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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주영은 더 이상 '반짝 공격수'가 아니다

 

지금의 박주영 경기력을 보면, 전성기였던 4년 전 보다 더 강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4년 전에 비해 꾸준히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혹사 및 부상 후유증을 견뎌내고 성장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4년 전에는 골 결정력과 위치선정, 스피드에서 강점을 나타냈으나 몸싸움 약한 공격수라는 비아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격수로서 갖춰야 할 조건을 골고루 지닌 '단점 없는 공격수'로 진화 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안정적이라는 평가입니다.

박주영에게 있어 호주전 선제골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전반 5분 이청용이 오른쪽에서 찔러준 패스를 이어받아 상대 수비수와 경합과정에서 재치있게 선제골을 넣었던 여파는 호주 수비진이 경기 초반부터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 골은 한국이 3골 넣을 수 있었던 결정적 발판이 됐습니다. 해결사는 팀의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결정적 임펙트가 필요한 것 처럼, 박주영은 그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을 실력으로 과시했습니다. 골 뿐만이 아닙니다. 측면과 최전방을 부지런히 오가는 움직임을 비롯 적극적인 몸싸움과 공중볼 다툼을 통해 팀 공격 기회를 활발히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새로운 파트너인 이동국과의 호흡도 원만했습니다.

호주전 맹활약이 뜻 깊은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2년 전 자신을 외면했던 핌 베어벡 호주 대표팀 감독을 상대로 공격수로서의 능력을 맘껏 과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베어벡 감독이 한국 사령탑을 맡던 시기에 잦은 부상과 슬럼프로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베어벡 감독이 지난 2007년 3월 우루과이전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외한 뒤에는 "박주영의 탈락은 기복이 심했기 때문이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았고 그해 7월 아시안컵 명단에서도 빠졌습니다. 베어벡 감독 입장에서는 경기력이 최고조에 달한 선수를 뽑고 싶었지만 박주영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박주영이 4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거침없는 성장세를 달렸기 때문입니다. 청구고 시절부터 괴물 골잡이로 주목받은 것을 비롯해서 두 번의 U-20 월드컵 출전, 2005년 대표팀과 K리그에서의 거침없는 골 감각이 자신의 신드롬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골 결정력 부족'을 해결지은 존재로 거듭났기 때문에 국민적인 관심이 뜨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각급 대표팀을 오가는 무리한 스케줄로 혹사에 시달리며 컨디션이 뚝 떨어졌고 여기에 부상까지 겹치면서 자신의 주무기였던 골 결정력이 무뎌지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박주영의 내림세 행보를 두고, 여론에서는 '박주영은 반짝 공격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한 순간부터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행보를 걷고 말았던 것이죠. 그동안 한국 축구에서 소리없이 잊혀졌던 반짝 선수들이 여럿 있었던 만큼, 박주영도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선도 있었습니다. 박주영이 지난해 8월 AS모나코 이적 전까지 K리그에서 의기소침했던 모습을 보였던 것도 여론에 대한 부담감에 억눌렀던 요인이 한 몫을 했습니다. 만약 모나코로 이적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반짝 논쟁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물론 박주영은 지금도 골을 잘 넣는 선수가 아닙니다. 지난 시즌 모나코의 공격 옵션 중에서 가장 많이 출전하고도 5골에 그친 것은 '골 잘 넣는 공격수'의 이미지와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위기를 침착하게 넘길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천부적인 골 능력을 앞세워 국민적인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자신의 또 다른 재능인 이타적인 활약에 눈을 떴습니다.

모나코 소식을 전하는 ASM풋은 지난 7월 7일 "박주영은 동료 선수들의 공격력을 지원하는 공격수 역할을 맡았다. 끊임없는 움직임과 기술력이 동료 선수들을 행복하게 했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이타적인 선수이며 키가 크지 않음에도 제공권 장악능력이 뛰어났다"며 박주영의 지난 시즌 활약을 칭찬했습니다.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골이 아닌 이타적인 역량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슈팅을 아끼면서 동료 선수들에게 묵묵히 패스를 연결하여 팀 공격 전술의 연결 고리 역할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박주영=골'이라는 공식을 깨기에 충분했습니다.

박주영은 최근 A매치 2경기 연속 골을 넣었습니다. 모나코에서 많은 골을 넣지 못했으나 대표팀에서 연속 골을 넣은것은, 모나코에서 원하는 '이타적' 활약과 대표팀에서 원하는 '만능적' 활약에 모두 충실 했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골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던 팬들의 목소리를 잠재운 것을 비롯 그동안 자신이 직면했던 위기를 꿋꿋이 이겨냈음을 알렸습니다. '위기속에서 강해진다'는 인생의 진리처럼, 박주영은 베어벡호에서 해메던 예전의 모습과 다른 행보를 걷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에는 모나코에서 쌓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특히 몸싸움이 대표적 입니다. 박주영은 4년 전 본프레레 감독에게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혹평을 받으며 몸싸움에 고질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박주영은 모나코에서 경기 감각을 꾸준히 쌓으면서 몸싸움을 즐기는 성향의 공격수로 거듭났고 그 여파는 이번 호주전에서 체격 좋은 수비수와의 경합 과정에서 공을 끝까지 따내려는 투쟁적인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골만 잘 넣는 선수가 아닌, 여러가지의 주무기를 자랑하는 선수로 거듭났음을 호주전에서 국민들에게 확인 시켰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은 더 이상 '반짝 공격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반짝이었다면 베어벡 감독에게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후에도 한 없이 추락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모나코에서 프랑스 리그 적응에 실패해 지금쯤 국내 유턴을 노리는 신세로 전락했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비관적인 시나리오와는 다르게, 박주영은 모나코에서의 자신감 넘치는 활약을 꾸준히 단련하며 기량 업그레이드에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박지성에 이어 대표팀에서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반짝 선수에게는 이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박주영이 직면했던 예전의 시련은 자신의 위기 대처 능력에 큰 도움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매를 먼저 맞았기 때문에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노하우와 그로인한 내구성이 쌓이고 또 쌓이면서 더 좋은 공격수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은 '반짝'이라는 수식어를 뗐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화려한 비상 뿐입니다. 올 시즌 모나코에서 '첼시 특급 골잡이 출신' 아이두르 구드욘센과 투톱 공격수로 호흡을 맞출 박주영의 또 다른 성장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