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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볼튼의 답답한 전술, 이청용이 안타깝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21, 볼튼 원더러스)이 아스톤 빌라전에서 5경기 연속 선발 출전에 성공했지만 팀은 1-5로 대패했습니다.

이청용의 볼튼은 8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빌라 파크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 아스톤 빌라전에서 1-5로 대패했습니다. 전반 5분 애슐리 영에게 선제골을 내준것을 시작으로 아그본라허-카레브-밀너-쿠엘라에게 골을 허용했으며 전반 44분에는 요한 엘만더가 추격골을 넣었지만 대량 실점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볼튼은 3승2무6패로 리그 16위로 추락해 강등권 추락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아스톤 빌라전에 선발 출전은 이청용은 볼튼 이적 이후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풀타임 출전에 성공했습니다. 이날 오른쪽 윙어로 활약하면서 상대팀 에이스인 영에 뒤지지 않는 스피드를 뽐냈지만 팀의 대량 실점 패배를 막는데 실패했습니다.

볼튼의 공격, 무엇이 문제인가?

볼튼의 한계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미드필더진을 중심으로 패스 위주의 축구를 하고 싶은데 현실은 상대팀 압박에 막혀 속수무책으로 고전했습니다. 그래서 롱볼을 앞세운 '뻥축구'로 공을 높이 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문제는 공격 전개 뿐만 아니라 수비도 엉망입니다. 박스 안에 수비 옵션을 여러명 배치해도 상대의 공세에 뚫리는게 볼튼 축구의 현 주소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청용의 활약이 팀의 대량 실점 패배로 높은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청용은 경기 종료 후 스포츠 전문 채널 <스카이 스포츠>로 부터 "팀에서 가장 위협적(Most dangerous Bolton player)"이었다는 코멘트와 함께 팀에서 2번째로 높은 평점 6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케빈 데이비스(7점)에 이어 2번째로 잘했다는 점은 팀 내에서 나름대로 맹활약을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팀이 1-5로 대패했음에도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드문 경우 입니다. 볼튼이 1-5로 패했다고 해서 이청용이 부진했다고 단정짓는 것이 섣부르다는 것을 코멘트와 평점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볼튼의 공격은 이청용에 중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더블 볼란치를 맡는 '가드너-무암바' 조합의 패싱력, 그리고 포백 수비수들의 롱볼을 앞세워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전반 28분 타미르 코헨이 허벅지 통증으로 교체되기 전까지 전자격의 공격 패턴을 즐겼다면 엘만던 교체 투입 이후에는 후자격의 전술을 앞세워 골 기회를 노렸습니다. 전자격의 전술이 상대팀의 압박에 막혀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해 원래의 전술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이청용은 패스 위주의 플레이에서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하지만 코헨이 교체되기 전까지 패스 연결이 3번(8, 20, 28분)에 그칠 정도로 볼 터치가 낮았습니다. 가드너-무암바 조합이 메튜 테일러가 포진한 왼쪽 공격에 초점을 맞추는 패스를 활발히 연결했지만 이것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이청용쪽을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패스를 연결하는 시야를 좀 더 넓혔다면 이청용이 경기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격 기회를 받았을 것이지만 가드너-무암바에게는 이러한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볼튼 공격이 아스톤 빌라의 수비에 고전했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공격 패턴이 왼쪽으로 쏠리다보니 상대의 압박에 밀려 계속 차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중앙과 오른쪽을 살리는 공격 변화가 필요하지만 가드너-무암바는 끝까지 왼쪽을 고집하거나 자신이 직접 공을 몰고 전방 돌파를 시도합니다. 그래서 이청용과 데이비스 같은 공격 옵션들에게 패스가 오더라도 중간에서 끊기고 맙니다. 이러한 볼튼의 답답한 공격 패턴은 이청용을 비롯 데이비스를 최전방에 고립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볼튼은 두 번의 공격 시도 장면이 아쉬웠습니다. 전반 23분에는 가드너가 볼튼 진영 중앙에서 이청용에게 띄운 로빙패스가 너무 위로 향해 옆줄아웃 되고 말았습니다. 3분 뒤에는 오른쪽 풀백인 샘 리켓츠가 하프라인에서 빌드업을 시도하여 근처에 있던 이청용에게 패스를 할 수 있었지만, 무모한 대각선 돌파를 시도하다 문전에서 스텝이 꼬여 상대팀 수비수에게 공을 빼앗기고 맙니다. 이청용의 적극성 문제를 따지기보다는 볼튼 후방 옵션들의 공격 전개를 더 문제 삼아야 하는 대표적인 장면들입니다.

결국 볼튼은 전반 28분 엘만더를 교체 투입하면서 '데이비스-엘만더' 투톱의 4-4-2를 구사합니다. 그래서 패스 위주의 공격 비중을 줄이고 두 공격수의 포스트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는 롱볼 전략을 선택 했습니다. 이청용을 제외한 다른 미드필더들이 패스를 통해 쪼개가는 공격 패턴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결국에는 볼튼 공격의 키워드인 '뻥축구'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반 44분 엘만더의 골 상황도 후방에서 띄운 롱볼로 일궈냈습니다. 이 경기를 TV 생중계하던 캐스터가 엘만더의 골을 '볼튼표 골'이라고 지칭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볼튼하면 뻥축구니까요.

이청용이 엘만더 투입 이후 패스 및 볼 터치 횟수가 많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 였습니다. 데이비스-엘만더가 문전에 고정되어 있다보니 테일러와 이청용 같은 측면 미드필더들의 공격 역량이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격수가 전방에서 떨궈주는 공을 받기 위해서는 측면 옵션들이 문전으로 치고 들어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팀의 역습도 측면 옵션들의 빠른 기동력이 필요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후반 3분 오른쪽 측면에서 이청용이 공을 따내기 위해 영과의 스피드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공을 따내려했던 장면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이날 이청용의 패스는 깔끔했습니다. 전반 28분 코헨에게 이어준 전진패스가 정확하게 연결된 것을 비롯 자신에게 패스 기회가 찾아오면 동료 선수에게 적절한 타이밍과 정확도를 겸비한 패스를 여러차례 연결했습니다. 비록 3번의 부정확한 크로스가 아쉬웠지만 상대 수비의 전열이 튼튼했기 때문에 데이비스-엘만더에게 정확하게 연결하기 힘들었습니다. 문제는 이청용의 정확한 패싱력에 힘을 실어줄 미드필더들이 부족합니다. 대부분 롱볼 전개에 익숙하다보니 이청용의 공격력과 어긋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청용은 뻥축구와 궁합이 안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볼튼이 아스톤 빌라전서 5실점 패배를 한 것은 수비의 균열 때문입니다. 박스 안에서 선수들이 많이 몰려있는데도 상대 선수들의 문전 돌파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을 걷어내기에 급급했지만 가드너-무암바의 볼 트래핑 미숙으로 다시 상대팀에게 골 기회를 내주는 위기가 끊임없이 연출 됐습니다. 이러한 경기 운영은 지난주 첼시와의 2연전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볼튼이 최근 3경기에서 13실점을 허용한 것은 불안정한 수비가 성적 부진의 근본적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강등권 추락 위협을 받는 볼튼의 행보는 이청용의 성장에 이롭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볼튼이 지지난 시즌과 지난 시즌처럼 롱볼을 고집하면 이청용의 창의적인 공격력이 최대화 되는 전술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청용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청용이 프리미어리그 5연속 선발에 성공한 것은 게리 멕슨 감독에게 공격력에 대한 신뢰를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청용이 존재해야 볼튼 공격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동료 선수들이 도와주지 않는 볼튼의 답답한 공격 전술은 이청용을 안타깝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