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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강팀에 약한 발렌시아, 강팀에 강한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포지션 경쟁이 치열한 곳이 바로 윙어입니다. 윙어는 많은 활동량이 요구되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여러 대회 출전으로 바쁜 일정에 시달리는 맨유로서는 여러명의 걸출한 옵션들을 보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팀의 입장에서는 포지션 경쟁이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올 시즌 맨유의 윙어로 활약한 선수는 8명입니다. '산소탱크' 박지성을 비롯해서 라이언 긱스, 루이스 나니, 안토니오 발렌시아, 안데르손, 대런 플래쳐, 조란 토시치, 가브리엘 오베르탕이 바로 그들 입니다. 지난 8월 22일 번리전과 9월 5일 토트넘전에서 윙어로 출전했던 중앙 미드필더 안데르손과 플래쳐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의 주 포지션은 윙어입니다. 지난 시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나머지 선수들이 경쟁하는 구도였다면 올 시즌에는 호날두가 떠나면서 경쟁 구도가 확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행보대로라면, 맨유에서의 입지가 튼튼한 윙어는 긱스와 발렌시아 입니다. 긱스는 36세의 나이 때문에 체력적인 문제점이 있지만 맨유의 점유율 축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선수입니다. 특히 지난 9월 4경기에서 2골 6도움의 저력을 발휘하며 '왼발 마법사'라는 칭호를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발렌시아는 완전히 물이 올랐습니다. 칼링컵을 제외한 최근 7경기 연속 선발 출전(6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했고 3골을 넣으며 맨유 전력에 완전히 적응했습니다. 특히 3골의 기록은 '골이 부족한 윙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한 활약상 입니다.

하지만 '긱스-발렌시아' 체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맨유의 공식 매거진 <인사이드 맨유> 한국판 11월호를 통해 "시즌 초반 긱스의 체력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 측면으로 기용했다. 하지만 시즌 진행에 따라 다시 중앙으로 옮겨갈 예정"이라며 긱스의 중앙 미드필더 전환을 예고했습니다. 만약 긱스가 적절한 시점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하면, 또 다른 윙어가 긱스의 몫을 담당할 것입니다. 발렌시아도 마찬가지 입니다. 잉글랜드 진출 이후 과도한 일정을 소화한 경험이 없는데다 시즌 초반에 많은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시즌 중반과 후반에 최상의 컨디션과 체력으로 경기에 임할지는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발렌시아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맨유의 이적생으로서 기대 이상의 활약상을 펼쳤기 때문이죠. 불과 9월까지만 하더라도 직선 형태의 드리블 돌파에 의존했지만 10월 이후에는 횡적인 방향으로 활발히 움직이며 짧고 정확한 패스로 경기를 풀어갔습니다. 그리고 문전으로 파고드는 대각선 움직임, 문전에서 골망을 가르는 공격력에 자신감을 얻어 지난달 17일 볼튼전부터 지난 3일 CSKA 모스크바전까지 5경기에서 3골을 넣었습니다. 이러한 발렌시아의 오름세는 맨유의 공격이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첼시전에서는 발렌시아의 새로운 약점이 나타났습니다. 강팀과의 대결에서 부진을 면치 못한 것이죠. 발렌시아는 올 시즌 아스날-리버풀-첼시전에서 상대팀의 왼쪽 풀백인 클리시-인수아-애슐리 콜의 강력한 견제에 밀려 평소의 공격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4-3-3의 오른쪽 윙 포워드로 출전했던 첼시전에서는 돌파 과정에서 콜을 뚫지 못해 팀의 오른쪽 공격에 실마리를 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격 과정에서 동료 공격수와의 간격을 좁히지 못해 웨인 루니의 최전방 고립을 부추겼습니다.

발렌시아가 강팀과의 경기에서 부진한 것은 맨유 입장에서 아쉬움에 남습니다. 평소답지 않게 공격시의 파괴력이 약했기 때문이죠. 이것은 발렌시아가 강한 상대 앞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돌파 과정에서의 순발력과 기교, 그리고 타이밍이 클리시-인수아-콜을 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또한 아스날전과 리버풀전에서는 무기력한 움직임을 보였던 문제점도 있었죠.

강팀과의 경기에서 부진한 것은 아스날-리버풀-첼시전 뿐만은 아닙니다. 지난 9월 20일 맨시티전에서는 후반 16분 교체 투입되었지만 웨인 브릿지의 견제를 뚫기에는 임펙트가 부족했습니다. CSKA 모스크바와의 2경기에서는 후반 막판에 2골 넣었지만 상대 수비조직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골망을 출렁였을 뿐입니다. 또한 모스크바의 수비는 프리미어리그 강팀들보다 견고함이 떨어진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경험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올 시즌 강팀과의 경기에서 부진한 것은 자신의 기량에 부족함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강팀에 약한 발렌시아의 행보는 누군가의 존재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박지성입니다. 박지성은 유독 강팀과의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발휘했습니다. 2007/08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AS로마전과 4강 FC 바르셀로나전에서 1~2차전을 포함한 총 4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맹활약을 펼치면서 '강팀용 선수'로 부각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에는 첼시-아스날-리버풀전, 인터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리가 데퀴토와의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것을 비롯 강팀을 상대로 골까지 넣으며 팀 공격에 큰 이득을 안겼습니다.

'지난 시즌까지의' 박지성이 강팀에 강했던 이유는 다른 공격 옵션들에 비해 기복 없는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특유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자세로 공수 양면에 걸쳐 묵묵히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죠. 평점 5~10점을 넘나드는 기복있는 플레이보다 꾸준히 평점 7~8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박지성의 특징 이었습니다. 한 쪽 측면에서 호날두가 이기적인 활약을 펼치다보니 다른 한 쪽 측면에서는 이타적인 활약의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에 나니보다는 박지성이 강팀과의 경기에서 선택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지성은 최근 무릎 부상 후유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팀 전술이 호날두 이적 여파로 역습에서 지공 형태의 점유율 축구로 바뀌더니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최근에는 오베르탕이 맨유의 조커로 꾸준히 모습을 내밀면서 나니의 입지가 축소 되었고 박지성도 위험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이 오베르탕에게 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빠른 복귀가 절실하다는 조급한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 처럼, 박지성은 언젠가 지난 시즌의 포스를 되찾을 것이 분명합니다. 긱스는 이미 중앙 미드필더 전환이 예고되었고 나니-오베르탕은 맨유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용하기에는 부족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입니다. 오른쪽보다는 왼쪽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발렌시아보다는 박지성쪽에 여전한 무게감이 실립니다. 발렌시아는 강팀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클래스를 발휘하지 못했으니까요. 박지성은 상대팀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한꺼번에 만회할 수 있는 아우라가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이 참가하게 될 A매치 덴마크-세르비아전에 맨유 피지컬 코치를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박지성의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죠. 이것은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의 기를 살리기 위해, 박지성을 A매치 데이 이후부터 실전에 꾸준히 투입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믿음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의 믿음에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발렌시아가 부진했던' 강팀과의 경기가 박지성의 입지를 지난 시즌처럼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