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우리는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운동 선수들을 보면서 장하고 대견스럽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때로는 국민적인 자긍심으로 이어질때가 있습니다. IMF 시절 박찬호와 박세리가 미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에 삶의 활력소와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죠. 일각에서 해외 무대에서 활약중인 한국인 선수를 가리켜 '민간 외교관'이라고 칭할 정도로, 운동 선수들은 사회에서 막강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1. 하지만 그들의 성장 과정이 화려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한국 스포츠의 병폐인 체벌의 피해자이기 때문이죠. 지난 시즌 남자 프로배구 최우수 선수(MVP)이자 대표팀의 에이스인 박철우가 이상렬 코치에게 전치 3주 폭행을 당했으니까요. 국내 프로배구 최고의 선수도 체벌받는 것이 한국 스포츠의 현실이자 빛과 그림자 입니다.

박철우 폭행 파문이 사회적인 큰 파장을 일으킨 것 처럼,  한국 스포츠는 프로와 아마추어, 성인과 미성년자를 막론하고 구타로 얼룩져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는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국위 선양했지만 체벌 문제 또한 수 없이 도마위에 올라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구타 및 얼차려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특히 미래에 한국 스포츠 중추로 자리잡을 10대들은 폭력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성인 선수는 박철우처럼 언론에 폭행 사실을 공개하거나 2007년의 여자 프로농구 우리은행 선수들처럼 감독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할 수 있지만 10대들은 그럴 힘이 없습니다. 그들은 어리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어른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것은 당연합니다. 폭력을 일삼는 감독과 코치는 어른이기 때문에 스승의 행동을 보면서 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망주들은 어릴적부터 맞으면서 운동했기 때문에 '맞아야 잘할 수 있다'는 개념이 쌓이게 됐고 그 결과는 체벌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코칭스태프 혹은 선배 선수가 군기 잡기 위한 차원이라면 더 골치 아파집니다. 체벌 및 얼차려는 기본이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매 맞기 싫어 운동을 그만두거나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피해를 당했던 10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후배 선수를 때리는 선배 선수도 실질적으로는 체벌의 피해자나 다름 없습니다.

3. 제가 초중고등학교 다녔을 적에 저희 학교 축구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참고로 저는 만 25세입니다.) 맞고 다니는 것은 항상 기본이었으니까요. 맨땅 운동장에서 회초리로 엉덩이를 맞으면서, 코치에게 뺨을 맞으면서, 다리를 걷어차이는 장면을 수 없이 봤습니다. 그것도 욕설과 폭언을 들으면서 말입니다. 남들에게 눈에 띄지 않는 합숙소도 다를 바가 없죠. 그런 과정이 쌓이고 또 쌓이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구타 문제가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고 여전히 악순환이 뿌리 뽑히지 않는 원인이 됐습니다.

물론 맞아가면서 운동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 학생도 체벌의 사각지대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반 학생 중에 일부는 매를 맞으면 그 즉시 선생에게 반항하거나, 부모님에게 이르거나, 체벌 동영상을 인터넷에 퍼뜨리거나, 경찰서에 신고합니다. 요즘에는 학교마다 체벌 규정이 있어서 체벌에 대한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학교측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제가 있을때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일방적으로 과도한 체벌을 당했던 예전의 풍경과 사뭇 다르죠. 그러나 운동 선수들은 그럴 힘도 없습니다. 맞고 다니는 것은 일상 다반사였으니까요.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하루 종일 맞고 다니며 '운동 기계'로 성장하는 모습 이었습니다.

4.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보습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량이 많아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녔죠. 그런데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과 친구에게 공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던 한 친구가 어느 날부터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봤더니 축구부 가입 때문에 며칠 동안 못나왔더군요. 그러더니 다시 학원에 나오면서 축구부와 학원 스케줄을 동시에 소화했지만,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축구부 훈련과 학교 공부로 인해 피로에 시달리며 학원에서 조는 장면이 여럿 목격되었고 집중력까지 약해졌습니다. 결국에는 학원을 그만두고 축구에 전념하고 말았죠.

지금의 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친구는 축구부 가입과 동시에 학원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초등학생에게는 그 스케줄이 너무 무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운동과 공부를 모두 열심히 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운동이 제대로 안된다면 공부라도 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단계로 올라갈수록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박탈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엄청난 체벌과 얼차려를 겪으며 성장합니다.(제가 그 친구를 이 글에 포함시킨 이유는 운동부들이 운동만 할 줄 아는 운동기계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도 친구들과 함께 공부 열심히 하고 싶었던 존재였기 때문이죠.)

5. 중학교때는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축구부들이 맞는 장면을 여러차례 목격 했습니다. 그들은 새벽부터 야간까지 하루 종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합니다. 물론 오전에는 훈련복에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지만요. 하지만 점심 시간이 되면 합숙소로 내려가 다시 운동에 전념해야 합니다.

문제는 축구부들이 교실에서도 선생들에게 맞고 다닌 것입니다. 중3때 '운동부와 관련없는' 체육 선생이 저와 함께 같은 반에 있던 축구부를 아무 없이 머리를 때리고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습니다. 어떤 선생은 축구부를 일반 학생으로 잘못 알았던 바람에 숙제를 안했다는 이유로 뺨을 때린 경우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축구부 앞에서 이런 말까지 하는 선생도 있었습니다. "축구부 때문에 수업 분위기 망친다", "야. 축구부. 졸지 말란 말이야"라고 말입니다. 축구부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운동으로 인한 피로를 이기지 못해 수업 시간에 조는 축구부원이 여럿 있었습니다.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했던 축구 부원을 볼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6. 고등학교때는 축구부들이 학교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 거두고 대학에 진출하기 위해 하루 종일 축구에 전념해야하기 때문이죠. 편협한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동기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축구부원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중학교때는 서로 알았던 친구들이었는데 고등학교때는 운동장에서 얼굴만 보고 말았죠.

일부 선생들은 학생들 앞에서 축구부의 존재에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선생은 "축구부가 우리학교에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어. 인문계 고등학교 왔으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냐. 내가 교장이라면 축구부 없앴을거야"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학생을 열심히 공부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축구부에 대해서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는 선생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축구부들은 교실에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고 운동했지만요.

고등학교 축구부들도 운동장에서 어김없이 맞으면서 운동했습니다. 특히 축구부원의 학부모 앞에서 과감히 매를 드는 코치의 모습이 참으로 얄미웠습니다. 학부모들은 아들이 합숙소에서 먹을 밥을 지으면서, 아들이 코치에게 몽둥이 찜질 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봐야만 했습니다. 제3자인 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학부모와 축구부원 모두 체벌에 길들여진 것입니다.

7. 제가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모두 몇년 전 이야기 입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무조건 때리고, 새벽부터 야간까지 운동시키는 풍토는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며칠전 PC방에서 야간 훈련 때문에 빨리 가야한다고 서로 소란부리던 저의 모교 축구부들을 봤으니까요. PC방에 왔던 축구부들은 20분 동안 잠깐 인터넷을 하다가 다시 사라졌습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가슴아팠죠. 여전히 체벌 문제가 끊이지 않고 유망주를 운동 기계로 키우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풍토가 그저 야속할 따름입니다. 박철우 폭행 파문도 문제지만 유소년들의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올해 모 대학 경영학과에 편입하면서 여전히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원래 토목이 전공이었는데 군대 다녀오고 전공까지 바꾸면서 기초가 부족하다는걸 느끼네요. 회계를 포함해 중고등학교때 저를 많이 괴롭혔던 함수 내용이 다시 반복되니까 어떻게 풀어야할지 갈피를 못잡겠더군요. 더욱이 암기력이 많이 떨어져서 금방 까먹는 경우가 많네요.

공부가 잘 안풀릴때마다 떠올리는게 바로 '체벌' 입니다. 매를 많이 맞고 기합 많이 받을 수록 성적이 더 좋아지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린게 한두번이 아니었죠. 누군가가 저를 때리고 통제하면 성적 향상에 인생 성공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 '망상'이 간절할때가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때까지 맞은 이후(측량 자세 틀리고, 계산 틀려서 강사에게 뺨 맞고 머리 맞고...ㅡ.ㅡ지금도 어이없더군요.) 학교에서 맞고 다닌적은 없습니다만 어찌되었듯 우리나라 학교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이 체벌이라는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잉체벌이 아직까지 문제될 정도로 말입니다.

제가 '매를 많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는데 어렸을적 부터 꾸준히 주입되는 바람에 결국 이렇게 '세뇌'되고 말았습니다. 학창시절에 선생들에게 이러한 말을 꾸준히 듣다보니 성인되서도 그 내용이 아직까지 제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이 남습니다. 심지어 '한국인은 맞아야 정신차린다'는 말까지 했던 선생도 있었을 정도죠. 지금보다 체벌이 더 심했던 60~70년대에는 이보다 더 심했다고 하던데 이러한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게 아쉽기만 합니다.

어렷을적 체벌은 지금도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공부 안될 때 체벌에 대한 망상을 떠올리게 할 뿐더러 요즘에는 잠을 자다가 꿈에서 어렷을적 체벌 장면까지 꿀 정도죠. 어느날 학교 여선생에게 '넌 (다른 애들보다) 더 저질이야'라고 꿀밤 때리다가 제가 그 선생 머리를 향해 박치기를 날리며 욕설을 하니까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꿈이었다는게 느껴지더군요. 그 장면이 얼마나 긴장되었던지 일어나면서도 숨을 가뿌게 쉬었을 정도였죠.

어떤 날에는 중학교때 체벌 장면이 제 머릿속에 다시 재현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중2때 여자 국어 강사가 웃으면서 제 엉덩이와 허벅지쪽을 몇차례 발로 때리고(그것도 아무 이유없이 말이죠.) 중3때는 다른 여자 국어 강사가 제 손바닥을 때리더니(이번에도 아무 이유 없이...ㅡ.ㅡ) 몇몇 아이들은 교실 뒤에서 엎드려 뻗쳐 시키는 장면이 꿈 자리에 나왔죠. 제가 손바닥 맞은것에 열받아서 강사에게 따지려고 다가서려는 타이밍에 잠에서 깨버렸습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제는 어렷을적 체벌이 꿈자리에 '등장'하게 되네요. 잠이 제 인생의 보약인데 말입니다.

특히 제가 다니던 중고등학교는 남자학교였는데 지역에서 가장 엄하기로 소문난 학교였습니다. 많이 때리고 기합 잘 주고 규율이 엄격한 곳 이었죠. 체벌 안하는 교사가 없는데다 '남학생들이 선호하는' 여자 강사들 중에 몇몇 분들은 많이 때렸습니다. 야구 방망이와 대걸레, 빗자루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때리고 출석부로 여러 차례 가격하는 것에 익숙하던 때였으니까요. 심지어 뺨을 맞을때 눈을 가격 당한 경우까지 몇차례 있었습니다. 선생이 강의 도중 학생들에게 '많이 맞을 수록 공부 잘한다'는 말은 그때도 지겹게 들었고 지금도 지겹게 떠올리고 있습니다.

고1때는 체벌에 '희열'을 느끼는 듯한 분이 있어서 힘들게 지냈던 적이 있었습니다.(지금은 학교에 없는 사람이더군요.) 첫 시간에 "체벌 받으면 고통이 있겠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스릴 넘치는 추억이 된다. 다시 맞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나는 항상 5대를 때리는데 그 중 2번째로 때리는게 제일 아플거다"고 말하더니 그것도 웃으면서 엉덩이를 많이 때리더군요. 2번째 몽둥이가 날아갈때가 제일 아팠으며 그 소리가 학교 밖까지 크게 들릴 정도로 강도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것이 스릴 넘치는 추억이 될 거라 말하지만 제가 봤을때는 폭력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제가 중학교 들어오면서 가장 실망했던게 욕설하는 교사들이 너무 많았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6년 다닐때는 욕 한마디라도 하는 교사가 없었지만 중고등학교에서는 욕설 듣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대학교 1학년때 <직업윤리>라는 교양과목을 수강하게 되면서 욕설이 언어 폭력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니까 이것도 일종의 '넓은 범주의 체벌'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물론 언어폭력이 체벌인지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릅니다만(일상 생활에서도 욕설이 쓰이니까요.) 물리적으로 체벌이 존재한다면 언어적으로는 욕설이나 폭언이 있습니다.(그래서 군대에서는 폭언, 욕설을 금지하는 병영생활 행동강령이 있죠.) 욕설은 체벌과 다른 존재이나 그 성격은 비슷하다고 보는게 맞겠죠. 

욕설에 기가 죽는 경우 역시 많았습니다. 중1때 영어 선생이 첫 시간부터 저에게 이런 저런 욕설을 많이 해서 심적으로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덩달아 영어 성적까지 안좋아서 많이 무시 당했죠.(그때 여파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도 영어를 못합니다.) 고등학교때는 한 수학 선생이 제 명찰을 보자마자 갑자기 버럭 소리 지르며 욕설을 내 뱉더군요. 그 이유는 자신의 장인 어른이 제 이름이랑 똑같답니다. 그것 때문에 놀라서 욕설 했다고 나중에 사과했는데 학생을 장난감 취급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지금도 생각하면 정말 기분 나쁩니다.

어찌보면 교사도 체벌의 피해자인 셈입니다. 어렸을적부터 학교에서 계속 맞아가면서(그때는 지금보다 체벌 강도가 더 심했으니까요.) '맞을 수록 성적 향상된다'는 인식이 쌓였기 때문에 그것이 제가 속한 세대에 반복되었으니까요. 막상 교사가 되면서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는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해(벌점제는 좀 더 지켜봐야 할듯) 체벌이 주기능이 되고 욕설이 부기능이 되어 해결책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죠. 결국 체벌 문제는 교사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였던 셈입니다.

어릴적 학교에서 체벌 받았던 것이 지금까지 저를 괴롭힐줄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나중에도 떠올릴 가능성이 커 언젠가 아이에게 회초리를 들지 모릅니다. 어떤이는 회초리를 '사랑의 매'라고 하지만 이것은 체벌을 옹호하기 위해 억지로 지어진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는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겠지만, 제 아이 만큼은 체벌 대물림에 의한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체벌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체벌 문제는 20년이 지나 아직까지 메스컴을 통해 큰 파장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체벌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바뀌기 전까지는 최소 다음 세대에서도 지금과 같은 체벌 문제가 부각될지 모릅니다. 그동안 다음 블로거뉴스를 비롯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체벌 문제가 많이 거론되었지만 이제는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TAG 체벌
체벌 문제가 오늘날까지도 한국 교육계의 고질적 병폐로 남아 있습니다. 80~90년대부터 일부 교사에 의한 체벌 문제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비화되었지만 21세기에도 일선 학교에서 과잉 체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최근에는 최근에는 서울의 한 특목고 교사가 명문대 합격한 제자를 폭행해 물의를 빚고 있죠. 학생은 얼굴 뼈가 부러져 전치 12주 진단 받았는데 교사는 '당당한 목소리로' 슬쩍 뺨 한대만 때렸답니다. 이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입니다.

내가 다녔던 학교의 과잉 체벌

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창시절에 어이없는 체벌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가뜩이나 제가 다녔던 중, 고등학교가 남자학교인데다 지역에서도 소문난 '엄격한' 학교여서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빠져나와 대안학교로 가고 싶었을 정도 였습니다. 중, 고등학교가 서로 옆에 있는데다 같은 재단이라 선생들의 사고 방식이 비슷했던 겁니다. '학생들은 무조건 때려서 가르쳐야 한다', '무조건 많이 때리고 기합을 많이 줘야 학생들 성적이 많이 올라간다'는 식이었으며 그 효과(?)로 지역에서 이름난 명문 학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남자 학교에서 '날씬한' 막대기 들고 체벌하는 것은 '애교' 수준 입니다. 야구 방망이, 하키채, 각목, 빗자루, 대걸레, 싸리나무 등이 난무하는것은 물론이며 모 교사는 자신이 90년대에 역기로 학생들 얼굴 때린것을 자랑스럽게 말했을 정도 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학생들이 보이는 자리에서 30분 넘도록 엉덩이만 때리고 엎드려 뻗쳐 할때는 칠판에 발을 기대게 하더니 그 자리에 물과 압정까지 뿌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엉덩이 타작까지 들어갔으니 학생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으며 그 외에도 도를 지나친 체벌들(전교생 단체기합)이 더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과잉 체벌'이라 하죠.

그 악몽의 시작이 1997년이었던 중학교 1학년때 였습니다. 반편성 고사를 마치고 소속 반으로 배치될 때, 제가 있던 반에 40대 중반의 남자 체육 선생이 담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초등학교에서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분위기는 '긴장 모드'였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잠시 다른곳을 응시하더니, 그 선생이 갑자기 나오라며 뺨을 세게 때린 겁니다. 그 학생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자 그 선생은 '제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쌍욕을 1분 동안 퍼부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학생들과 선생의 악연은 이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공포의' 중간고사, 악몽 같았다 

그 선생이 강조한게 '중간고사 반 1등' 이었습니다. 성적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1m 길이의 싸리나무 회초리를 여러개 교실에 갔다 놓으며 필요시 엉덩이, 허벅지 앞과 뒷쪽, 손바닥, 등을 때렸습니다. 방과 후 '강제로' 자율학습 1~2시간 더 시킬때는 몇명의 학생들이 졸고 있으면 반 학생들에게 책상위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라며 허벅지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태도 불량 학생에게는 여러차례 뺨과 발길질을 하며 인정사정 없이 때렸고 칠판 위에 엎드려 뻗처시켜 그 자리에 물과 압정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선생은 중간고사 점수가 자기가 목표로 했던 점수보다 낮으면 회초리 타작은 물론, 학교에 올때마다 무조건 빨간 리본을 달아야 한다(많은 학생들에게 '공부 못했다'는 수치심을 안겨주기 위해서)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더욱이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니들 입학하기 전부터 계속 있었다'며 사실이었다고 말했으니 학생들이 공포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선생만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온갖 기합이 있었던 일부 학급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급에서는 야구 방망이 타작이 매일 있을 정도 였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들을 야구 방망이로 다스렸던 것이죠. 그 학급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뺨을 때리는 경우가 잦았고 기합까지 끊이지 않았을 정도 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학급이 시험에서 항상 1위를 달렸더군요.

이러한 분위기 속에 제가 속한 교실에 있는 학생들이 지쳐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학교 적응에 애를 먹었던 저는 '이런 분위기로는 학교 못다니겠다. 공부할 맛이 전혀 나질 않아'라며 목표 의식을 잃었죠. 초등학교때보다 더 많이 맞고 다니면서 생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제 마음속을 괴롭히더군요. 그래서 어떤 날에는 학교 상담실에 자주 다니며 상담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 할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반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10개 반 중에서 꼴찌였으니 담임 선생이 잔뜩 열 받아 체육 시간에 학생들에게 원산폭격을 시켰습니다. 땡볓이 기승을 부렸던 초여름 어느 한 낮에 운동장에서 머리를 박고 있으면서 갑자기 제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반 편성고사에 비해 성적이 많이 떨어져서 매를 많이 맞을것 같은 걱정이 생긴 것이죠. 전교 39등에서 199등으로 무려 160계단이나 떨어졌으니 공포심이 생긴 겁니다.

솔직히 매 맞기 싫었습니다. 학교 입학 이후 첫 중간고사인데 못볼 수도 있는 것이죠. 학교 적응도 잘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보 취급 받는게 그토록 싫었습니다. 중3때 성적이 전교 40~50위권 이었으니 당시의 성적 부진은 적응에 따른 문제였습니다.

과잉체벌, 상담 선생 도움으로 막았다

그래서 저를 잘 대해주시던 상담 선생을 찾아가 제가 처한 것을 이야기 해줬더니, '다행인지' 그 선생이 저희 담임과 절친해서 "학생들 때리지 말라고 이야기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체벌에 대해 바로 잡을건 반드시 잡아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선생이 2년 뒤 학교 교감으로 승진한 것을 보면, 교사들에 대한 영향력이 강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선생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편인데, 저는 '운 좋게' 잘 만났죠. 제가 상담실 찾은 사연을 다른 학생들에게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을 정도니 '믿을 수 있는 선생'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결국, 저는 한 대도 맞지 않았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 였죠.(지금 같았으면 매를 맞겠지만, 어렸을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담임 선생은 우리들이 중간고사를 못본것에 대해 원산 폭격 이후 단 한번도 기합과 체벌을 주지 않았습니다. 목표 점수 보다 못나오면 때리겠다는 것과 빨간 리본에 대한 말도 없었고 방과 후 자율학습까지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담임 선생은 도가 지나쳤던 체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른 학생들은 담임 선생이 달라진 원인을 모르고 있었지만요.

그러고도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성적이 너무 많이 떨어진 것은 둘째 치고 다른 선생님들이 저희 반에 와서 '꼴찌반'이라고 입버릇처럼 놀렸기 때문이죠. 심지어 어떤 선생은 '너희들 성적이 안좋으니까 담임 선생이 우리들(교사) 사이에서 무시 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머릿 속으로는 '나 때문에 담임 선생이 힘들겠구나'라며 자책감에 빠져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인간적인 미안함'이 스치더군요.

그 이후 저희 반 성적은 6~9위권으로 소폭 향상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선생은 다른 교사들에게 안좋은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을 참아내며 저희들에게 시험 못본 것에 대한 체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담임 선생도 알고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중학교 2학년과 3학년때도 자기 반 학생들에게 과잉 체벌을 하지 않았고, 무조건 때리는 것 보다 학생들과 서로 농담하며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담임이 제가 상담 선생을 만난 이후부터 '변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체벌하시던 담임 선생, 알고보니 좋은 스승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어느날 중1때의 담임 선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저에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

"고등학교에서는 학교 적응 잘 하고 있어? 별 탈 없이 학교 생활 했으면 좋겠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때는 미안했다.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

그 선생을 만난 것도 우연이었지만 이러한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런 가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진심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습니다. 그 선생이 '좋은 스승'이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죠. 이러한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데 사과를 하시더군요. 그보다는 저를 잊지 않았던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이후 상담 선생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말입니다. 상담 선생에게 찾아간 것이 담임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말 피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담임 선생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을 보면, 저는 정말 지혜롭게 과잉 체벌을 막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p.s : 중학교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매년 8~9cm였던 제 키가 중학교때 멈췄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반에서 키가 제일 컸는데 중2때 162cm였더니 지금은 164~165cm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많은 고생을 했던것이 성장판이 닫히는 결과로 이어졌던 겁니다. 지금까지 사회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에도 잘 버텨나갔던 원동력이 중학교때가 아닌가 싶네요. 199위까지 떨어졌던 성적도 40~50위권으로 향상시켰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