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새벽 카타르-우즈베키스탄의 아시안컵 개막전이 끝난 뒤, 어느 모 케이블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한국 대표팀의 2007년 아시안컵 하이라이트를 봤습니다. 3위 입상 속에서도 무색무취했던 경기력을 일관했기 때문에 좋은 추억으로 회자되는 대회는 아닙니다. 골키퍼 이운재가 '팔렘방의 영웅'으로 회자되었지만 그는 몇개월 뒤 음주파문에 휩싸이며 국내 축구계를 벌컥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핌 베어벡 감독은 그 대회를 끝으로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서 사임합니다. 그래서 4년 전 대회 하이라이트를 바라보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의 눈에는 단 한 명의 선수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시안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주전으로 뛰었던 이천수(30, 오미야) 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기에 뛰면서 에너지가 방전되었기 때문인지 아시안컵에서의 활약이 기대만큼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베어벡호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아시안컵에서의 파괴력은 다소 강렬하지 못했죠. 공교롭게도 그 대회는 이천수가 한국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더 마지막 시기였습니다. 2008년 9월 10일 A매치 북한전에 출전했지만 그때는 대표팀에서의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죠.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대표팀에 볼 수 없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물론 이천수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1년 아시안컵에서 태극 마크를 새기며 한국 대표팀에서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 월드컵 이전에는 사우디 아라비아 알 니스로와의 임금 체불 문제로 몇 개월 동안 실전 감각을 잃으며 '허심(心)'을 잡지 못했고, 아시안컵 이전에는 일본 J리그 오미야에 입단하며 부활을 알렸지만 '조심(心)'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자신의 J리그 데뷔전을 지켜봤던 조광래 감독에게 날카로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죠. 그나마 열심히 뛰었다는 조 감독의 말을 위안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천수가 오미야에서 부진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후반기 14경기에서 2골에 그쳤지만 소속팀에서 팀 내 최고 연봉 수준의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7월 오미야의 연습생으로 시작했던 사실을 미루어보면, 적어도 경기 내용에서는 합격점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미야가 이천수 영입 이전까지 강등 위기에 시달렸으나 12위로 시즌을 마감한 것을 미루어보면, 이천수의 클래스가 팀에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국내에서는 J리그 경기들을 마음껏 즐길 환경이 아니지만(과거 축구 전문채널 시절에 비해 중계권이 없기 때문에) 이천수의 팀 내 영향력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천수는 지난해 12월 홍명보 자선경기를 앞두고 언론을 향해 대표팀 복귀를 열망했습니다. 아시안컵 예비 엔트리 합류 47인 합류에 실패했음에도 붉은색 유니폼을 다시 착용하는 것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합니다. 조광래 감독은 유병수-손흥민-지동원-김신욱 같은 젊은 공격수들을 아시안컵에 중용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위해 세대교체에 탄력을 쏟아부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K리그 사령탑 시절에도 영건 육성에 주력했기 때문에 이천수의 대표팀 복귀를 간절히 원하는 상태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2014년이면 이천수의 나이는 33세 입니다. 전반적인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젊었을적 폼을 재현할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이천수의 재능을 놓고 보면 대표팀에서 필요한 인물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 23인이 모두 정해지면서 "이천수가 대표팀에 꼭 필요하다"는 명제는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들이 조광래 감독의 선택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축구는 감독의 호불호가 뚜렷한 스포츠로서 지도자가 선호하는 선수들이 중용되기 쉽습니다. 세대교체 의지가 뚜렷한 조광래호 행보를 놓고 보면 이천수는 그 컨셉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축구장 안과 밖에서 여러 구설수를 일으켰던 과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유죠.
분명한 것은, 이천수는 대표팀 복귀의 꿈을 접지 않았습니다. 베어벡호 시절까지 한국 대표팀을 위해 열심히 뛰었던 태극 전사로서 남다른 애착심을 가졌기 때문에 조광래호의 일원이 되는 날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오미야 연습생 입단을 감수하며 재기를 열망했던 것도 붉은색 유니폼을 입겠다는 의지와 밀접하죠. 불과 4년 전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목표로 뛰었던 선수였음을 상기하면 자존심이 강한 자신의 마음이 현실로 돌아온 셈입니다.
무엇보다 오미야에서의 활약이 중요합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받쳐주지 않으면 대표팀 발탁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논리입니다. 오미야가 엄연히 J리그의 약팀 레벨임을 상기하면 이천수의 역량이 팀 전력에 충분히 녹아들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박주영의 장점을 팀 전력에 활용하지 못하는 AS 모나코처럼 말입니다.(특히 음보카니와의 공존 실패 및 측면 미드필더 전환) 이천수가 그 어려운 난관을 이겨낼 수 있을지 관건입니다. 조광래 감독이 일본 J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팀 복귀의 희망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대표팀의 향후 행보 또한 이천수 발탁의 명분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습니다. 만약 박지성의 아시안컵 이후 대표팀 은퇴가 확정되고, 그 이후 한국 대표팀이 성적 부진에 시달리면 '이천수를 대표팀에 뽑아야 한다'는 외부의 목소리가 제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다만, 이천수가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평범하거나 부진하면 그 소리가 묻힐 공산이 큽니다. 박지성 은퇴 이후 한국 대표팀이 흔들리는 시나리오 또한 반갑지 않습니다.
또한 조광래 감독은 영건에 흥미를 느끼는 지도자입니다. 아시안컵 이후 젊은 선수들을 적극 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천수 발탁을 얼마만큼 염두하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대표팀 발탁 기회는 서로 동등해야 하는 원론적 관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축구 선수의 본분인 실력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죠. 결국, 이천수의 올 시즌 J리그 활약상이 중요하게 됐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관전했던 J리그 데뷔전에서는 실전 감각 부족 및 현지 스타일 적응과 싸웠던 어려움이 있었지만 올 시즌에는 완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천수의 대표팀 복귀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은 바로 '오미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