료 선수들에게 볼 배급을 했습니다. 후반 2분과 3분, 8분에는 오른쪽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를 날리며 동료 선수의 헤딩골을 유도했고 특히 8분 상황에서는 테일러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아 아스날 수비진을 뚫은 뒤 크로스를 띄우는 과감한 움직임을 발휘했습니다. 후속 상황에서 골이 연결되지 못했지만, 문전에서의 골 기회를 확실하게 책임질 스코어러가 있었다면 이청용은 어시스트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특히 테일러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두 번씩이나 골을 넣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물론 이청용이 골을 넣지 못한 것과 후반 중반에 폼이 떨어진 것은 아쉽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청용은 골을 넣기 보다는 공격 기회를 만드는 역할에 치중하여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했고, 정작 문제는 자신의 골 기회를 무참하게 날린 동료 선수들 입니다. 후반 중반에는 아스날이 수비형 미드필더인 이스트먼드를 빼고 '메리다-디아비'로 짜인 더블 볼란치를 운용하여 중원 안정을 꾀하자 볼튼 공격이 소강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이청용입니다. 후반 39분 트라오레-클리시 사이를 뚫는 공간 돌파를 비롯 오른쪽에서 독보적인 공격력을 뽐내며 경기 종료까지 동료 선수의 골을 돕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청용이 빅4 클럽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무르익은 공격 재능을 맘껏 발휘한 것이 이번 아스날전이 처음 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17일 맨유전과 10월 31일 첼시전에서 평소보다 소극적인 공격을 펼쳤지만, 이번 아스날전에서는 트라오레의 약점을 간파한 것을 비롯 팀 공격을 주도하는 적극성을 띄우며 볼튼 에이스의 저력을 뽐냈습니다. 이것은 이청용의 경기력이 얼마만큼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입니다. 이청용이 지난해 가을 팀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면 이제는 강팀과의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는 경쟁력과 자신감을 키웠습니다.
무엇보다 이청용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밝게 비추게 했습니다. 강팀을 상대로 경기 초반부터 상대 수비 조직을 무너뜨리는 전방 침투와 정확한 패싱력으로 팀 공격 분위기를 띄운 활약상 자체가 놀라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이청용이 아스날전에서 팀의 승리를 위해 맹활약을 펼치겠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경기 초반부터 의욕적인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아스날전에서 맹활약을 펼쳤으니 앞으로의 경기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청용은 오는 21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아스날과의 순연 경기이자 리턴 매치에 선발 출전할 예정입니다. 아스날 원정에서는 트라오레가 아닌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왼쪽 풀백 클리시와 경기 시작부터 매치업을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청용이 그동안 클리시와 맞붙기를 원했음을 상기하면, 아스날 원정에서도 물 오른 공격력을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과연 이청용이 아스날 원정에서 볼튼 승리의 주역으로 거듭날지 그 날의 활약상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