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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김남일 대표팀 복귀, 홍명보 빼닮았다 허정무호는 불과 1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오합지졸의 팀이었습니다. 스리백과 포백, 3-4-1-2와 4-3-3 같은 여러가지 포메이션을 번갈아 선택했지만 맞는 옷이 하나도 없었고 여러명의 선수들을 골고루 시험했으나 조직력에 문제를 드러내면서 공격 전개와 수비 라인 강화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몇몇 선수는 뛰겠다는 의지가 결여된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겨야 할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고, 경기에서 승리하더라도 찝찝하게 승리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특히 지난해 9월 10일 A매치 북한전은 그야말로 '막장의 결정판'이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첫경기이자 코리안더비로서 많은 국민들이 경기를 지켜봤으나 그 기대가 점점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느슨한 공격 전개와 부정확한 패싱력, 무기.. 더보기
박지성에게서 홍명보의 향기가 난다 그동안 한국 축구를 열렬히 사랑했던 축구팬들이라면 박지성과 홍명보를 착각할지 모를 일입니다. 2009년의 박지성과 90년대-2002년 한일 월드컵의 홍명보는 서로 시대가 달랐을 뿐, 고비에서 팀을 이끌어줄 리더로서 구심점으로 활약하여 선수들을 독려했던 '한국 축구의 아이콘'입니다. 과거 대표팀의 상징이 홍명보였다면, 지금은 박지성이 허정무호의 선봉에 서고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두 선수가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나이대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홍명보는 25세였던 1994년 미국 월드컵 독일전에서 생애 첫 대표팀 주장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그는 이 경기에서 35m 거리의 대포알 같은 중거리슛을 성공시켜 한국 축구의 매운맛을 세계에 떨쳤죠. 박지성은 27세였던 지난해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 더보기
'포스트 홍명보'의 성공, 언제쯤 보려나? 축구 선수들에게 '포스트 000(제 2의 000)'으로 불리는 일은 영광이지만 뒤따라 오는 부상 또는 부진 만큼은 달갑지 않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로 평가받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코치다. 그의 국가대표팀 은퇴 뒤 '포스트 홍명보'로 기대 받던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박용호(27,서울) 조병국(27, 성남) 임유환(25, 전북) 이강진(22, 부산)이 그들이다. 당시 박용호는 2000년 안양(현 FC서울)의 정규리그 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렸으며 조병국은 2002년 수원의 신인 수비수로서 큰 두각을 나타냈다. 임유환과 이강진은 각각 U-20, U-17 대표팀의 중심 수비수로 주목 받던 선수들. 그러나 '포스트 홍명보' 징크스 때문일까? 기량이 한층 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