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22,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재능과 그라운드에서 내뿜는 경기력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습니다. 공을 달고 다니는 듯한 드리블 돌파와 문전으로 파고드는 빠른 스피드와 민첩성, 그리고 혼자의 힘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임펙트를 보유한 스페셜 리스트입니다. 그는 지난 시즌 FC 바르셀로나의 트레블 우승을 이끈 에이스로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2009 발롱도로,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일찌감치 예약했습니다.
하지만 메시도 사람인가 봅니다. 빨강색과 파랑색을 섞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면 세계 최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지만 하늘색과 하얀색을 혼합한 유니폼을 입으면 힘을 못씁니다. 그 팀이 바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입니다. 메시의 조국인 아르헨티나는 2010 남아공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4위를 기록중이지만 그 행보가 답답합니다. 지난달 10일 파라과이전까지 3연패 부진에 빠졌고 지난 11일 페루전에서는 답답한 경기 끝에 경기 종료 직전 마틴 팔레르모의 결승골로 2-1의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메시를 통해 본 과르디올라vs마라도나의 차이
아르헨티나 부진의 원인은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의 전술 부재 때문입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최근들어 전술 미스를 범했고 팀은 경기 내용에서 고전을 거듭 중입니다. 선수들 개개인이 각자의 역할에 치중하면서 일부 선수가 고립되고 동료 선수끼리의 공격이 잘 안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아르헨티나의 경기력은 무기력해졌고 끈끈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아르헨티나 특유의 축구 스타일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부진의 또 다른 원인이 바로 메시의 골 침묵입니다. 메시는 지난 4월 1일 볼리비아 원정을 시작으로 지난 페루전까지 남미 예선 6경기 연속 무득점 부진에 빠졌습니다. 메시가 골을 못넣었던 6경기 동안 아르헨티나는 2승4패, 5골 14실점으로 이름값을 잔뜩 구겼고 그 중에 3경기가 무득점 경기였습니다. 에이스가 삐꺽거리면 팀의 경기력이 살아나지 못하는 축구의 진리처럼 메시의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메시의 부진을 단지 메시의 문제만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입니다. 메시는 최근 A매치 남미지역 6경기 연속 무득점에 빠졌지만 올 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서는 5경기 5골 3도움으로 펄펄 날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지난 시즌 팀의 트레블을 이끌고 올 시즌 팀의 프리메라리가 선두 도약을 이끄는 선수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부진한 것은 개인에 의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가 아르헨티나 축구의 아이콘임을 상기하면 마라도나 체제에서의 태업 가능성은 없습니다.
메시의 부진 원인은 바로 마라도나 감독 전술 때문입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마라도나 감독이 메시를 어떻게 활용할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메시를 통해 '감독 초보'라는 공통점을 지닌 호셉 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 감독과 마라도나 감독의 지도력이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 밖에 없습니다.
메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투톱 공격수를 맡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쉐도우 스트라이커 역량이 있는 선수지만, 실상은 마라도나 체제에서 타겟맨을 맡고 있습니다. 활동 패턴이 문전 앞에 고정되면서 미드필더들의 볼 배급을 기다리며 골을 노리는 역할을 맡다보니 볼 터치 횟수가 적고, 상대 수비의 압박에 걸려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메시는 상대 압박을 넘어설 수 있는 특출난 기교와 스피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르셀로나에서 강점으로 작용할 뿐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반면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오른쪽 윙 포워드 또는 제로톱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아 팀의 폭발적인 공격력을 주도했습니다. 팀의 공격을 이끌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문전으로 침투하여 골을 넣는 성향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의 경기력과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오른쪽에서는 프리롤 형태의 공격을 맡음으로써 그라운드 이곳 저곳을 맘껏 질주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적인 역할에 묶인 아르헨타나 대표팀에서의 스타일과 대조됩니다.
그리고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사비-이니에스타가 특유의 날카로운 패스와 문전 침투, 지능적인 공간 창출과 경기 장악력으로 '앙리-즐라탄-메시'로 짜인 스리톱을 공격에 전념시키는 헌신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측면에서는 오른쪽 풀백인 다니엘 알베스라는 슈퍼맨이 있습니다. 알베스가 메시의 뒷 공간에서 공수 양면에 걸친 활발한 움직임을 과시했던 것이 에이스의 수비 부담을 줄이고 끊임없이 공격을 지원할 수 있는 뼈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 별 다른 기복없이 꾸준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반면 메시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동료 선수들의 지속적인 공격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지난 3월 후안 로만 리켈메가 마라도나 감독과의 불화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이후부터 후방에서 많은 공격 기회를 얻지 못해 최전방에서 고전하는 장면이 늘었습니다. '가고-마스체라노'로 구성된 중원이 경기 장악에 실패한 것을 비롯 공격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메시가 포진한 중앙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은 근본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베론-아이마르는 리켈메를 대체하기에는 공격의 임펙트와 경기 장악력이 떨어진 문제가 있습니다. 마라도나 체제 이전의 아르헨티나는 '리켈메의 팀'이었던 만큼, 리켈메가 빠진 후유증이 큽니다.
공교롭게도 메시의 골 침묵은 리켈메가 대표팀에 빠진 이후부터 시작 됐습니다. 그리고 메시가 활약했던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의 금메달 획득을 견인한 에이스는 리켈메 였습니다. 리켈메가 플레이메이커로서 팀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에 메시의 맹활약이 두드러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리켈메 없는' 지금의 아르헨티나에서는 메시의 특출난 능력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리켈메가 마라도나 감독과 불화가 없었거나, 혹은 마라도나 감독이 리켈메의 공격 특성을 살리는 공격 전술을 앞세웠다면 메시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행보는 지금보다 밝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