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안방에서 아스톤 빌라에게 패했습니다. 지난 26년 동안 올드 트래포드에서 아스톤 빌라에 패한 적이 없었던 맨유의 위용은 90분 내내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맨유는 13일 오전 2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6라운드 아스톤 빌라전에서 0-1로 패했습니다. 전반 20분 가브리엘 아그본라허에게 헤딩 결승골을 허용해 패배의 쓴잔을 마셨습니다. 맨유는 아스톤 빌라전 패배로 에버튼과 3-3으로 비긴 선두 첼시와의 승점 차이가 2점에서 3점으로 벌어졌습니다. 만약 아스톤 빌라를 꺾었다면 첼시와 승점 동률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맨유, 26년 만에 홈에서 아스톤 빌라에 패한 이유

우선, 맨유는 지난 26년 동안 올드 트래포드에서 아스톤 빌라에 패한적이 없었습니다. 2000년대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스톤 빌라에게 단 4실점만 허용했고 2007-08시즌 아스톤 빌라와의 3경기에서(FA컵 포함) 총 10골을 넣었던 전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아스톤 빌라에 강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맨유의 승리 가능성이 높았던 이유는 아스톤 빌라가 올 시즌 원정 경기 성적이 안좋았기 때문입니다. 7번의 원정 경기에서 2승3무2패를 기록했는데 홈 경기에서 5승2무1패를 거두었던 성적과 대조되며 최근 5경기 연속 원정 무승(3무2패)에 시달렸습니다. 원정에서 승운이 따르지 않는 상항에서 맨유와 올드 트래포드에서 만난것은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이 이번 경기에서 그대로 증명 되었습니다. 맨유가 전술 흐름 및 경기 결과 모두 아스톤 빌라에게 패했습니다. 맨유는 아스톤 빌라전에서 슈팅 19-8(유효 슈팅 4-3), 점유율 68-32(%), 패스 시도 592-239(개), 패스 성공 496-174(개), 패스 정확도 83.8-72.8(%)를 기록해 상대팀보다 우세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패스 시도 및 성공 횟수는 상대팀보다 약 2.5배 더 많았을 정도로 우세한 점유율 속에서 무수한 패스를 연결했습니다. 그럼에도 무득점 패배했다는 것은 전술적으로 문제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맨유는 아스톤 빌라전에서 4-2-3-1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쿠쉬착을 골키퍼, 에브라-비디치-브라운-플래처를 포백, 안데르손과 캐릭을 더블 볼란치, 박지성과 발렌시아를 좌우 윙어, 긱스를 공격형 미드필더, 루니를 원톱에 배치했습니다. 지난 프리미어리그 두 경기에서 4-2-3-1 효과로 다득점 승리를 거두면서 이번에도 같은 포메이션을 활용했고 긱스를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시켜 박지성의 선발 출전 기회를 열어줬습니다. 이것은 긱스의 공격 역량을 최대화 시켜 루니의 득점력을 끌어올리고 박지성과 발렌시아가 측면에서 긱스를 보조하는 것이 맨유의 의도 였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경기 초반부터 긱스쪽에 쏠리는 패스 전개를 적극적으로 구사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전은 아스톤 빌라에 읽혔습니다. 맨유의 공격이 그동안 긱스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대팀 입장에서는 긱스를 견제하기 위한 방법에 골몰했습니다. 그런데 긱스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아스톤 빌라의 긱스 견제가 손쉬워졌습니다. 중앙은 측면보다 압박의 세기가 두껍기 때문에 수비 밸런스를 튼튼히 구축하면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아스톤 빌라는 '다우닝-페트로프' 중앙 미드필더 조합과 포백 사이의 간격을 좁혀 긱스의 공격 길목을 막아내고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만약 긱스가 왼쪽에서 뛰었다면 오른쪽 풀백인 루크 영 혼자서 견제하는 버거움이 있었죠.

그래서 맨유는 아스톤 빌라의 수비 위주 움직임에 의해 점유율을 확보했지만 긱스의 부진으로 공격 작업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긱스의 패스를 활용한 2차 공격이 상대의 압박에 막혀 진행되지 못하면서 공격 마무리가 떨어지고 상대의 빠른 역습을 허용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은 실점의 빌미로 이어졌죠. 여기에 안데르손-캐릭과 박지성-긱스-발렌시아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밸런스가 무너지는 문제점까지 벌어졌습니다. 특히 안데르손의 경기 장악력 부족은 긱스의 부진을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맨유는 긱스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전반 중반에 박지성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했습니다. 박지성이 왼쪽에서 정확한 패스 연결과 부지런한 공간 창출로 팀 공격의 물꼬를 트다보니 중앙에서도 자연스럽게 잘 풀릴거라 생각한 것이 퍼거슨 감독의 의도 였습니다. 박지성은 중앙에서 루니-발렌시아와의 간격을 좁혀 공격 연결고리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중앙 압박이 거세다보니 박지성의 패스를 받은 루니와 발렌시아가 더 이상 최전방쪽으로 전진할 수 없었고 여러차례 공을 빼앗기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후반 시작과 함께 긱스를 빼고 오언을 투입해 4-2-3-1에서 4-4-2로 전환했습니다. 상대의 중앙 압박이 견고한 상황에서 4-2-3-1은 더 이상 무리였다는 것이 퍼거슨 감독의 판단이었죠. 여기까지는 퍼거슨 감독의 선택이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아스톤 빌라에 0-1로 뒤진 상황을 역전하기 위해 '골 넣을 수 있는' 후보들을 조커로 투입 시켰습니다. 후반 시작과 함께 오언을 투입했고 17분에는 베르바토프, 22분에는 깁슨이 교체 투입했습니다.

특히 후반 17분 상황이 문제였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부지런한 활약을 펼쳤던 박지성을 빼고 베르바토프를 투입한 것과 동시에 루니를 왼쪽 윙어에 배치했습니다. 루니-베르바토프-오언-발렌시아가 확실하게 골을 넣을 수 있는 자원들이기 때문에 박지성을 빼도 문제 없다는 것이 퍼거슨 감독의 생각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잘못 되었습니다. 맨유는 박지성이 빠지면서 공격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줄었습니다. 루니는 측면 미드필더로 옮기면서 중앙에서의 역동적인 활약이 사라졌고 발렌시아는 체력 저하 때문인지 전반전보다 움직임이 무뎌졌습니다. 이렇다보니 베르바토프-오언은 미드필더들의 소극적인 지원속에 최전방에 동반 고립 되었습니다.

박지성은 골을 잘 넣는 선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동료 선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공격 과정에서 이타적인 역량에서 힘을 실어주는 선수입니다. 아스톤 빌라전에서는 안데르손과의 2대1 패스를 성공시킨것을 비롯 대각선 패스, 전진 패스 등 공격 연결이 매끄러웠고 30개의 패스 중에 5개만 미스를 범했을 뿐입니다. 상대의 두꺼운 수비 속에서도 끊임없이 공간을 창출했으며 이것은 맨유가 박지성 교체 이전까지 경기 흐름을 유리하게 끌고 갔던 원인이 됐습니다. 그러나 박지성을 빼면서 공격 옵션 어느 누구도 희생하지 않다보니 공격의 위력이 반감되는 역효과가 벌어졌습니다.

만약 맨유가 박지성을 대신해서 오베르탕을 투입했다면 경기 판도는 달랐을지 모릅니다. 오베르탕은 조커로 투입 되었던 지난 9일 볼프스부르크전 2도움에서 증명되었던 것 처럼 짧은 시간안에 팀의 공격 분위기를 끌어올려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리는 파괴력이 있습니다. 아직 맨유에서 골을 넣지 못했지만 전형적으로 상대 수비를 흔드는 타입이기 때문에 아스톤 빌라 같은 상대에 유리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너무 골에 집착하면서 골 넣을 수 있는 옵션들만 조커로 기용했습니다. 박지성을 끝까지 기용했거나 아니면 오베르탕을 투입했다면 경기 내용이 나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