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투소' 조원희(26, 위건)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엄청난 활동량과 빠른 순발력을 자랑하는 선수입니다. 지난 2007년 여름 풀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환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앞세운 악착같은 수비로 상대 중앙 공격을 무너뜨려 수원의 로테이션 플레이어에서 미드필더진에 없어선 안 될 존재로 부각 되었습니다. 그래서 센터백으로 활약했던 마토 네레틀야크(오이타)는 조원희를 가리켜 '아시아의 가투소'라고 칭찬했습니다.

조원희의 등장은 수원의 중원을 책임졌던 김남일(빗셀 고베)의 입지를 위협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당시의 김남일은 4-3-3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이관우-백지훈의 뒷 공간을 맡으면서 수비 부담이 커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2000년대 중반 잦은 부상으로 활동량과 움직임이 떨어진 김남일에게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김남일은 2007시즌 초반에 상대팀 중앙 공격을 끊을때마다 거친 반칙을 일삼으며 타팀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차범근 감독은 김남일을 중앙 수비수로 내려 중원의 불안 요소를 없앴고 그해 여름 조원희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줄곧 기용했습니다.

당시의 수원 전술에서는 김남일이 지고 조원희가 뜰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이관우와 백지훈이 수비 부담을 줄이고 공격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스피드와 기동력, 상대 미드필더를 끈질기게 따라 붙을 수 있는 조원희가 김남일보다 더 매력적인 카드였던 겁니다. 물론 김남일의 중원 수비력은 흠잡을 것이 없었지만 이관우와 백지훈에게 수비 부담이 커지면서 수원의 공격 전개 방향 및 템포가 상대팀에게 읽히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차범근 감독 전술에서는 김남일보다 조원희가 매력적인 카드였습니다.
  
그 흐름은 김남일이 일본으로 떠났던 2008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조원희가 중원에서 궃은 역할을 책임지면서 백지훈(루이스, 김대의)-이관우-서동현 같은 공격 성향 미드필더들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습니다.(당시 서동현은 4-4-2의 오른쪽 윙어로 자주 기용됐습니다) 그래서 수원은 미드필더진에서의 공격적인 경기력을 앞세워 K리그 최다득점 1위(40경기 65골)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조원희가 위건으로 떠나고 꾸준히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사라지면서 올 시즌 총체적인 성적 부진에 빠졌습니다. 리버풀이 사비 알론소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으로 휘청거린 것 처럼, 수원도 조원희 이적으로 어려운 시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허정무호에서는 조원희의 장점이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직설적인 표현을 빌려 쓰면, 조원희는 허정무호 전술에서 겉돌고 있습니다. 조원희의 홀딩 능력은 국내에서 톱클래스지만 대표팀에서는 김정우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8일 세르비아전에서는 조원희가 경기력 부진으로 전반 35분에 조기 교체 됐습니다. 조원희의 부진은 이날 경기에서 공수 양면에 걸친 맹활약을 펼친 김남일과 대조적인 행보였습니다. 조원희가 수원에서 김남일을 위협했던 흐름이 지금의 대표팀에서는 역전이 된 것입니다.

축구팬들 대부분은 조원희의 수비력을 김정우보다 높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의 생각은 다릅니다. 4-4-2에서 중앙 미드필더는 공격과 수비 능력이 모두 좋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김정우는 넓은 시야를 앞세운 전진패스와 다채로운 형태의 스루패스를 자랑하는 선수입니다. 플레이메이커 출신으로서 공수 전개에 능하기 때문에 대표팀 공격의 흐름과 진행방향을 잘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정우가 대표팀에서 계속 중용되는 이유는 그가 기성용의 공격 부담을 덜어주면서 한국 공격 패턴의 단조로움을 막을 수 있는 옵션이기 때문입니다.

조원희는 김정우 만큼 좋은 공격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중원에서 공을 잡으면 그 즉시 빌드업을 시도하거나 전방으로 공을 올리기보다는 측면에 포진한 옵션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출중한 기동력과 활동 반경을 자랑하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다보니 공격 전개에서 부족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높은 클래스를 자랑하는 상대팀 미드필더들에게 속수무책으로 고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르비아전 부진 원인을 비롯해 위건의 벤치를 지키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위건 감독은 조원희 같은 투박한 스타일보다는 공격 전개 능력이 뛰어난 기술적인 미드필더를 선호합니다.

물론 조원희는 축구팬들에게 매력적인 선수입니다. 박지성처럼 부지런한 움직임과 넓은 활동 반경으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보다 많이 뛰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대는 현대 축구의 변화된 흐름과 맞지 않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중앙 미드필더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는 기동력보다 공수 양면에서 흠잡을 것 없는 실력과 경기를 넓게 바라보는 시야, 지능적인 경기 운영을 중요시합니다. 수비 상황에서도 상대를 악착같이 따라붙기 보다는 수비수들과의 안정적인 밸런스 구축을 통해 상대 공격 길목에 미리 위치하여 역습을 빠르게 전개하는 쪽에 초점을 맞춥니다.

허정무 감독의 전술은 현대 축구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 했습니다. 포메이션 하나를 주 전술로 쓰면서 또 다른 포메이션을 플랜B로 놓는 것, 측면과 중앙 공격 옵션의 활발한 스위칭, 상대팀 스타일과 팀 전술에 따른 풀백의 공격 가담 빈도, 그리고 공수 양면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며 팀의 점유율을 끌어 올리는 중앙 미드필더들의 적극적 기용이 그렇습니다. 한국 축구가 미디어를 통해 유럽 선진 축구의 전술적인 장점을 흡수하면서 대표팀의 스타일이 변화된 것입니다.(이제는 완성도를 높여야겠죠.) 이것은 U-20, U-17 대표팀이 세계 대회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됐습니다.

리버풀이 그런 사례입니다. 리버풀은 지난 시즌 4-2-3-1의 더블 볼란치로서 '알론소-마스체라노' 조합을 기용했습니다. 알론소가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맡으면서 뛰어난 수비 센스와 지능적인 위치선정으로 상대 공격 길목을 미리 선점했다면 마스체라노는 알론소의 수비력을 도와주면서 공격 과정에서도 백업할 수 있는 '알론소 도우미' 였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마스체라노의 전술적 비중이 줄었습니다. 리버풀이 알론소 공백으로 시즌 초반 혹독한 댓가를 치른 뒤 한때 6연승을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제라드-루카스'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스체라노는 수비력이 뛰어난 홀딩맨이지만 공격 전개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루카스에게 밀렸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미드필더진 중에서 가장 터프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첼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터프함의 키워드인 에시엔은 다이아몬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지만 그는 홀딩맨이기 이전에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입니다. 기본적인 수비 능력을 발휘하면서 미드필더 전 영역을 파고드는 부지런한 움직임과 효율성 높은 공격 전개로 팀 공격의 젖줄 역할까지 도맡았습니다. 램퍼드-발라크보다 패스 시도가 많고 정확도가 팀 내에서 으뜸인 경기가 여럿 있을 정도로 슈퍼맨 못지 않은 경기력을 자랑합니다. 이것은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있어 효율적인 공격 전개 능력이 필수임을 의미합니다.

다시 조원희 이야기로 돌아가면, 조원희는 공격 전개 부족으로 허정무호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지난 세르비아전에서는 경기력 부진으로 인한 조기 교체로 팀 내에서의 입지가 약화 됐습니다. 일각에서는 허정무 감독이 조원희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정무호가 김정우-기성용 조합의 완성과 김남일의 세르비아전 맹활약의 결과물을 거두었다는 점은, 조원희가 대표팀 전술에 녹아들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원희가 김남일에게 밀리는 것입니다.

또한 조원희는 위건에서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월드컵 본선에서의 경기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실전 감각 저하는 큰 경기에서 자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 어려운 문제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조원희가 남아공 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에 포함될 수 있는 명분과 경쟁력을 갖추려면 위건에서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아니면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이적해야 합니다. 조원희는 무엇보다 소속팀 경기에 꾸준히 모습을 내밀며 공격전개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장점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조원희가 달라져야 할 시점에 왔습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