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맨유의 베르바토프 영입은 실패작이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는 지난 2008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3075만 파운드(약 615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해 맨유에 입성했습니다. 3075만 파운드의 금액은 맨유 역사상 최다 이적료로서 베르바토프에 대한 기대가 컸음을 의미합니다.

당초 맨유가 베르바토프 영입을 위해 토트넘에 제시한 이적료는 2000만 파운드(약 400억원)였습니다. 하지만 토트넘과의 마찰로 영입에 난항을 겪으면서 당초에 제시했던 이적료가 절반 이상 불어났고 프레이져 캠벨(현 선더랜드)을 임대 보내는 무리수를 둔 끝에 베르바토프 영입에 성공했습니다. 베르바토프의 영입은 맨유의 숙원이었던 타겟맨 부재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잉글랜드와 유럽 챔피언을 지키기 위한 발판으로 작용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타겟맨입니다. 190cm의 장신 공격수로서 공중볼 처리에 능한데다 레버쿠젠-토트넘의 타겟맨으로서 최전방에서 수많은 골을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베르바토프는 맨유의 기대와는 달리 타겟맨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지난 시즌 초반 타겟맨으로 줄곧 기용되었으나 최전방 골문 깊숙한 곳에서 상대 수비진의 압박에 꽁꽁 막히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맨유의 공격 마무리가 최전방에서 뚝뚝 끊기는 문제점이 벌어져 팀의 공격 밸런스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베르바토프는 미드필더 공간으로 자주 내려와 패스를 연결하는 성향으로 변신했습니다. 지난 시즌 후반에 4선 포메이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았던 것 처럼 타겟맨으로서 매리트가 떨어진 모양새를 나타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팀 공격을 조율하며 양질의 패스를 연결하는 베르바토프의 경기력은 '타겟맨 베르바토프'와 사뭇 달랐습니다. 그러더니 올 시즌에는 호날두-테베즈가 팀을 떠나면서 4-4-2 포메이션에서 웨인 루니와의 투톱 조합이 완성 되었습니다. 루니의 득점력을 보조하기 위한 쉐도우로 줄곧 모습을 내민 것이죠.

그러나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은 환상적인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루니가 타겟맨에 고정되고 베르바토프가 프리롤 형태로 측면과 중앙을 번갈아가며 공격을 전개하는 시스템이었으나 두 선수 사이의 패스 전개 부족으로 따로 노는 형태의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베르바토프가 루니에게 수많은 패스를 공급하기보다는 공간을 이리저리 휘젓고 동료 선수들에게 공격을 연결하며 점유율 향상에 주력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루니의 활동 부담이 커지면서 베르바토프와 콤비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기회 및 시간이 줄어듭니다.

베르바토프의 쉐도우 기용은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상대 수비진의 거센 압박을 받으면 힘 없이 무너지는 문제점을 초래했습니다. 상대 수비수를 제칠 수 있는 기교가 출중한 선수임엔 분명하나 압박을 받는 그 시점부터는 공을 잡은 상황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이 자주 노출됐고 맨유의 공격 템포가 느려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맨유가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면서 속공에서 지공으로, 공격 템포를 늦추는 경기를 펼치다보니 상대 수비수들의 압박 타이밍을 벌어주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수비력이 견고한 약팀과의 경기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그 경기마다 베르바토프는 늘 부진했습니다.

또한 베르바토프는 유난히 기복이 심했습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꾸준한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자신의 공격 전개 강점을 최대화 시킬 수 있는 쉐도우로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쉐도우를 맡아 상대팀 압박에 막혀 부진하면 평소보다 패스 시도 횟수가 떨어지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루니의 최전방 고립으로 이어져 맨유의 공격 마무리가 떨어졌습니다. 상대의 압박이 견고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프리롤 형태의 움직임을 펼쳐 미드필더들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루니의 활동 부담을 높였으니, 루니와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루니에게 맞는 공격수는 베르바토프가 아닌 역동적인 성향의 카를로스 테베즈였던 것이죠.

(문제는 맨유가 테베즈 완전 이적을 위해 MSI -미디어 스포츠 인베스트번트-에 3000만 파운드의 금액을 지불해야만 했죠. 부채가 적었다면 테베즈 잔류는 성사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3000만 파운드는 베르바토프의 이적료 3075만 파운드와 비슷한 수치였습니다.)

결국 베르바토프는 타겟맨과 쉐도우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타겟맨으로서 자신의 강점을 보여주지 못했고 최전방에서의 빈번한 고립 때문에 많은 골을 넣는데 실패했습니다. 쉐도우로서는 루니의 역량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루니가 활동량이 부지런했고 많은 슈팅을 날리며 골을 넣는 성향이기 때문에 '쉐도우 베르바토프'에 대한 약점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의 폼은 늘 꾸준하지 못했고 상대 수비 압박에 우왕좌왕 거리는 모습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루니 이외에는 믿을만한 공격수가 없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올 시즌 맨유에서의 23경기에서 6골 2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얼핏보면 무난한 기록같지만 속을 들여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올 시즌 자신이 골을 넣은 상대팀은 위건(2골)-스토크 시티-선더랜드-블랙번-헐 시티 같은 수비력이 약하고 성적도 약체인 팀들입니다. 토트넘 시절 98경기에서 45골 28도움을 기록했고, 지난 시즌 맨유에서의 43경기에서 14골 9도움을 기록한 것을 떠올려 볼때 공격 포인트가 예전만큼 위력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올 시즌에는 쉐도우로 뛰었으나 도움 기록이 부족했고, 유독 약팀들과의 경기에서 골을 추가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베르바토프에게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보냅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가 맨유에서 보낸 1년 5개월의 시간이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최근 유럽 축구에서 이적 선수의 적응기가 짧아졌음을 상기하면 베르바토프의 부진을 적응 미숙으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베르바토프는 맨유의 점유율 축구 일원 중에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베르바토프는 이적 초기 팀의 빠른 템포 공격에 적응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맨유는 빠른 템포의 공격을 엄두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을 주도할 파괴적인 드리블러도 없습니다.

그런 베르바토프는 최근 맨유의 살생부 명단에 이름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자신을 비롯 나니-안데르손-토시치-비디치와 함께 맨유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요지죠. 특히 비디치를 제외한 4명의 선수는 이적료에 비해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 한 명이 바로 베르바토프 입니다. 1년 5개월 전 맨유 역사상 최다 이적료(3075만 파운드)를 기록했으나 결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맨유의 베르바토프 영입은 실패작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