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에서 맨유와 상대하고 싶다. 2003년 맨유를 떠난 뒤 한 번도 올드 트래포드에서 뛰지 못했다"
2003년 여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데이비드 베컴(LA 갤럭시)이 지난 16일 해외축구 사이트 <ESPN 사커넷>에서 했던 말입니다. 베컴은 오는 1월 AC밀란에 재임대되는 선수로서 2009/1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경기에 뛸 수 있습니다. 베컴이 활약할 AC밀란의 16강 상대는 '베컴이 붙고 싶다던' 맨유로 결정 되었습니다.
맨유와 AC밀란이 내년 2월 2009/10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고 말았습니다. 4강이나 8강에서 맞부딪치는 게 어울린 매치업이지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피할 수 없는 혈투를 벌이면서 꽤나 일찍 만났습니다. AC밀란과 맨유는 각각 2006/07시즌, 2007/08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했던 팀들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불허 입니다.
또한 '퍼거슨vs베컴', 2003년 맨유로 이적할 뻔했던 호나우지뉴, 2005년 봄에 AC밀란을 상대로 골을 터뜨렸던 박지성의 맹활약 여부까지 많은 이슈들이 쏟아질 예정입니다. 그래서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18일(이하 현지시간) 정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8강과 4강에서 AC밀란을 많이 상대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이번 두 팀의 격돌은 또 한번 환상적인 경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많이 기다려진다"고 밝혔습니다. 그야말로 '신이 허락한 기막힌 매치'입니다.
통계상으로는 AC밀란의 우세, 하지만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맨유와 AC밀란은 유럽 대회에서 8번 맞붙었습니다. AC밀란이 맨유에 8전 5승3패의 우세한 전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홈&어웨이 제도로 열리는 유럽 대회에서는 AC밀란이 항상 맨유를 제치고 다음 토너먼트에 진출했습니다. 지금까지 유럽 대회에서 AC밀란을 탈락시킨 잉글랜드 클럽은 5팀으로서 아스날, 첼시, 토트넘,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가 있으며 맨유는 AC밀란을 탈락시킨 적이 없습니다. 통계상으로는 AC밀란이 맨유보다 우세합니다.
특히 AC밀란은 맨유와 이탈리아에서 맞붙은 4경기에서 모두 이겼으며 그것도 무실점 승리로 다음 토너먼트 대회에 진출했습니다. 또한 잉글랜드 클럽을 상대로 13번의 홈 경기를 치르면서 7승5무1패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06/07시즌 맨유와의 2차전에서 3-0 완승을 거두기 전까지 무패를 기록했으나 2007/08시즌 아스날과의 16강 2차전에서 파브레가스-아데바요르에게 무너져 0-2로 패했지만 잉글랜드 팀에 강한 전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AC밀란이 통계적으로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맨유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이탈리아 클럽과 16차례 경기를 치렀으며 12승2무2패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05년 2월 AC밀란에게 패한 이후 이탈리아 클럽과 4번 맞붙어 모두 승리했습니다. 맨유는 산 시로에 약하지만 올드 트래포드에서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맨유와 AC밀란의 16강 1차전은 산 시로, 2차전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립니다. 맨유는 1차전에서 비기는 작전에 초점을 모을 것이고 2차전에서 승부를 걸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시즌 인터 밀란과의 16강전에서는 1차전을 수비쪽에 무게를 맞추면서 2차전에서 승부를 내는 전략이 그대로 적중해 8강 진출에 성공한 경험을 되살릴 것입니다. 무엇보다 2차전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다는 점은 맨유가 AC밀란을 처음으로 유럽 대회에서 탈락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차전에서 실점을 헌납하면 원정 다득점에 의해 AC밀란이 유리할 수 있음을 맨유가 인지해야 합니다.
맨유와 AC밀란의 약점은?
맨유와 AC밀란 전술의 공통점은 두 팀 모두 미드필더진에서의 점유율을 높이며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맨유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지난 여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역습에서 점유율 축구로 전술을 바꿨으며 AC밀란은 안첼로티 체제 시절부터 점유율 축구를 즐겨 구사했습니다. 맨유에서는 긱스-베르바토프가 동료 선수들에게 골 기회를 연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AC밀란에서는 호나우지뉴가 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팀의 점유율 축구 속에서는 약점이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맨유는 호날두의 공백을 점유율 축구로 메웠고 미드필더들의 득점도 늘어났지만 파괴적인 드리블러의 존재감이 아쉽습니다. 호날두처럼 승부의 고비때마다 상대 수비를 흔들며 팀의 골을 엮어낼 수 있는 선수가 없습니다. 카를로스 테베즈(맨체스터 시티)처럼 전방 압박을 할 수 있는 공격 옵션도 부족합니다. 올 시즌의 맨유는 공격 옵션들이 역습 스타일을 버리면서 전방 압박에 대한 비중을 줄였지만 그보다는 압박을 펼칠 적임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팀의 빌드업을 여지없이 허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C밀란은 공격진이 불안합니다. 알렉산더 파투를 제외하면 믿을만한 옵션이 없기 때문입니다. 호나우지뉴는 지난 시즌보다 폼이 부쩍 오른 모습을 보였고 꾸준히 골을 넣었지만 FC 바르셀로나 시절의 파괴력에 미치지 못하며 움직임이 떨어지고 활동 폭도 제한적입니다. 클라스 얀 훈텔라르는 먹튀로 전락했고 최근에는 백업 공격수였던 마르코 보리에로의 선발 출전이 잦아졌습니다. 시도르프-피를로-암브로시니로 짜인 미드필더진은 모두 30대 선수로서 맨유의 빠른 기동력에 대처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백업 멤버인 젠나로 가투소, 임대 선수로 뛸 베컴도 30대 선수들입니다.
또한 두 팀은 수비진이 붕괴 됐습니다. 맨유는 퍼디난드-오셰이를 비롯해서 백업 수비수들까지 줄부상으로 신음중이며 주전 골피커였던 에드윈 판 데르 사르도 마찬가지 입니다. AC밀란과 맞붙을 내년 2월이면 수비수들이 부상에서 돌아올 예정이지만 부상 이전의 폼을 되찾을지는 의문입니다. AC밀란은 좌우 풀백들이 문제입니다. 잠브로타-오또-칼라제-얀클로프스키 같은 풀백들은 예전보다 폼이 부쩍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공수 양면에서 팀 전력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습니다. 네스타-실바로 짜인 센터백들도 고비때마다 집중력이 흔들려 여지없이 실점을 헌납하는 장면이 잦았습니다.
퍼거슨vs베컴, 긱스vs호나우지뉴...박지성 활약 여부는?
맨유와 AC밀란의 경기가 주목을 끌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퍼거슨 감독과 베컴의 재회가 전격 성사되기 때문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2002/03시즌 FA컵 아스날전에서 패한 뒤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격분하더니 축구화로 베컴의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이것은 베컴이 맨유를 떠나는 발단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지난날의 일을 서로 화해하여 예전의 친분했던 관계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베컴은 지난 2월 인터 밀란 원정을 앞둔 맨유 선수단을 방문해 퍼거슨 감독 및 긱스-스콜스-네빌 같은 예전의 동료 선수들과 만나며 친분을 나누었습니다.
베컴은 2003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이후 지금까지 맨유와 경기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AC밀란 재임대를 앞둔 지금은 맨유전 승리를 향한 집념을 불태워야 합니다. 과거에는 감각적인 오른발 프리킥으로 맨유를 위해 골을 넣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발끝으로 맨유 골문을 흔들게 됐습니다. 만약 베컴이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를 맡을 경우 세계 최고의 왼쪽 풀백인 파트리스 에브라와 매치업을 벌이며 중앙에 포진하면 옛 동료 였던 폴 스콜스와 공을 다투는 모습이 자주 벌어질 것입니다.
긱스와 호나우지뉴의 맞대결도 주목됩니다. 두 선수는 올 시즌 부활의 꽃을 피운 선수들로서 맨유와 AC밀란 점유율 축구의 완성도를 높이는 공격 연결고리 입니다. 어느 선수가 팀의 골 과정에서 직접적인 관여를 많이 하느냐에 따라 맨유와 AC밀란의 희비가 엇갈릴 가능성이 큽니다. 한때 유럽 축구에서 화려한 개인기와 빠른 주력, 과감한 슈팅으로 지구촌 축구팬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이들의 만남은 많은 이들을 설레게 할 것입니다. 특히 호나우지뉴는 2003년 맨유에 입단할 뻔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올드 트래포드 방문이 색다를 수 있습니다.
박지성의 활약 여부도 주목됩니다. 박지성은 2005년 봄에 PSV 에인트호벤 소속으로서 AC밀란과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맞붙었으며 당시 1~2차전 모두 놀라운 활약을 펼쳐 지구촌 축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4강 2차전에서 넣은 선제골은 맨유에 입단할 수 있었던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그동안 강팀과의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던 박지성이 AC밀란전을 계기로 자신의 명성을 화려하게 드높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