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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첼시&맨유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A매치 데이를 끝내고 장기 레이스 일정에 돌입했습니다. 특히 첼시-아스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선두권 경쟁은 일부 주축 선수들이 A매치 데이 기간에 부상 당하면서 전력 약화가 예상 됐습니다. 그러더니 이번 13라운드에서 세 팀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첼시와 맨유는 각각 22일 새벽 0시와 2시 30분(이하 한국시간)에 열린 울버햄튼,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4-0, 3-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두 팀 모두 경기 초반부터 높은 점유율을 앞세워 상대 진영을 조였고 그 흐름은 경기 종료까지 계속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팀의 골은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들이 해결했습니다. 첼시는 말루다-에시엔(2골)-조 콜이 4골 승리를 이끌었고 맨유는 플래쳐-캐릭-발렌시아가 골을 넣었습니다. 부상 선수들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경기 내용에서 나무랄 것이 없었습니다.

반면 아스날은 첼시와 같은 시간에 열린 선더랜드전에서 0-1로 패하면서 3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그동안 골 넣는 공격축구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던 아스날의 선더랜드전 무득점은 그동안의 행보와 대조적입니다. 선두 첼시를 추격해야 할 아스날로서는 선더랜드전 패배가 아쉽게 느껴집니다. 판 페르시-벤트너 같은 공격 자원들이 부상으로 빠지고 안드리 아르샤빈이 사흘 전 A매치 데이 출전으로 인한 체력 약화로 공격의 무게감이 약해진 것이 선더랜드전 패인입니다. 판 페르시-벤트너의 결장 기간이 적지 않음을 상기하면 내림세가 우려됩니다.

아스날과는 반대로 첼시와 맨유는 13라운드 승리를 통해 오름세를 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일부 주축 선수들의 부상 속에서도 승리했다는 점은 앞으로의 경기에서 좋은 기세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특히 두 팀이 2004/05시즌 이후 5시즌 중에 4시즌을 사이좋게 1~2위를 기록했음을 상기하면 올 시즌에도 치열한 선두권 및 리그 우승 경쟁을 펼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두 팀이 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꾸준함은 올 시즌에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만약 첼시와 맨유 전력에 있어 꾸준함이라는 키워드가 없었다면 13라운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스날처럼 일부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휘청거리거나 혹은 평소답지 못한 경기 운영을 펼쳤겠죠. 하지만 첼시와 맨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키워드가 내제되어 있습니다.

바로 살림꾼입니다. 첼시는 램퍼드-발라크의 부상으로 팀 전력의 근간인 다이아몬드가 파괴 될 위기에 있었으나 마이클 에시엔의 건재속에 울버햄튼을 제압했습니다. 에시엔은 평소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오른쪽 미드필더로서 발라크의 역할을 대신 맡아 공수 양면에서 특유의 부지런함을 발휘했습니다. 악착같은 수비 능력과 공간 장악, 적극적인 공격 가담에 의한 2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에시엔을 대신해서 중원을 맡은 존 오비 미켈은 궃은 역할을 척척 소화함과 동시에 경이적인 패싱력으로 팀 승리의 숨은 주역이 됐습니다.

에시엔과 미켈의 울버햄튼전 패스 정확도는 각각 85.2%(61개 시도 52개 성공) 93.1%(72개 시도 67개 성공) 입니다. 이것은 첼시가 효율적인 공격 전개에 따른 점유율 향상으로 공격적인 축구를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흔히 살림꾼하면 수비만 잘하는 미드필더를 떠올리기 쉽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중원 옵션들의 패싱력과 공간 활용 능력이 우선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특히 공격 전개가 중요시되는 현대 축구의 흐름에서는 에시엔과 미켈 같은 공수 능력이 모두 뛰어난 살림꾼이 인정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허정무호에서 김남일이 인정받는 이유도 이와 일치합니다.)

사실, 에시엔과 미켈은 포지션 경쟁자입니다. 에시엔은 개인의 실력과 움직임, 임펙트, 집중력, 경험에서 미켈을 앞서면서 지금까지 첼시의 살림꾼 노릇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하지만 동료 미드필더가 결장하면 두 선수는 경쟁에서 공존 관계로 변합니다. 에시엔이 중원뿐만 아니라 좌우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무리뉴 체제에서는 센터백, 오른쪽 풀백까지)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기 때문에 결장 선수의 공백을 메우고 미켈이 중원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첼시는 에시엔과 미켈 덕분에 다이아몬드의 철옹성 위용을 뽐낸 것입니다.

첼시에 에시엔과 미켈이 있다면 맨유는 대런 플래쳐가 있습니다. 플래쳐는 에버튼전에서 마이클 캐릭과 함께 공수의 중심 역할을 맡으면서 경기를 조율했습니다. 그는 수비 상황에서는 캐릭보다 밑에 처지면서 에버튼 선수들보다 좋은 위치를 선점한 뒤 상대의 공격 길목을 미리 차단하고 압박 상황에서 높은 집중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퍼디난드-에반스-오셰이-파비우 같은 수비 자원들의 부상 속에서도 플래쳐의 튼튼한 수비력을 앞세워 무실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플래쳐는 맨유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 공격 전개 능력이 가장 뛰어납니다. 중원에서 공을 커트하거나 동료 선수로부터 공을 받으면 그 즉시 전방 옵션 또는 상대 수비 공간이 뚫려있는 쪽으로 공을 띄우며 팀의 빌드업을 주도합니다. 정확한 패싱력과 뛰어난 볼 센스, 넓은 시야, 지능적인 경기 운영, 4-4-2의 중앙 미드필더로서 버틸 수 있는 넓은 활동량을 십분 발휘하며 맨유의 공격을 주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맨유는 플래쳐가 포진한 중앙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여러 형태의 패스를 빠르게 이어나가며 높은 볼 점유율을 확보하여 공격적인 경기를 펼칩니다.

플래쳐의 에버튼전 패스 정확도는 93.2%(73개 시도 68개 성공) 입니다. 맨유 미드필더들 중에서 가장 높은 패스 정확도와 패스 시도를 기록했고 이날 경기에서 전반 35분 멋진 발리슛으로 선제골까지 넣으며 팀 승리의 주역으로 거듭났습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수비력까지 포함하면 이날 경기에서 만능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플래쳐의 맹활약 속에 폴 스콜스의 체력 저하 문제를 뒤덮을 수 있는 명분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살림꾼의 존재감은 현대 축구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리버풀과 아스날이 각각 사비 알론소, 마티유 플라미니의 이적 이후 중원에서의 수비력과 공격 전개가 매끄럽지 못했던 것 처럼 살림꾼은 팀의 전력 및 성적까지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입니다.(플라미니의 아스날은 지난 시즌을 말합니다.) 에시엔과 미켈, 그리고 플래쳐가 앞으로도 꾸준한 오름세를 발휘하면 첼시와 맨유는 거듭된 순항을 할 것입니다. 든든한 살림꾼을 보유한 첼시와 맨유가 무너저지 않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