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김신욱-하태균 등 타겟형 공격수들의 실력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면 억지로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데려가지 않겠다"
허정무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 10일 밤(이하 현지시간) 남아공 전지훈련에서 가진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던 내용입니다. 타겟형 공격수(이하 타겟맨)로 분류되는 이동국과 김신욱, 하태균이 감독의 기대치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지 못할 경우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 발언은 세 명의 타겟형 공격수만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허정무호에서 타겟형 공격수로 뛰었거나 대표팀에 발탁 될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타겟형 공격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허정무 감독이 타겟형 공격수를 대표팀에 발탁한 이유는 골 때문입니다. 축구는 상대팀보다 많은 골을 넣어야 승리하는 스포츠인것 처럼,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하고 16강에 진출하려면 골이 필요합니다. 타겟형 공격수가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과 공중볼 다툼을 이겨내고,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를 등지거나 또는 뒷 공간을 파고들며 골 기회를 노리는 전략은 대표팀의 다양한 공격루트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스의 두꺼운 수비 조직력과 아르헨티나 수비수들의 끈질긴 대인마크, 나이지리아의 탄탄한 압박을 이겨내려면 타겟형 공격수의 분발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타겟형 공격수들이 허정무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주영-이근호 투톱이 허정무호에서 자리를 잡았을 뿐 나머지 공격수들이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지난해 K리그 득점왕인 이동국이 허정무호 발탁 이후 A매치 5경기 무득점으로 고개를 숙인것이 타겟형 공격수의 대표적 부진 사례입니다. 물론 이동국은 대표팀에서 왼쪽 측면과 2선쪽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패스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는 쉐도우 역할을 맡았지만 본래 스타일이 정통 타겟형 공격수임을 떠올리면 대표팀에서의 역할에 어울리지 못합니다.
이동국의 부진은 전북과 대표팀 전술의 차이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북은 이동국의 골 생산을 중심으로 공격을 강화하는 '이동국의 팀' 입니다. 이동국의 골을 돕기 위해 에닝요-루이스-최태욱이 수많은 공격 기회를 창출하죠. 반면에 대표팀은 이동국의 움직임과 활동 폭을 늘려 패스 플레이를 유도하고 후방 옵션들의 문전 침투로 공격 분위기를 띄우는 팀 입니다. 이동국은 자신이 주연으로 활약하는 전북에서 많은 골을 생산했으나 정작 대표팀에서는 조연 역할을 맡아 골 기회가 적습니다.
전북과 대표팀 전술의 차이는 미드필더들의 역량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4-2-3-1을 쓰는 전북의 윙어인 에닝요-최태욱은 측면에서 양질의 크로스와 대각선 패스를 띄우며 이동국이 문전에서 다이렉트로 슛을 날릴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줍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루이스는 이동국 바로 밑선에서 타겟형 공격수의 부담을 덜어주며 팀의 공격을 조율합니다. 이동국의 골 과정을 유심히 봤던 분들이라면, 이동국이 문전 절묘한 공간에서 상대 골망을 터뜨리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동국이 후방 옵션들의 패스를 받아 골을 터뜨릴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는 능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4-4-2의 대표팀에서는 공격수에게 다이렉트 패스를 연결하기 보다는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이 서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골 기회를 노리는 성향입니다. 대표팀의 윙어인 박지성-이청용은 에닝요-최태욱처럼 크로스와 대각선 패스 위주의 공격이 아닌 짧은 패스를 앞세워 동료 선수와 공을 주고 받거나 직접 중앙으로 들어가 패스를 유도합니다. 대표팀에서는 루이스 같은 역할을 할 선수가 없습니다. 4-4-2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중앙 미드필더를 맡는 김정우-기성용은 중원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며 패스 플레이를 주도합니다. 이렇다보니, 이동국이 패스를 통해서 골을 노릴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표팀의 짧은 패스 위주 전술에서는 이동국을 비롯한 정통 타겟형 공격수들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허정무호 출범 이후 정통 타겟형 공격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맘껏 발휘하며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한 사례는 없습니다. 정조국-고기구-조재진-서동현-정성훈-신영록-이동국 같은 타겟맨이 지금까지 대표팀 스쿼드에 이름을 올렸으나 이들은 허정무 감독의 눈도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동국을 제외한 선수들은 대표팀 부진 및 부상의 이유로 대표팀에서 낙마했고, 이제는 이동국마저 이들과 같은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없지 않게 됐습니다.
특히 정조국-고기구-조재진은 동료 선수들의 공격 기회를 기다리는 타입입니다. 자신이 직접 2선으로 내려가 팀의 패스를 유도하여 골 기회를 창출하기 보다는 후방 옵션들의 기회를 받아 상대 골문을 저격하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세 명의 선수는 대표팀에서 동료 선수들과의 호흡 부조화로 어려움을 겪어 허정무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정성훈이 포스트 플레이에서 강점을 발휘하며 이근호의 골을 도왔지만 A매치 7경기에서 골이 없던 것이 단점 이었습니다. 여기에 신영록과 함께 부상까지 겹쳐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서동현은 수원에서 잦은 포지션 전환으로 인한 슬럼프로 아직까지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죠.
타겟형 공격수의 문제는 K리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조국-정윤성-김동현-서동현-양동현-신영록-하태균 같은 젊고 재능이 넘쳤던 타겟형 공격수들은 그동안 K리그에서 굴곡이 심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기본인데다 소속팀의 공격 전술에 적응하지 못해 최전방에서 고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외국인 공격수들의 출중한 기량에 밀렸던 원인도 있고요. 특히 김동현의 부진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2004~2005년 수원 시절에는 롱볼 축구를 통해 파워풀한 포스트 플레이로 많은 재미를 봤으나 성남-경남에서는 소속팀의 패스 위주 플레이에 적응하지 못해 자신의 타겟형 공격수 재능을 맘껏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현대 축구에서 타겟형 공격수도 패싱력과 활동량이 요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빅4에서 타겟형 공격수로 뛰고 있는 루니-드록바-토레스-판 페르시(최근에는 아르샤빈)는 패싱력과 기동력, 상대 수비의 뒷 공간을 노려 골 기회를 창출하는 스타일에 강합니다. 물론 타겟형 공격수는 키가 큰 선수들의 전유물인 포지션 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키가 작은 선수들도 타겟형 공격수로서 우수한 활약을 펼칩니다. 173cm의 신장으로 맨유와 맨시티에서 타겟형 공격수 역할을 맡아 많은 골과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는 카를로스 테베즈(현 맨시티)가 대표적 인물입니다. 맨유에서 타겟형 공격수를 맡는 웨인 루니와 마이클 오언의 키는 각각 178cm, 172cm입니다.
이러한 현대 축구의 흐름에 맞는 한국의 타겟형 공격수가 바로 박주영입니다. 박주영은 이동국과 조재진 같은 정통 타겟맨이 아닌 전형적인 쉐도우지만 소속팀 AS 모나코에서 타겟형 공격수 역할을 충실히 이행 중입니다. 높은 서전트 점프를 앞세운 공중볼 장악능력과 투쟁적인 몸싸움 자세로 문전에서 궂은 역할을 틈틈이 도맡았고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플레이와 정확한 패싱력, 활발한 움직임으로 네네-알론소의 문전 침투를 도왔습니다. 프랑스리그에서 유럽 및 흑인 선수들과 부딪치며 공격력 향상에 주력한 박주영의 성장은 허정무호 전력에 적지 않은 플러스 효과를 안겼습니다.
문제는 박주영이 없는 대표팀의 공격 마무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1월 덴마크-세르비아 원정에서 미드필더진의 패스 플레이를 앞세워 많은 공격 기회를 잡았음에도 공격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해 무득점으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박주영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안이 부실했음을 의미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대표팀에서 꾸준히 두각을 나타낸 타겟형 공격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동국이 타겟형 공격수로서 마지막 희망일지 모릅니다. 허정무 감독이 그동안 인터뷰에서 이동국의 플레이를 비판한 것도, 워낙 잘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칭찬보다는 채찍이 필요했던 것이죠.
결국, 이동국이 대표팀에서 살아남으려면 허정무 감독이 부여한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태극 마크를 달고 있는 순간 만큼은 전북에서의 역할을 버리고 대표팀에 맞춰가야 합니다. 비록 골을 넣지 못하더라도 동료 선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상대 진영에서 공간을 확보하고 그 과정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타적 역량이 필요합니다. 욕심을 내야 할 상황이라면 과감히 문전으로 파고들어 골을 노려도 좋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경기를 통해 다져진 경험이 있는 만큼 대표팀 역할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이 남아공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려면 타겟형 공격수의 희망인 이동국의 분발이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