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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주영 데뷔전, 골 없으면 부진인가?

 

제목에 '부진'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여론에서는 '박주영이 데뷔전에서 부진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경기를 봤던 저로서는 '박주영이 그렇게 못했는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박주영이 부진했을지 모릅니다. 칼링컵 32강 상대팀이 4부리그 슈루즈버리 타운이자 데뷔전 이었지만, 아르센 벵거 감독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강력한 임펙트를 과시하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잘한것도 아니고 못한것도 아니다' 표현이 어울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박주영에게 데뷔전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면 더 바랄 것은 없지만 아스널 경기력 부터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공격수는 골로 말하지만 그 이전에는 팀이 하나로 단합해야 합니다. 공격수가 미드필더처럼 경기 흐름을 주도하기에는 포지션상으로 힘듭니다. 아스널은 수비가 취약했고 미드필더진에서는 공격의 맥을 잡아줄 구심점이 없었습니다.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힘들어지면 공격수까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수비가 강해야 이길 수 있다'는 축구의 진리는 무시 못합니다.

[사진=박주영 (C)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arsenal.com)]

아스널은 슈루즈버리 타운전에서 3-1로 역전승 했습니다. 전반 14분 콜린스에게 먼저 실점을 허용하면서 힘겹게 시작을 했으며, 전반 33분 깁스가 동점골을 넣고 후반 13분 옥스레이드-챔버레인이 역전골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공수 양면에 걸친 경기력이 불안했습니다. 특히 실점 상황에서는 누구도 콜린스를 마크하지 않는 수비 불안을 연출했죠. 프림퐁-코클랭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은 주변 동료들에 의존하는 공격 전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상대 수비에게 읽혔고, 옥스레이드-챔버레인은 역전골을 넣기 전까지는 윙어로서 팀 공격의 활기를 더하는 에너지가 부족했습니다. 4부리그 팀을 상대했던 아스널의 경기력을 딱히 칭찬하기 힘들었습니다.

박주영은 이날 4-4-2의 쉐도우로 활약했습니다. 2선으로 내려가거나 좌우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동료 선수들과 연계 플레이를 주고 받는데 바빴습니다. 특히 전반 10분 전까지는 볼에 관여하는 움직임이 많았죠. 아스널 실점을 전후로 잠시 소강상태 였지만 전반 중반부터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내주는 움직임이 다시 늘었습니다. 전반 40분에는 박스 왼쪽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을 날린것이 골문 바깥을 빗나가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2선 플레이를 즐기면서 위협적인 슈팅을 날렸던 시도는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후반 26분 교체되기 전까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죠. 골은 넣지 못했지만 쉐도우로서 자기 임무에 충실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박주영이 부진했다'는 여론의 주장이 제기된 것은, 박주영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컸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칼링컵에서 아스널 데뷔전을 치렀지만 아직까지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선을 보이지 못했죠. 지난 주말 블랙번 원정에서는 18인 엔트리에 없었습니다. '칼링컵에서 골을 터뜨렸다면 프리미어리그에서 차츰 기회를 얻지 않을까' 싶은 마음은 저를 비롯한 누구에게 다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박주영이 골 욕심을 부리기에는 아스널 경기력이 뒷받침되지 못했습니다. 프림퐁-코클랭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이 팀 밸런스를 잡기 보다는 자기 역할에 급급하면서 박주영에게 밑쪽으로 내려오는 움직임이 요구됐습니다. 4-4-2에서 미드필더진과 공격수 사이에서 삼각패스가 연결되려면 공격수 1명이 내려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샤막이 박스 안에서 골 생산에 주력하는 역할이었다면 박주영은 쉐도우로서 팀 플레이에 충실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쉬운 것은, 깁스가 왼쪽 측면에서 프리롤 상태였고 베나윤이 중앙쪽으로 꺾어 올라오면서 박주영과 동선이 겹쳤습니다. 베나윤 활약상은 뛰어났지만 박주영과 공존하기에는 역할이 중복됐습니다.

만약 박주영이 국내 여론의 입맛대로 '골 욕심을 부려야 한다'면 아스널 공격은 밸런스가 깨졌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4-4-2에서 박주영-샤막이 박스 안에서 골을 책임지기에는 프림퐁-코클랭이 너른 시야와 날카로운 볼 배급에 의해 상대 수비 빈 공간을 가르는 패스를 내주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종방향으로 움직이는 활동 부담이 따르면서 아스널 공격이 답답하게 전개되었을지 모릅니다. 4-4-2의 쉐도우는 개인 욕심 보다는 팀 플레이에 주력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박주영이 활발한 연계 플레이를 펼쳤지만, 평소에 동료 선수와 발을 맞출 시간이 많았다면 패스에 의해 상대 수비를 제끼는 세밀한 공격 전개를 연출했을지 모릅니다. 아직 박주영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샤막이 아닌 박주영이 타겟맨 이었다면?'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진짜 부진했던 선수는 샤막이었기 때문이죠. 공격수로서 이렇다할 존재감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샤막이 박주영보다 출전 시간 경쟁에서 앞서있지만 '샤막이 박주영보다 잘한다'는 전제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샤막은 2011년이 되자마자 폼이 갑작스럽게 떨어졌고 이번 경기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박주영은 쉐도우로서 자기 역할을 충족시켰지만 타겟맨이었던 샤막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또한 박주영은 AS모나코 시절에 최전방에서 인상 깊은 공격력을 과시했던 경험이 많았죠. 그의 최적 포지션은 쉐도우지만 모나코에서 쌓은 내공이라면 타겟맨도 문제 없습니다.

박주영은 이제 첫 경기를 뛰었을 뿐입니다. 데뷔전 데뷔골이라는 멋진 활약상을 연출하지 못했지만 71분 동안 실전에서 동료 선수들과 발을 맞췄던 경험이 이날 경기의 소득 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량이 출중한 공격수라도 매 경기마다 골을 넣을 수는 없습니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부진할 때가 있습니다. 데뷔전에서 골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스널의 중앙 밸런스가 불안합니다. 공교롭게도 골을 넣었던 3명은 측면 옵션입니다. 일각에서는 박주영과 미야이치 료(박주영 대신에 교체 투입된 일본인 공격수)를 비교하지만, 제가 봤을때는 '박주영이 샤막보다 더 나았다'라고 판단합니다. 샤막보다 폼이 더 좋은 것은 단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산소탱크' 박지성의 지난 15일 벤피카전 활약상입니다. 일각에서 박지성의 공격력 부족을 언급한 것이 여전히 찜찜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박지성 활동량은 맨유 내에서 2위(11.017Km)였으며 1위 캐릭(11.112km)과 별 차이가 안납니다. 왕성하게 활동했고, 빈 공간 끊임없이 만들어줬고, 수비까지 잘했습니다. 실전 감각 부족, 긱스가 중앙에서 균형을 잡아주지 못했던 영향을 받았지만 공격력은 분명히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공격력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가 제기된 것은 골을 못넣어서 그런 말이 나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축구는 골이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는 팀과 함께 노력하는 자세가 더 필요합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