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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언론, 박주영을 그만 괴롭혀라

 

호주전 3-1 승리로 들떠있던 지난 6일. 각 포털 사이트 메인에서 <'스타' 박주영의 '스타' 답지 못한 아쉬운 행동>이라는 기사가 떴지만 네티즌들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네티즌들은 박주영이 아닌 해당 기사에 아쉬운 감정을 내비치며 온갖 비난과 질타를 가했습니다. 이 소식은 유명 축구 커뮤니티에도 알려지면서 많은 축구팬들이 기사 내용을 접했습니다.

기사 내용에 의하면, 박주영은 호주전 종료 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갖는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에서 "제가 뭘 잘 한 것도 없는데요"라며 인터뷰를 피했다고 합니다. 믹스드존은 선수들을 인터뷰하기 위한 장소로서 인터뷰실에서 열리는 양팀 감독 공식 기자회견과는 별도의 인터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사에 빠진 내용이지만, 대한축구협회가 2003년 개정한 <언론을 대하는 국가대표팀 선수의 행동지침>에 의하면 "믹스드존 인터뷰에서는 최대한 성의를 다하라"는 행동지침이 있습니다. 어쩌면 박주영이 비판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기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행동지침도 넣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문제 삼는 것은 믹스드존이 아닙니다. '박주영이 인터뷰 거절한 것이 왜 스타답지 못한 것이냐?', '박주영 인터뷰 실패하면 꼭 그런 기사를 써야 하는가?'는 것이 네티즌들의 주된 반응입니다. 물론 박주영의 인터뷰 거절을 옹호할 수는 없습니다. 믹스드존에서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성의를 다하지 못한 것은 기자들 입장에서 좋은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기사에 인터뷰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를 싣는 것은 대중의 입장에서 볼때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박주영은 굳이 인터뷰를 안하더라도 기자들에게 얼마든지 기사거리를 제공하는 선수입니다. 경기 활약 및 분석 기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죠. 네티즌들의 열띤 반응을 얻으려는 기사를 쓰고 싶다면 호주 언론과 선수단에게 박주영의 경기력이 어떤지 물어보면 됩니다. 예를 들면, '호주 언론이 박주영의 골에 감탄한 이유'라는 기사가 나올 수 있죠.

박주영이 아무리 인터뷰를 응하지 않더라도 스타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언론에서는 박주영 인터뷰에 대한 아쉬운 감정을 내비치겠지만 대중들은 박주영의 경기력을 좋아합니다. 축구 선수는 실력으로 말하기 때문에 대중들은 그것을 가장 원하며 인터뷰는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할 뿐입니다. 스타는 언론이 만들 수 있지만 그 이전에는 대중의 신뢰와 인기가 더 중요합니다. 박주영의 인터뷰 거절이 결코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스타 답지 못하다고 논하는 것은 대중들의 비공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박주영은 '인터뷰 기피증'이 강한 선수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은 축구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그동안 박주영의 인터뷰 거절과 관련된 기사를 꾸준히 작성했기 때문이죠. 2005년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U-20 월드컵 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박주영 인터뷰 거절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 계속 보도되었기 때문에 축구팬들도 그 사실에 익숙합니다. 일부 기사에서는 인터뷰를 거절하는 박주영이 아마추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직접적인 비판성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문제는 박주영 인터뷰 거절에 대한 지적을 굳이 대중 앞에서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박주영이 인터뷰 기피증을 가지게 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보다 유독 자신에게 인터뷰가 너무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과하다보니 언론에 대한 부담이 생겼습니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했을 당시 엄청난 인터뷰 세례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20세의 어린 선수 입장에서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K리그 경기장을 출입할 수 있는 프레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경기를 꾸준히 보면서 박주영의 인터뷰 장면을 여럿 봤습니다. 박주영은 서울의 승패 여부와 관계 없이 경기가 끝나면 이장수 감독과 함께 인터뷰실에 들어가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몇몇 빅 경기에서만 인터뷰실이 개장했지만, 언론의 박주영 관심이 뜨겁다보니 어쩔 수 없이 서울이 패한 경기에서도 박주영은 인터뷰실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서울이 2005년 4월 초 부천(현 제주 유나이티드)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했을때 TV 인터뷰 공간에서 가장 먼저 인터뷰를 했던 사람은 박주영 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주영 옆에서 인터뷰를 대기했던 사람은 정해성 부천 감독과 결승골을 넣었던 최철우 였습니다. TV 인터뷰 공간에서는 승리팀 감독과 선수의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인데 박주영이 가장 먼저 인터뷰를 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의 인터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TV 인터뷰가 끝난 뒤 이장수 감독과 함께 서울 월드컵 경기장 인터뷰실에 들어가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이죠.

그 당시의 박주영은 인터뷰에 대한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해 4월 13일 수원전 종료 후 "인터뷰에 대한 부담이 없다. (인터뷰가) 독이 된다고 해도 약이 될 수 있다"며 언론의 주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의 마음은 언제부턴가 언론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해 6월 네덜란드에서 U-20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을때 어느 공중파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으로부터 인터뷰를 요청받을 정도였으니 언론의 인터뷰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인터뷰 기피증은, 박주영의 문제가 아닌 언론의 과도한 관심이 빚어낸 문제입니다.

분명한 것은, 박주영은 축구선수라는 것입니다. 축구는 11명이 서로 똘똘 뭉치는 단체 종목이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팀이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주영은 한국 축구를 이끄는 스타지만 그 이전에는 팀원으로 남고 싶었던 겁니다. 언론 인터뷰도 선수 특성에 맞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박주영이 인터뷰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냈을지 모릅니다. 2005년 6월부터 지금까지 박주영 인터뷰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축구팬으로서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