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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K리그, 일본 J리그를 이길 수 없다

 

"한국 K리그 보다는 일본 J리그가 더 낫다"

1. 몇년 전 축구게시판에서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누리꾼들에게 '일본축구 빠X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왕따 취급을 받았죠. 아무리 J리그가 일본리그라 할지라도 경기력에서는 K리그가 앞섰기 때문에 'K리그>J리그'라는 트렌드가 형성됐습니다. 야구는 몰라도 축구에서 만큼은 일본에게 질 수 없다는 공감대를 모았기 때문이죠.

그 당시에는 K리그 선수들이 돈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특급 선수들은 연봉이 이리저리 뛰는데다 각종 승리수당까지 챙겼죠. 한때 울산에서 잘나갔던 이천수의 당시 연봉이 수당까지 합해 13억이라는 이야기가 있었고(프로축구연맹 관계자가 3년 전 언론에 밝힘) 성남에서 뛰던 김두현의 연봉은 약 9억 3천만원 이었습니다. 아마도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 금액을 받았을 겁니다. 당시 K리그의 웬만한 특급 선수들이 J리그에 진출하지 않았던 것은 J리그가 선수 인건비를 줄이느라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몇몇 팀들이 파산하고 대부분의 구단들이 재정난에 허덕이면서 선수 인건비를 줄였죠. K리그 구단 예산의 70~80%가 선수 인건비에 투자되고 J리그는 대략 50% 내외였으니, K리그가 선수들에게 많은 투자를 했던 겁니다. 좋게 표현하면 투자였지, 실제로는 몸값 부풀림이 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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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아시아축구연맹이 지난해 발표한 아시아 프로리그 실태. J리그가 K리그를 앞서고 있습니다. (C) 효리사랑]

2.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프로위원회는 지난해 5월 아시아 프로리그 실태를 보고했는데 J리그가 500점 만점 중에 470점을 받아 21개 아시아 리그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반면 K리그는 438점으로 2위에 그쳤죠. 이 보고서에서는 10개 부문과 62개 세부 항목으로 리그 수준을 평가했는데 J리그가 10개 부문 모두 A를 기록한 반면에 K리그는 선수 계약규정, 리그 승강제, 구단 독립법인화에서 B를 받는 바람에 점수가 깎였습니다.

J리그가 K리그를 앞선 부문은 리그 운영, 관중, 재정 건전성, 마케팅, 산업규모, 언론, 클럽 수 총 7개 부문 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운영과 경기장은 같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K리그가 J리그를 유일하게 압도했던 것은 경기력 이었습니다. 한국은 경기력에서 100점 만점에 94.8점을 받았는데 아시아리그에서는 1위를 차지했죠. 하지만 경기력 만으로 J리그보다 더 우수한 리그로 평가받기에는 부족함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종합 평가에서는 J리그가 K리그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죠.

3. 문제는 K리그가 J리그를 유일하게 압도했던 경기력 마저도 흠집이 생겼습니다. AFC측에서 K리그 팀들의 AFC 챔피언스리그 부진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지난 시즌에는 K리그 팀들이 AFC 챔피언스리그 8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2007시즌 정규리그 5, 10위를 기록했던 포항, 전남이 진출한게 더 문제였지만)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J리그 4팀이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반면에 K리그는 3팀만 진출했을 뿐이죠. 그 중에서 유일하게 조 1위를 기록한 팀은 포항 뿐이었습니다. 수원과 서울이 32강 조별예선 마지막날까지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던 위치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K리그는 최근 J리그와의 역대 전적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최근 세 시즌 동안 23번의 공식 경기에서 4승8무11패의 열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J리그보다 10년 일찍, 그리고 아시아 최초로 프로축구리그를 창설했던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J리그 팀들의 비약적인 성장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지난 2006년까지 어느 한 팀도 8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지만 2007년 우라와 레즈가 전북, 성남을 제치고 우승하면서 부터 전세가 기울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감바 오사카가 아시아를 제패하면서 J리그는 2년 연속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을 배출하게 됐습니다. 반면 K리그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J리그에 밀려 고개를 내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대로라면 경기력에서도 J리그가 K리그를 압도할 것입니다.

4. K리그의 경기력 문제는 AFC 챔피언스리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리그가 하향 평준화에 빠지면서 경기력이 저하된 것이 그 원인이죠. 그 이유는 4가지의 문제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인 드래프트와 수준급 외국인 선수 부족, 국내 대형 선수들의 해외 이적, 리그 시스템이 그것입니다.

(1) K리그 드래프트의 문제점

한국축구의 특출난 유망주들이 K리그보다 J리그쪽으로 눈을 돌리는 원인은 드래프트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팀에서 뛰고 싶은데 드래프트 제도에 의해 다른 팀에서 뛰어야 하는 부담감에 직면했죠. 그래서 조영철(니카타) 박주호(가시마) 김근환(요코하마 마리노스) 같은 한국 축구의 10년을 짊어질 몇몇 영건들이 K리그가 아닌 J리그에서 첫 프로선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김근환은 지난달 19일 일본 축구 언론사 <스포츠 네비>를 통해 "한국은 드래프트 제도라는 벽이 있다. 강한 팀에 들어가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까 자신의 장래를 마음에 그릴 수 없다"며 드래프트 제도의 문제점을 아쉬워했습니다. 김근환은 지난해 K리그 드래프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신생팀 강원FC의 우선지명을 받을 14명 후보로 주목 받았지만 그해 여름 현해탄을 건너 요코하마에 입단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김근환이 드래프트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선수 본인이 얼마전에 시인했더군요. 만약 일본으로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강원 수비수로 뛰었을 겁니다.(최순호 감독이 원하던 선수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래프트가 없었다면 수원과 서울 같은 인기팀에서 뛰었겠죠.

드래프트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K리그 구단으로서도 답답할 노릇이죠. 고교 및 대학축구, 네셔널리그에서 K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재목들을 꾸준히 관찰하면서 자신의 팀 스타일에 맞는 선수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영입 협상을 해야 하는데 드래프트 때문에 원하는 선수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막상 영입하고 나니까 팀 스타일에 안맞는 문제점이 있는 겁니다. 여기에 몇몇 특급 유망주들이 J리그로 빠지고 있으니 수준급 영건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었습니다. 이는 K리그팀들의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2) 수준급 외국인 선수 부족

요즘 K리그를 보면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을 찾기 힘듭니다. 그동안 K리그에서 꾸준히 잘했던 외국인들은 여전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K리그에서 잘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죠. 올 시즌에 첫 선을 보인 선수중에서는 리웨이펑(수원) 챠디(인천) 사샤 오그네노브스키(성남) 오하시 마사히로(강원)만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챠디를 제외한 세 명의 선수는 아시아 쿼터제로 K리그에 들어온 선수들입니다. 이는 경제 악화로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을 데려오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재정이 열악한 시민구단과 도민구단들은 영입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때 브라질 선수들의 코리안드림 근원지로 꼽히던 대전은 지난해부터 수준 낮은 외국인들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두 명의 선수(바벨, 치치)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죠. 그 두 명도 K리그에서 부진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 J리그는 다릅니다. 올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팀들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친 레안드로(감바 오사카) 다비(나고야 그램퍼스) 마르키뇨스(가시마)는 K리그의 웬만한 외국인 선수 레벨을 넘어선 선수들입니다. 2007시즌 전북, 성남 격파의 주역이었던 롭슨 폰테(우라와 레즈)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주니뉴, 주니오르(이상 가와사키)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을 배출하면서 팀의 경기력이 향상되더니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외국인 선수의 경쟁력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와 J리그의 명암이 엇갈렸던 결정적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몇몇 J리그 팀들은 K리그의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도 한국 선수지만, K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외국인 선수들의 J리그행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까보레(FC 도쿄, 전 경남) 뽀뽀(가시와, 전 경남) 보띠(빗셀고베, 전 전북) 마토 네레틀야크(오미야, 전 수원)가 바로 그들입니다. 한때 J2리그 센다이에서 뛰었던 나드손(전 수원)은 2004년 K리그 정규리그 MVP를 받았던 선수입니다.

(3) 국내 대형 선수들의 해외 이적

K리그에서 특출난 기량을 뽐냈던 국내의 수준급 선수들의 해외 이적이 잦아진 것도 K리그의 경기력 저하를 불러 왔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에서 해외 이적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지만, 그들의 공백을 메울 대체자원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지난해 더블 우승했던 수원이 올 시즌 총체적 부진에 빠진 주 원인이 조원희, 이정수, 신영록의 해외이적(마토 포함) 공백을 메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박주영의 AS 모나코 이적 이후 공격진의 무게감이 떨어졌지요. 대구는 이근호가 팀을 떠난 것을 비롯한 여러가지 이유로 전체적인 전력이 내림세에 빠졌습니다. 한때 '3백 최강'으로 손꼽히던 울산은 박동혁이 J리그로 떠나더니(박병규는 군 입대) 수비 라인이 구멍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일본 무대에 진출한 선수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올해 J리그와 J2리그에 진출한 선수만 하더라도 이근호(이와타, 전 대구) 조재진(감바 오사카, 전 전북) 박동혁(감바 오사카, 전 전북) 조성환(삿포로, 전 포항) 박주성(센다이, 전 수원) 이정수(교토, 전 수원)가 현해탄을 건넜습니다. 무적 선수 위기에 놓였던 이근호를 제외한 5명은 엔고 현상으로 많은 돈을 받으면서 일본 팀에서 활약중입니다.

(4) 리그 시스템, J리그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J리그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선수들의 기량이 어느 순간에 늘었던 것은 아닙니다. 승강제 및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에 따른 질적인 성장으로 꾸준히 좋은 선수들을 배출했던 것입니다. J리그 18개팀과 J2리그 18개팀 체제에 승강제까지 진행중이니 매 경기마다 긴장감이 조성될 수 밖에 없습니다.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는 힘으로 단련되었기 때문에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러면서 선수와 팀 끼리의 경쟁력이 쌓여가면서 리그의 수준이 향상 되었죠.

반면 K리그는 2006년 고양 국민은행과 2007년 울산현대 미포조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승격제 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유소년 시스템 또한 체계적으로 정비되지 못했지요. K리그의 전반적인 선수 시스템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면 경기력에서 J리그에게 밀리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5. J리그는 세계 10대 리그 진입 목표, K리그는 뚜렷한 목표가 없다

제가 이 글에서 경기력을 위주로 K리그와 J리그를 비교했던 이유는, 경기력에서도 J리그에 뒤집힐 가능성이 짙다는 것입니다. 스포츠 파이가 협소한 한국 시장에서 K리그가 J리그를 상대로 마케팅과 재정 건전성, 전반적인 인프라, 리그 운영에서 단기간에 뛰어 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는 경기력 마저도 위태롭기 때문에 K리그와 J리그의 격차가 점점 벌어질 것입니다.

J리그의 목표는 2014년까지 자국리그를 세계 10대 리그로 진입 시키는 것입니다. 1993년 J리그 출범 이후 백년대계(백년구상)를 모토로 급성장했던 일본 축구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반면 K리그는 앞날에 대한 뚜렷한 목표, 꾸준한 실천, 혁신이 완전히 결여 되어 있습니다. K리그가 J리그를 이길려면 리그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획기적인 마인드가 떨어진 국내 축구 문화와 최근의 경제 악화 속에서 좋은 성과를 바라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신문선 교수가 10년전에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이런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일본보다 축구를 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축구에 적합한 체격 조건과 피지컬, 그리고 기술을 갖추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자국리그에서는 한국이 일본에게 뒤쳐져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발전하지 못하는 K리그와 끝없이 진보하는 J리그의 명암이 점점 엇갈리고 있는 것이죠. 이대로라면 K리그는 J리그를 이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