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 박주영이 덴마크전에 뛰었다면 경기 분위기는 한국이 '확실하게' 우세를 점했을 것입니다. 대표팀 소집을 이틀 앞두고 불의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박주영의 무게감을 느낀 경기였습니다. 덴마크전 공격력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바로 박주영의 결장 이었습니다.
한국은 전반 25분부터 후반 중반까지 덴마크와의 미드필더 경합에서 우세를 점했습니다. 박지성과 이청용이 측면과 중앙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동료 선수들과 간격을 좁혔던 것이 공격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습니다. 한 선수의 개인 기량에 의존하기보다는 원투패스와 짧은 스루패스를 앞세워 전방을 침투할 수 있는 기회가 여려차례 열리면서 공격의 활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후방에서 전방으로 이어지는 빌드업 과정이 매끄러웠으며 공격 시도까지 활발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이며 상대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올려야 합니다. 한국은 덴마크보다 약간 우세한 슈팅 횟수를 기록했지만(9-8, 유효슈팅 2-2) 골을 넣는데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공격수들의 피니시 능력이 부족했음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투톱을 맡은 이동국과 이근호의 무득점, 그리고 후반 시작과 함께 공격수로 교체 투입된 설기현과 염기훈의 부진이 아쉬웠던 이유입니다. 네 선수중에 한 선수라도 미드필더진의 활발한 공격 기회속에서 골을 넣었다면 한국은 유럽 원정에서 승리했을 것입니다.
4-4-2는 투톱 공격수가 미드필더들과 활발한 공격 기회를 주고 받으며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임펙트가 필요합니다. 특히 허정무호는 좌우 윙어들의 활발한 움직임을 주문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공격 과정에서 투톱 공격수와 좌우 윙어들에 대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4명의 공격 옵션들은 활발한 활동량과 폭 넓은 움직임을 필요로하게 됩니다. 이러한 4-4-2의 기초적인 개념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동국-이근호 투톱의 아쉬운 공격력과 함께 박주영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허정무호는 박주영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이동국-이근호 투톱을 대안으로 내놓았습니다. 이동국이 왼쪽을 중심으로 미드필더진과 이근호 사이에서 트라이앵글을 만들어내는 임무를 맡았다면 이근호는 최전방에 고정된 위치 선정으로 후방의 공격을 기다리는 역할 이었습니다. 특히 이동국의 임무는 박주영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이근호와 호흡을 맞췄을때의 역할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두 공격수의 역할은 자신들이 즐기는 성향에 적합하지 못했습니다. 이동국은 강력한 '한 방'을 무기로 삼는 선수로서 공격 연결보다 골에 강점을 발휘하는 타겟맨이고 이근호는 빠른발을 주무기로 상대 공간을 침투하는 스타일입니다. 덴마크전에서 자신들의 옷에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맡다보니 공격의 창조성이 떨어졌습니다. 그로인해 미드필더진에서 공격진으로 연결되는 패스가 상대 압박에 막혀 종종 끊어지거나 공격수가 최전방에서 공을 잡는 과정에서 공격 루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동국의 역할을 박주영이 맡았다면 한국의 공격이 원활했을 것입니다. 왼쪽 스트라이커인 박주영은 왼쪽 윙어 박지성과 오랜 기간 최상의 호흡을 발휘하면서 패스 및 공간 침투에 강점을 발휘했습니다. 팀 공격을 주도할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 기질이 다분하기 때문에 한국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8월 파라과이전과 9월 호주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넣었던 오름세를 앞세워 상대 골문을 과감하게 노렸을 것입니다. 이동국의 공격력이 극히 부진했던 것은 아니지만 전술상에서의 역할은 이동국보다 박주영이 더 나았습니다.
이근호는 대표팀의 골잡이로서 매리트가 떨어졌습니다. 지난 3월 28일 이라크전 페널티킥 골 이후 덴마크전까지 A매치 9경기 연속 골 사냥에 실패했습니다.(6월 오만전은 비공인 A매치) 이라크전 이전까지는 정성훈의 포스트 플레이 효과 속에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지만 박주영과 호흡을 맞춘 이후부터 골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그러더니 덴마크전에서도 예전처럼 날아오르지 못하면서 골잡이로서의 본능을 잃고 말았습니다. 상대 수비의 견고한 압박을 간파하는 과감한 임펙트도 부족했고 후방에서의 연계 플레이를 살리는 민첩함과 위치선정도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허정무 감독이 이근호를 기용한 것은 선수의 득점력을 믿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박주영의 부상 원인도 있었지만 이근호가 대표팀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는 매리트는 골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근호는 예전과는 달리 최전방을 종횡무진 파고드는 기동력이 떨어졌고 후방에서 공격 기회를 받은 뒤에 상대 압박을 뚫거나 패스를 연결하는 타이밍도 무뎌졌습니다. 이것은 4-4-2를 소화하는 공격수의 역할에 적합하지 못합니다. 만약 박주영이 투입되었다면,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박주영' 투톱 카드를 꺼내들었을 것입니다.
후반전에 투입된 설기현과 염기훈의 교체 카드도 적중하지 못했습니다. 두 선수는 공격수를 맡았지만 상대 압박에 막혀 공격 활로를 찾는데 실패했고 공격 과정에서의 과감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볼 컨트롤도 평소보다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드필더진을 중심으로 활발한 공격을 시도하던 한국의 공세가 두 공격수의 부진으로 후반 막판들어 전세가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한국은 박주영의 부상 공백을 실감하며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물론 월드컵 본선에서는 선수 결장이라는 변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박주영 없이 치른 덴마크전도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의 부상 공백을 덮을 수 있는 전술적인 역량과 선수들의 소극적인 자세는 문제가 있습니다. 4-4-2는 공격수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기본이자 필수이기 때문에 공격 옵션들이 끝까지 분발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기동력과 결정력, 공격수 특유의 센스까지 갖춘 박주영이 나왔더라면 한국의 공격 과정이 매끄러웠을 것이고 골을 노리는 피니시도 강했을 것입니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박지성의 의존도가 높았다면 덴마크전에서는 박주영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허정무호의 4-4-2가 완성된 전술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유럽의 강호 덴마크를 상대로 '진짜 실력'이 드러난 허정무호는 특정 선수의 부재를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 전술의 강화가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