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세계에서는 강팀과 약팀이 존재합니다. 강팀이 약팀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약팀도 강팀에게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강팀을 꺾기 위해 정공법보다는 변칙을 택합니다. 그래서 그 변칙이 통하면 강팀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약팀은 강팀을 꺾기 위해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택합니다. 그래서 8-1-1 포메이션과 10백 같은 극단적인 수비 형태를 취하며 강팀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주력합니다. 강팀은 약팀의 밀집 수비를 뚫기 위해 보다 빠르고 간결한 공격이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공격 과정에서의 효율성과 동료 선수와의 밸런스 능력도 중요합니다. 특히 현대 축구에서는 강팀이 약팀의 수비 전략을 간파하는 전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첼시와 아스날의 차이점, 4-6 포메이션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강팀이 약팀의 밀집 수비에 고전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경기 내내 힘겨운 접전을 벌인 끝에 막판에 결승골을 넣거나 또는 비기거나, 패배로 인해 이변의 희생양이 됩니다.
그래서 강팀은 약팀과의 경기에서 4-6 포메이션을 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6은 공격 상황에서 4가 하프라인 부근에서 후방 공격을 띄워주는 것을 비롯 상대 역습을 끊는 역할을 맡고 6이 공격을 전담하는 전술입니다. 10명의 필드 플레이어 모두 출중한 공격력이 요구되는 포메이션으로서 4-4-2와 3-5-2 같은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 개념의 3선 포메이션과 차원이 다릅니다.
올 시즌 4-6에서 가장 큰 효과를 누린 팀이 바로 아스날입니다. 아스날은 올 시즌 리그 7경기에서 24골을 기록했습니다. 리그 순위 2위와 4위를 기록중인 맨유와 맨시티전에서는 3골에 그쳤지만 나머지 약팀과의 5경기에서는 총 21골, 1경기당 4.2골을 작렬했습니다. 에버튼전(10위) 6-1, 포츠머스전(20위) 4-1, 위건전(12위) 4-0, 풀럼전(15위) 1-0, 블랙번전(16위) 6-2 승리를 거두었고 그 중에 4경기를 대량 득점으로 이겼습니다.
아스날의 기본 전형은 4-3-3 입니다. 공격시에는 수비라인을 위로 끌어 올리면서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의 간격이 좁아집니다. 최근 아스날의 경기를 보면 파브레가스-디아비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최전방에서 공을 잡거나 슈팅을 날리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아르샤빈-판 페르시-벤트너(에두아르두) 같은 윙 포워드들이 미드필더진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공격 옵션끼리의 활발한 스위칭과 빠른 패스워크를 앞세워 약팀의 밀집 수비를 뚫는 아스날의 4-6은 성공적입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아스날의 골게터가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7경기에서 13명의 선수가 골을 넣은데다 최다 득점자인 파브레가스-베르마엘렌(이상 4골)의 포지션은 공격수가 아닙니다. 아스날이 지난 시즌의 엠마뉘엘 아데바요르처럼 특정 선수의 득점력에 의존하는 팀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베르마엘렌은 센터백임에도 불구하고 2골이 세트 피스가 아닌 상황에서 넣었습니다. 한 골은 문전 앞에서 넣었고 또 다른 한 골은 빨랫줄 같은 중거리포 였습니다. 베르마엘렌이 공격에 가담하는 상황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인 송 빌롱이 백업 역할을 하면서 4-6의 밸런스를 맞춥니다.
물론 아스날의 4-6에는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수비입니다. 수비라인이 평소보다 윗쪽으로 올라가고 미드필더 세 명 모두 공격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비가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실점을 허용할때가 종종 있습니다. 또한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이 직접 공격에 가담하다보니 클리시-사냐 같은 좌우 풀백들의 오버래핑이 지난 시즌보다 적극적이지 못합니다. 팀의 전술 사정상 수비가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공격 재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반면 4-6 포메이션에서 가장 저조한 행보를 걷는 팀이 바로 첼시입니다. 첼시는 리그 순위가 1위지만 득점은 빅4 클럽 중에서 가장 득점이 낮습니다.(8경기 18골) 각각 3위와 6위를 기록중인 토트넘과 리버풀을 상대로 3-0, 2-0 완승을 거두었지만 약팀과의 경기에서는 전반적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헐시티전(18위) 2-1, 선더랜드전(8위) 3-1, 풀럼전(15위) 2-0, 번리전(9위) 3-0, 스토크 시티전(11위) 2-1 승리를 거두었지만 위건전에서는(12위) 1-2로 패했습니다. 특히 헐 시티전과 스토크 시티전에서는 후반 45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힘겹게 승리했던 경기들입니다.
첼시는 지난 시즌에도 그랬지만, 약팀과의 경기에서 고전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스콜라리 체제의 4-1-4-1은 상대팀의 밀집수비에 의해 미드필더와 원톱인 아넬카의 간격이 벌어지는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피니시가 부족했습니다. 히딩크 체제의 4-3-3에서는 드록바의 포스트 플레이로 재미를 봤지만, 안첼로티 체제의 4-1-2-1-2는 강팀 경기에서는 효과를 봤지만 약팀 경기에서는 4-6으로 전환하면서도 아스날 같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중앙 공격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의 꼭지점 역할에서 날카로운 침투 능력과 창의적인 공격 전개, 4-6의 밸런스 유지에 능한 미드필더가 없기 때문입니다. 램퍼드는 공격 상황 대처능력 부족으로 공격형 미드필더 전환에 실패해 다시 중원으로 되돌아갔고 데쿠는 움직임에 기복이 심한데다 상대의 압박에 움츠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키 플레이어 역할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미드필더가 없다는 점은 상대의 밀집수비를 뚫기 힘든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합니다. 얼마전 부상에서 복귀한 조 콜에게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4-6은 약팀과의 경기에서 승점 3점을 무난하게 얻기 위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팀과의 경기에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팀들이 늘어난 만큼, 강팀도 약팀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전술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4-6의 등장은 축구 전술이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