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날이 '북런던 더비'에서 토트넘을 상대로 골 넣는 공격축구의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아스날은 지난달 31일 저녁 9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토트넘전에서 3-0으로 완승했습니다. 로빈 판 페르시가 전반 41분과 후반 15분에 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전반 42분 윌슨 팔라시오스의 패스 미스를 가로챈 판 페르시의 패스를 받아 추가골을 넣었습니다. 토트넘전 승리의 수훈갑인 판 페르시는 2골 1도움 기록해 팀의 3-0 승리의 주역으로 거듭났습니다.
판 페르시, 베르캄프 닮아가는 네덜란드 공격수
아스날의 토트넘전 승리 과정은 어려웠습니다. 상대가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에서 활발히 공을 돌리는 '점유율 축구'를 했기 때문에 아스날이 기선 제압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지난 8월 30일 아스날을 2-1로 제압했던 맨유의 전술과 유사합니다. 벵거 감독이 '안티풋볼'이라고 불만을 제기했던 바로 그 전술입니다. 또한 토트넘은 '팔라시오스-허들스톤' 중앙 미드필더 콤비가 파브레가스를 밀착 견제하면서 아스날 공격 연결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전반 40분까지의 흐름은 토트넘의 우세였습니다.
하지만 경기의 흐름은 판 페르시의 한 방에 두 팀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판 페르시는 바카리 사냐의 오른쪽 크로스를 받는 과정에서, 문전으로 빠르게 파고들어 레들리 킹의 견제를 뚫고 선제골을 작렬했습니다. 이 골은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의 안정된 수비 밸런스를 구축해 아스날 공격 옵션들을 꽁꽁 괴롭혔던 토트넘의 수비력을 무력화시키는 결정적인 장면 이었습니다. 판 페르시의 골이 없었다면 아스날의 3-0 완승은 없었을지 모르며 어쩌면 토트넘이 후반전에도 경기 분위기를 주도했을지 모릅니다. 판 페르시의 한 방이 아스날 승리의 커다란 분수령이 된 것입니다.
판 페르시의 공격 센스는 선제골 장면만 빛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반 42분 팔라시오스의 패스미스를 가로채 근처에 있던 파브레가스에게 패스를 연결했습니다. 파브레가스는 문전으로 빠르게 침투하여 상대 수비 세 명을 제치고 추가골을 넣었습니다. 이러한 판 페르시의 활약에 아스날은 어려운 경기 내용속에서도 2분에 2골을 넣는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후반 15분 판 페르시의 쐐기골은 3-0 완승의 결정타로 작용했습니다. 판 페르시는 토트넘 수비진이 어수선해진 상황을 틈타 문전에서 가볍게 골을 밀어 넣었습니다.
이러한 판 페르시의 원맨쇼는 아스날의 골 넣는 공격축구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스날은 토트넘전 승리로 리그 3위를 지키면서 빅4 수성에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토트넘전을 포함해 리그 최다득점 1위(10경기 32골) 자리를 지켜 1경기당 3.2골 넣는 공격축구의 저력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그 중심이 바로 판 페르시와 파브레가스 입니다. 두 선수는 리그에서 각각 7골 6도움, 5골 9도움을 기록해 아스날의 골을 든든하게 책임졌습니다. 그 중에서 주목할 선수가 바로 판 페르시입니다. 판 페르시는 2006/07시즌과 지난 시즌에 넣은 11골이 자신의 한 시즌 최다골 이었지만, 올 시즌 10경기에서만 7골을 넣으면서 득점력이 향상 되었습니다.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는 축구의 속설처럼, 판 페르시의 득점력 향상은 자신의 가치를 드높인 것을 비롯해 빅4 탈락 위기에 빠졌던 아스날의 위기를 모면시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판 페르시의 오름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판 페르시는 지난달 12일 맨시티전부터 토트넘전에 이르기까지 UEFA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한 9경기에서 8골을 넣는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동안 골 넣는 역할보다 조력자 역할에 가까웠던 판 페르시에게 이제는 골잡이의 향기가 물씬 풍기게 되었습니다. 아스날이 엠마뉘엘 아데바요르의 이적 공백을 걱정하지 않았던 것도 판 페르시의 거침없는 득점력 향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판 페르시는 그동안 골잡이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로 부각 되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 아데바요르의 득점력을 도와주는 쉐도우 스트라이커였다면 올 시즌 초반에는 미드필더들에게 패스 기회를 밀어주며 침투 공간을 열어주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골 본능에 눈을 뜨면서 팀이 골을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어김없이 골을 넣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에게 부족했던 골을 통해 개인 공격력 업그레이드에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아스날 골잡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뿐더러 루니-토레스-드록바 같은 빅4 라이벌 공격수와 견줄만한 결정력을 키우게 됐습니다.
이러한 판 페르시의 성장은 누군가와 비슷한 이미지를 풍깁니다. 바로 '아스날 전설' 데니스 베르캄프입니다. 판 페르시와 베르캄프는 네덜란드 출신 공격수인데다 아스날에서 성공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판 페르시는 그동안 '포스트 베르캄프'라는 수식어로 주목 받았습니다. 하지만 판 페르시는 지금까지 'NEW 베르캄프'로 진화할 수 없었습니다. 베르캄프는 촌철살인의 득점력을 앞세워 아스날의 부흥을 이끌었지만 판 페르시는 득점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판 페르시는 최근 거침없는 득점력을 앞세워 베르캄프를 빼닮는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베르캄프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과 중반을 빛냈던, 그리고 2003/04시즌 아스날의 리그 무패 우승 멤버로 두각을 떨쳤다면 이제는 또 다른 네덜란드 공격수인 판 페르시가 아스날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러한 판 페르시의 성장은 네 시즌 연속 무관에 빠진 아스날의 저력이 도래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전망입니다. 토트넘전 승리의 주역인 판 페르시의 활약상은 '베르캄프의 재림'을 보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