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축구 여론이 주의깊게 눈여겨 보는 대표적 이슈가 바로 두 가지 입니다.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 그리고 '블루 드래곤' 이청용(21, 볼튼)의 활약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두 선수의 올 시즌 행보가 말해주는 것 처럼, 두 선수를 향한 여론의 반응은 대조적입니다.
박지성은 올 시즌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대표팀 차출로 인한 컨디션 저하와 무릎 부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적으로 인한 맨유의 전술이 역습에서 점유율 축구로 변하면서 최상의 경기력을 꾸준히 발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라이언 긱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으며 지난 13일 아스톤 빌라전 종료 후에는 <스카이 스포츠>로 부터 "개성 없었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은것이 빌미가 되어 국내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언론으로부터 '패배의 아이콘', '패배의 상징'이라는 수식어로 불릴 정도로 가혹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청용은 다릅니다. 최근 급상승한 활약을 펼쳐 볼튼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울버햄튼-맨시티-웨스트햄으로 이어졌던 최근 3경기에서는 볼튼 선수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친것을 비롯 공격의 젖줄로 맹위를 떨쳤습니다. 웨스트햄전에서는 시즌 3호골을 터뜨려 게리 맥슨 감독으로부터 "볼튼의 올 시즌 최고의 골이었다"는 찬사를 받았고 <스카이 스포츠>로 부터 양팀 선수 평점 1위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볼튼이 기록한 4승 중에 3승이 이청용이 골 넣은 경기여서 그는 국내 언론으로부터 '승리의 아이콘' 이라는 찬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두 선수가 같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자연스럽게 국내 언론의 비교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박지성과 이청용의 활약상을 따로 보도하는 것도 좋지만 오히려 함께 비교하면 많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모 스포츠 신문 창간 특집에서는 마치 펠레와 마라도나를 비교하는 것 처럼 박지성과 차범근 수원 감독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으며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물론 라이벌 구도를 만들고 띄우는 것에 있어 언론의 힘이 큽니다.
그러나 박지성과 이청용의 비교는 도를 넘은 것이 분명합니다. 두 선수와 관련된 언론의 제목들은 이러합니다. <3호골 이청용, 공격력만큼은 박지성을 능가>, <이청용, 박지성의 EPL 한 시즌 최다골 넘을까>, <이청용, 박지성을 능가하는 EPL 적응 속도>, <이청용, 박지성 뛰어넘을까?>, <이청용 "하하하" 박지성은 "..."> 그 외 등등 박지성을 비교하며 이청용을 띄웠습니다. 박지성의 안좋은 부분을 언급하고 이청용의 좋은 부분을 언급한 것이죠. 그 과정에서는 자극적인 제목을 지으며 이청용을 살리고 박지성을 안좋게 다룬것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교가 씁쓸한 이유는 언론이 박지성을 비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그동안 박지성이 최소 2경기 정도 결장할 때 마다 항상 팀 내 입지를 거론하며 '박지성 위기론'을 보도했습니다. 최근에는 '박지성이 수비수라면 맨유를 떠나야 한다', '박지성, 이대로는 안된다', '박지성은 패배의 아이콘'과 같은 언론 보도까지 등장하면서 박지성의 자존심을 긁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표팀의 어린 후배인 이청용을 비교하며 박지성 경기력에 대한 안좋은 점을 부각시킵니다.
하지만 박지성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청용과의 비교는 듣기 싫을지 모를 일입니다. 외부에서 '누구는 잘하는데 너는 왜 이러냐?'와 같은 비교를 당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입장에서는 듣기 좋겠습니까. 이것은 "옆집에 중학교 1학년짜리 동생은 공부를 잘하는데 너는 3학년이면서 왜 이렇게 못해?", "이등병은 군대 적응 잘하는데 너는 상병이면서 아직도 이 모양이야?"와 다를 바 없는 비교입니다. 그런 비교가 해외에서 맹활약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쓰여지면서 한 선수를 가혹하게 다루는 언론의 보도는 위험합니다.
특히 공격력은 박지성과 이청용의 주된 비교 대상입니다. 박지성이 긱스-발렌시아 처럼 꾸준히 골과 도움을 기록하지 못한데다 무언가의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 맨유에서의 입지가 계속 불안할 것이라는 것이 그 요지죠. 반면에 이청용은 지속적인 골과 도움을 기록하며 볼튼의 에이스로 도약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볼튼의 공격 색깔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로테이션 시스템의 일환으로 몇몇 경기를 거르며 출전하는 박지성이 붙박이 주전을 보장받은 이청용과의 비교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두 선수 공격력에 대한 언론의 비교는 잘못 되었습니다. 박지성은 동료 선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공간을 창출하여 팀의 새로운 득점 루트를 개척하고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여 공격수들의 수비 부담을 덜었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이타적인 경기력은 맨유에서 전형적인 팀 플레이어로 활용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완벽한 팀 플레이어"라고 칭찬한 바 있습니다. 또한 현지 언론으로부터 '이름 없는 영웅', '수비형 윙어'라는 수식어를 받으며 조연에 대한 이미지가 부각 됐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웨인 루니 같은 맨유의 주연들과 달리 많은 주목을 받기 어려우며 그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반면에 이청용은 볼튼 공격의 중심입니다. 기존 에이스였던 공격수 케빈 데이비스가 올 시즌 골 부진에 시달리고 왼쪽 윙어 메튜 테일러의 폼도 지난 시즌보다 떨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청용이 측면 공격의 활력소로 거듭나면서 팀의 공격을 이끄는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동료 선수들의 공격 지원을 받아 자신이 직접 골을 해결짓거나 또는 상대 문전 부근에서 정교한 패스로 동료 선수의 골 기회를 마련하여 단조로운 공격력을 일관하던 볼튼의 축구 스타일을 바꾸는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이청용은 볼튼의 주연이며 앞으로도 더 많은 골과 도움을 생산할 것이 분명합니다.
'맨유의 조연' 박지성과 '볼튼의 주연' 이청용의 공격력 비교가 적절치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주연을 도와주는 선수가 이청용은 팀의 주연으로서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팀 내에서의 공격 역할이 서로 다른 두 선수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며 이청용의 공격력을 띄우며 박지성의 공격 포인트 등을 어김없이 거론하는 비교 또한 매끄럽지 못합니다. 이러한 비교는 프로야구로 치면 선발 투수와 중간 계투의 승패 기록을 따지는 것이고 프로농구에서는 슈터와 궂은 일을 도맡는 선수의 득점 기록을 비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박지성은 맨유, 이청용은 볼튼 선수입니다. 맨유는 세계 최정상급의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하나의 팀을 형성했고 볼튼은 그 아래입니다. 특히 볼튼에서는 비디치-파브레가스-에시엔-레이나 같은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또한 볼튼의 축구는 이청용 영입 전까지 후방에서 전방으로 롱패스를 띄우는 '뻥축구' 스타일 때문에 현지 팬들의 비판을 받던 팀입니다. 맨유와 볼튼의 클래스는 엄연히 다른데 박지성과 이청용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이 맨유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청용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가능했을까요? 만약 박지성이 실패했다면 한국인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다섯 시즌 동안 뛰고 있으며 불과 지난 시즌까지 주전으로 뛰었습니다. 그래서 현지 축구 전문가들은 박지성의 성실성을 인정했고 이것은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이 한국인 선수들에 관심을 가지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두 선수에 대한 비교가 활발해지면서 박지성이 그동안 피땀흘리며 얻었던 가치는 점점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지성과 이청용의 비교가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