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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왜 풀럼에게 0-3으로 패했나?

 

"풀럼 수비는 매우 좋았으며 조직적이었다. 우리에게는 정말로 힘든 하루였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은 풀럼전 종료 후 MUTV를 통해 무수한 공격 기회 속에서도 골을 넣지 못했던 순간을 아쉬워 했습니다. 이날 맨유의 공격은 평소와 달리 무거웠으며 공수 밸런스가 무너진 상황속에서 어렵게 경기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인 패배였습니다.

맨유가 풀럼에게 일격을 맞았습니다. 맨유는 20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크레이븐 커티지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 풀럼 원정에서 0-3으로 패했습니다. 전반 22분 대니 머피에게 선제골을 내주더니 후반 시작 후 18초만에 바비 자모라에게 추가골을 내줘 패배의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후반 30분에는 데미언 더프에게 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지난 3월 22일 풀럼 원정 0-2 패배에 이어 또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리그 2위 자리를 간신히 지켰으나 선두 첼시가 21일 새벽 웨스트햄전에서 승리하면 승점 격차가 3점에서 6점으로 벌어질 것입니다. 반면에 풀럼은 맨유전 승리로 최근 프리미어리그 11경기에서 단 1패, 홈에서 열린 최근 6경기에서 5승1무를 기록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맨유, 풀럼전 0-3 패배는 '당연한 결과'

우선, 이날 경기는 선제골을 넣는 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이번 경기를 제외하고, 최근 두 팀이 맞붙은 5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팀이 그대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풀럼에는 머피라는 '맨유 킬러'가 있었습니다. 리버풀과 찰튼, 토트넘, 풀럼에서 활약했던 베테랑 미드필더인 머피는 지금까지 맨유전에서 4골 넣었는데(이번 경기 제외) 모두 결승골 이었습니다. 머피가 맨유전에서 골 넣으면 여지없이 머피 소속팀의 승리로 이어졌으니 그야말로 '머피의 법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 머피의 법칙이 또 다시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머피는 전반 22분 스콜스가 중원에서 소유하던 공을 직접 빼앗아 맨유 진영쪽으로 돌진하자마자 오른발 강슛을 날려 맨유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머피의 골은 경기 초반 분위기를 장악했던 맨유의 기세를 흔들고 풀럼이 공수 전력에서 힘을 얻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경기 종료 후 MUTV를 통해 "첫 번째 골은 너무 쉽게 내주었다. 그로 인해 풀럼이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고 인정한 것 처럼 머피의 골은 맨유에게 큰 치명타가 됐습니다.

문제는 이날 경기에서 머피에게 공을 빼앗긴 스콜스가 고전했다는 점입니다. 스콜스는 이날 경기에서 대런 깁슨과 함께 3-4-1-2의 더블 볼란치를 맡아 무난한 패싱력을 발휘했으나 상대에게 쉽게 공간을 허용하는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상대 공격 길목을 빠르게 읽지 못해 수비 위치가 전반적으로 매끄럽지 못했고 이는 풀럼의 역습에 휘말리는 원인이 됐습니다. 맨유의 중원이 경기 내내 흔들렸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전반 6분 이른 시간에 더프에게 거친 태클을 가해 경고를 받았던 것도 수비 상황에서 소극적인 임무에 치중하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지난 3월 풀럼 원정에서 전반 18분에 퇴장당했던 악몽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머피에게 골을 내줬던 배경은 스콜스 부진 뿐만이 아닙니다. 맨유 수비가 경기 초반부터 상대에게 역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내줬기 때문입니다. 이날 맨유는 경기 초반부터 에브라를 미드필더진으로 올리는 3백을 구사했습니다. 에브라는 왼쪽 윙백으로서 적극적인 수비가담보다 상대 왼쪽 골문에서 공을 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제는 에브라가 너무 윗쪽에 포진하면서 드 라예의 수비 공간이 커졌습니다. 이를 커버하기 위해 스콜스가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했지만 수비 범위가 커지다보니 상대 미드필더들에게 역습 공간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머피에게 골을 내줬습니다.

맨유의 3백 전환도 실패작 이었습니다. 비디치가 종아리 부상이 회복되지 못해 풀럼 원정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 이날 경기의 패배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맨유는 비디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드 라예-캐릭-플래처로 짜인 3백으로 경기를 시작했으나 문제는 세 명 모두 전문 센터백 자원이 아닙니다. 드 라예는 풀백, 캐릭과 플래처는 중앙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인 선수들 입니다. 평소와 다른 역할을 맡은 이들의 3백 조합은 수비 과정에서 끈끈한 호흡을 기대할 수 없었던 원인이 됐습니다.(한국 대표팀으로 치면 2~3년전에 김상식-김동진을 4백 센터백 조합으로 세운것과 똑같은 현상이죠.) 그래서 커버 플레이 미숙으로 상대 공격에 대처하는 반응이 늦었고 압박의 세기도 느슨했습니다.

수비 불안에 시달렸던 맨유는 공격에서 어려움을 겪고 말았습니다. 수비가 불안하면 미드필더들의 수비 부담이 커지고 공격수들이 고립되는 축구 전술의 공식이 맨유의 부진으로 고스란히 연결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날 경기에서 투톱 공격수로 기용되었던 오언-루니는 평소답지 않게 공격 과정에서 힘든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언은 좁은 공간에서 상대 수비수를 제칠 수 있는 과감함이 부족했고 루니는 미드필더들의 들쭉날쭉한 공격 지원속에 결국 미드필더진으로 수비 가담하면서 많은 볼 터치를 기록했으나 상대 진영에서 골을 노리는 비중이 적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슈팅 숫자에서 16-11(유효 슈팅 2-6)으로 앞섰고 점유율에서 59-41(%)로 우세를 점했습니다. 패스에서는 548-361(개)를 기록해 상대팀보다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럼에도 풀럼에게 무득점 3실점 패배를 허용한 것은 불안한 수비력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이렇다보니 공격 옵션들이 공격 루트를 개척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먼 거리에서 슈팅을 날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맨유가 풀럼보다 많은 슈팅을 날렸음에도 유효 슈팅이 떨어진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비디치의 부상 공백과 더불어 아쉬웠던 것은 플래처가 중원에 없다는 점입니다. 플래처가 맨유 수비수들의 줄부상때문에 수비수로 내려가다보니 중원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플래처가 풀럼전에서 미드필더를 맡았다면 중원에서 안정적으로 공을 지키면서 전방쪽을 향해 정확한 패스를 활발히 연결했을 것이며 중원에서의 압박과 커팅에 이은 빠른 빌드업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맨유의 현 스쿼드에서는 플래처 이외에는 이러한 안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미드필더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지난 13일 아스톤 빌라전 0-1 패배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맨유는 아스톤 빌라전에서도 공격적인 분위기 속에서 경기에 임했으나 중원에서 상대의 빠른 역습에 흔들렸고 이는 아그본라허에게 결승골을 허용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아스톤 빌라전에서 '캐릭-안데르손' 더블 볼란치 조합이 수비에서 무너졌다면 풀럼전에서는 스콜스가 플래처 역할을 대신 맡았으나 아스톤 빌라전 패배 과정을 반복하고 말았습니다. 플래처를 수비수로 전환시킨 맨유의 경기 운영은 아스톤 빌라와 풀럼전에서 공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긱스의 결장도 아쉬웠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공격적인 역할을 맡았던 안데르손-깁슨-발렌시아는 전방쪽을 향해 부지런히 공격을 전개하지 못했고 상대 수비를 뒤흔들 수 있는 임펙트도 부족했습니다. 특히 안데르손과 깁슨은 전진패스가 아닌 횡패스가 많았으며 지나치게 대각선 패스에 치중했습니다.(반면에 머피는 전진 패스 위주의 공격으로 풀럼의 빠른 역습을 주도했습니다.) 만약 긱스를 3-4-1-2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진시켰다면 경기 내용 및 결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결국 맨유는 여러가지 패인에 시달린 끝에 0-3으로 무너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