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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홍명보에게서 명장의 향기가 난다

 

"젊은 감독,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은 명장이 될 수 없다"

축구에서는 감독과 관련된 한 가지 편견이 있습니다. 젊은 감독과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은 명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죠. 감독이라는 직업은 오랫동안 선수들을 지도했던 경험과 선수 장악력, 그리고 전술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선수와는 체계가 다릅니다. 그래서 젊은 감독과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이 지도자로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결국에는 이것이 편견으로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편견은 편견일 뿐입니다.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성공한 지도자들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지난 시즌 FC 바르셀로나의 트레블(3관왕)을 이끈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 AC밀란에서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카를로 안첼로티 첼시 감독이 대표적 예입니다. 그 외에도 베른트 슈스터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 프랑크 레이카르트 갈라타사라이 감독, 둥가 브라질 대표팀 감독을 비롯해서 K리그에서는 최강희 전북 감독과 김호 전 대전 감독이 있습니다.

한국 U-20 청소년 대표팀 사령탑을 맡는 홍명보 감독(40)도 성공을 향해 전진중입니다. 감독 자격으로서 처음 메이저급 국제대회에 출전하여 지도력을 검증받게 된 것이죠. 그런데 감독으로서 젊은 나이인 40세에 일찌감치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U-20 월드컵 8강 진출을 이끈 것이죠. 유럽 강호 독일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두더니 미국과 파라과이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고 8강 무대에 올랐습니다. 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에서 고전했던 흔적이 많았음을 상기하면 홍명보호의 저력이 실로 대단합니다.

홍명보 감독은 7년 전인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던 주장이자 명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당시 한국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우승 후보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4강에 진출했습니다. 감독으로 대표팀에 문을 두드린 홍명보 감독은 그때의 영광을 지금의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에게 물려주고 있습니다. 이미 8강 진출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한일 월드컵에 이은 또 한 번의 4강 진출을 위해 힘찬 도전길에 나섰습니다.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홍명보호가 U-20 월드컵 8강에 진출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놓고보면 홍명보 감독이 사령탑으로서 앞으로 성공적인 행보를 걸을 것임을, 그리고 축구팬들의 믿음과 신뢰를 얻을 명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했습니다. 감독은 전술 능력으로 말하는 것 처럼, 홍명보 감독도 전술로서 명장이 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줬습니다.

한국의 16강 경기였던 파라과이전은 '점유율의 승리' 였습니다. 전반 15분 볼 점유율에서는 46-54(%)의 열세를 나타냈지만 34분에는 54-46으로 역전했습니다. 45분에는 63-37의 우세를 나타냈고 경기 분위기를 장악했던 후반전에 3골 몰아쳤습니다. 경기 초반에 공격보다 수비에 중점을 두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치면서 미드필더진을 조금씩 상대 진영으로 끌어올리는 홍명보 감독의 지략이 적중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로 이어지는 간격을 최대한 좁히며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백패스, 롱패스, 스루패스, 전진패스 등등 여러 패턴의 패싱력을 앞세워 경기를 주도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독일-미국-파라과이전에서 상대팀보다 볼 점유율, 패스 성공률, 패스 시도 횟수가 많습니다. 이것은 홍명보호가 상대팀보다 볼 키핑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일-미국-파라과이 같은 축구 강국과 다크호스를 상대로 경기 내용에서 우세를 점한 것은 감독의 지략 능력이 일가견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후반전이 되면 전반전보다 왕성한 활동 폭과 부지런한 움직임을 뽐냈으며 손쉽게 경기를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전에서 김민우가 0-1로 뒤진 후반 25분에 동점골을 넣을 수 있었고 파라과이전에서는 후반 10분부터 25분까지 15분 동안 세 골 몰아쳤습니다. 이것은 홍명보호 선수들의 체력이 뛰어남을 의미합니다. 홍명보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을 통해 체력 강화의 노하우를 길렀던 것이 청소년 대표팀에서 효과를 봤습니다.

선수 구성도 탁월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2개 이상이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을 대표팀에 발탁 했습니다. 대표팀 주장인 구자철은 공격형, 수비형 미드필더 포진이 가능하며 이승렬-조영철-박희성-김보경은 좌우 윙 포워드와 중앙 공격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습니다. 파라과이전에서 2골을 넣은 김민우는 왼쪽 윙 포워드와 풀백을 맡는 전천후 멀티 플레이어 자원입니다. 이것은 멀티 플레이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히딩크 감독의 전술 운용과 흡사합니다.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의 신성' 기성용 없이도 U-20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달성하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김보경-구자철-문기한의 능력이 세계 축구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것이죠. 또한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넣은 7골 중에 프로 선수가 넣은 골은 구자철의 미국전 페널티킥 뿐입니다. 김민우와 김보경, 김영권은 아마추어(대학생) 선수들입니다. 이것은 홍명보 감독이 특정 선수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타입의 지도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홍명보 감독은 파라과이전 종료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U-20 월드컵에서 한번도 못 이겼던 미국과 파라과이를 넘었다. 그것만으로도 역사는 달성됐다. 다음 목표는 8강에서 승리해 준결승에 가는 것이다. 솔직히 선수들이 이렇게 잘 해줄 줄 알았다. 믿고 있었다."라고 8강 진출의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습니다. 자신의 전술을 충분히 이행한 선수들에게 언론을 통해 고마움을 표시한 그의 명장 자질을 알 수 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초보 감독입니다. 감독으로서 나이가 젊기 때문에 실전에서 실수가 속출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달랐습니다. 다른 명장 못지 않게 전술 능력에서 전략적인 기질을 보이며 미국, 파라과이를 제압하고 8강에 진출했습니다. 38세의 과르디올라 감독이 프로 첫 시즌이었던 지난 시즌에 바르셀로나의 트레블을 이끌었듯, 홍명보 감독도 과르디올라 감독처럼 젊은 나이에 명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